지난해에는 넘치는 유동성에 비상장 스타트업들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솟으며 한국판 유니콘(시가총액이 10억달러 이상인 스타트업) 속속 등장했다. 암호화폐 거래소 ‘업비트’를 만든 두나무, 신선식품 판매 플랫폼 ‘마켓컬리’를 운영하는 컬리가 대표적인 예다.

새로운 유니콘의 등장은 해당 기업에 투자한 벤처캐피털(VC)들의 몸값도 크게 올려놨다. DSC인베스트먼트는 두나무와 컬리에 모두 투자한 VC로, 지난 1년 간 주가가 30% 넘게 상승했다. 두 유니콘의 신규 투자 유치나 상장 추진 등 굵직한 뉴스가 나올 때는 상한가를 치기도 했다.

지난 2월 9일 오후 서울 성동구 DSC인베스트먼트 본사에서 윤건수 대표가 조선비즈와 인터뷰하고 있다. /고운호 기자

2012년 설립된 DSC인베스트먼트는 지난 10년 간 가장 무서운 속도로 성장한 VC 중 한 곳이다. 8년차를 맞았던 2020년 운용자산(AUM) 6000억원을 달성했으며, 현재는 1조원을 바라보고 있다. 두나무와 컬리뿐 아니라 부동산 중개 플랫폼 직방, 전자책 플랫폼 리디북스, 소프트뱅크 비전펀드가 2000억원을 투자한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뤼이드 등 걸출한 포트폴리오를 갖췄다.

지난 9일, 서울 성수동 DSC인베스트먼트 본사에서 윤건수 대표를 만났다. 24년차 베테랑 벤처캐피털리스트인 윤 대표는 국내 벤처 투자 시장의 현주소와 방향성, 유망 산업과 섹터에 대해 생각하는 바를 가감 없이 풀어냈다. 다음은 일문일답.

지난해 투자 성과를 간략히 소개한다면.

“2021년은 올해와 내년 좋은 회수 실적을 낼 수 있도록 텃밭을 만들고 씨를 잘 뿌린 한 해였다. 1년 간 2500억원의 신규 투자를 집행했는데, 국내 VC 중 5위 수준이다. 그 외에도 2000억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해 투자 재원도 마련했다.”

올해와 내년 엑시트(투자금 회수)가 예정된 기업은.

“대표적으로 마켓컬리 운영사 컬리가 있다. 현재 장외 시장에서 컬리 주식이 9만~10만원에 거래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약 20배의 수익이 났다. 2차전지 양극재 기업 에스엠랩은 올해 7월 코스닥시장 상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기관 투자자 가운데 우리회사의 지분이 15%로 가장 많다(DSC인베스트먼트가 13%를, 자회사인 액셀러레이터 슈미트가 약 2%를 보유하고 있다). 요즘 2차전지 소재 부품 업체들이 주식시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어 에스엠랩도 조 단위 기업가치를 인정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두나무에도 많이 투자 하지 않았나. 수익이 몇 배 정도 났는지.

“총 500억원을 투자했고, 현재는 장이 안 좋아 주가가 고점 대비 많이 하락하며 지분 가치가 1600억원이 됐다(두나무는 지난해 11월 하이브의 투자를 받을 당시 기업가치를 20조원으로 평가 받았으나, 현재 장외 시장 시가총액은 13조5000억원 수준이다). 기업가치가 다시 제대로 평가 받게 되면 약 10배의 수익이 날 것으로 기대한다.

그 외에 의류 이커머스 업체 브랜디가 1분기 중 기업가치 1조원에 추가 투자를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작년 10월 투자 당시 밸류에이션은 7000억원이었는데, 12월부터 매출액이 급증하며 기업가치도 많이 올랐다. 게임 개발사 콩스튜디오는 이미 유니콘으로 성장했다. 대부분 2020년 12월 결성한 1700억원짜리 ‘DSC초기기업스케일업펀드’를 통해 이뤄진 투자다.”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이 계속되는 동안 이커머스 스타트업이 급성장했는데, 코로나가 종식된 후에는 어떨까.

“이커머스 시장이 만들어진 지 약 20년이 됐다. 그동안 기존 유통 시장에 대한 이커머스의 침투율은 매년 1%씩 늘었는데, 2020년 코로나19가 미국에서 확산되기 시작한 후 8주 만에 10년치 성장을 이뤘다고 한다. 과거에는 식료품을 사기 위해 집앞 슈퍼마켓나 대형마트에 가거나 혹은 온라인 쇼핑몰을 이용했지만 팬데믹 이후에는 이커머스가 거의 유일한 선택지가 됐다. 반면 운영·유지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오프라인 매장들은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코로나19의 유행이 종식된다 해도 과거로 돌아가기 쉽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2년 간 이커머스의 편리함에 익숙해진 상태다. 젊은 세대뿐 아니라 중장년, 노년층도 마찬가지다. 다만, 이커머스 기업 중 1~2등 업체만 살아남게 될 가능성이 크다. 소비자들은 여러 개 이커머스를 동시에 이용하지 않고 손에 익은 서비스만 이용하려는 성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최근 특정 섹터에 국한된 버티컬(vertical) 커머스의 기업가치가 크게 오르고 있다. 소비자들이 종합 커머스 대신 버티컬 커머스를 찾는 이유가 무엇일까.

“결국 커머스 영역에서도 큐레이션(콘텐츠를 수집해서 목적에 따라 분류하고 배포하는 일)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백화점처럼 다양한 상품을 모아 놓고 판매하면 소비자 입장에서는 정보가 너무 많아 원하는 고르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반면 버티컬 커머스는 동일한 목적을 가진 소비자들의 방문을 유도하기 때문에 전문화가 용이하며, 훨씬 더 효율적이다.

지난해 8월 서울 강남구 컬리 본사에서 열린 상품위원회에서 김슬아 대표(오른쪽)가 직원들과 시식을 하고 있다. /고운호 기자

요즘은 버티컬 커머스가 특정 카테고리에서 1위에 오른 뒤 영역을 넓히는 사례가 늘고 있는데, 이것이 정답일 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필연적으로 영역을 넓혀야만 한다면 어느 방향으로 넓히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예를 들어 여성 소비자들을 겨냥해 보석류를 판매하는 플랫폼의 경우, 구매자층이 겹치는 명품 가방으로 상품군을 확장한다면 시너지를 낼 수 있다.”

긴축 국면에서 스타트업의 기업가치가 조정 받을 것으로 보는지.

“기준금리의 인상 시기에는 정책 자금을 벤처 펀드에 투입하는 데 한계가 있다. 모태펀드(정부 부처에서 출자해 조성하는 펀드로, VC의 벤처 펀드에 재출자된다)의 규모는 다소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벤처·스타트업 시장은 침체되지 않을 것으로 본다. 대규모 민간 자금이 계속 VC 업계로 흘러들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 간 VC들이 스타트업 투자를 통해 높은 성과를 내자, 은행과 보험사 등이 중장기적 관점에서 VC에 대한 출자를 늘리고 있다. 결국 정책 자금은 줄더라도 벤처 투자 시장 규모는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올해도 유동성의 확대로 VC 간 경쟁이 치열하겠다.

“정책 자금은 70~80개 VC에 골고루 배분되는 반면, 민간 자금은 상위권 VC에 몰린다. 고수익을 낼 수 있는 투자사에 돈이 집중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그러다 보면 VC 간 양극화도 심해질 것이다. 과거 우리나라의 벤처 투자 시장을 생각해보면, VC 3개가 설립되면 그 중 2개는 문을 닫았다.”

VC뿐 아니라 스타트업의 양극화도 심화할까.

“필연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다. 기업가치 100억원의 기업이 2000억원짜리 회사로 성장하는 속도보다 1조짜리가 10조짜리 기업이 되는 속도가 훨씬 빠를 것이다. 승자에게 돈이 몰리는 현상이 지속적으로 나타날 것으로 본다.”

눈여겨 보고 있는 산업이나 섹터는 무엇인지.

“우리는 지구가 탄생한 이래 수억 년 간 눈에 보이는 세계에 살아왔지만, 지금의 10~20대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도 존재한다’는 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세계의 변화 속도가 과거에는 시속 1~2km에 불과했다면 앞으로는 시속 200km로 빨라질 것이다. 가상 세계의 발달 속도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가상 세계는 얼리어댑터(신제품을 남들보다 빨리 구매해 사용하는 사람)만의 영역이 아니며, 단순한 ‘테마’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제반 기술은 물론 경제, 사회, 문화 시스템 등 모든 것이 변할 것이다. 지금이라도 이 같은 변화에 대응하며 선제적 투자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상 세계에 투자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공부와 연구가 필요하다. ‘뜨는 테마’라는 이유로 아무런 준비 없이 투자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가상 세계의 도래에 앞서 주목해야 할 투자처를 꼽는다면? 업비트 같은 가상화폐 거래소에 투자하는 것이 지금도 유망할까.

“비트코인 같은 가상화폐 거래 플랫폼은 이미 선발 업체들이 독과점한 상태다. 이제는 필연적으로 가상 자산에 대한 소유권을 증명하는 NFT(대체불가능토큰·Non-Fungible Token)의 중요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우리 회사에서 30억원을 투자한 람다256은 두나무의 자회사로, NFT 거래소다. 이커머스와 마찬가지로 가상 자산 섹터에서도 람다256 같은 버티컬 서비스에 돈이 몰릴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국내 게임 업계에서는 NFT나 메타버스 사업에 진출한 회사만 주가가 급등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게임 업체들도 필연적으로 해당 사업을 영위해야만 할까.

“새로운 기술 때문에 기존 ‘공룡’ 기업이 쇠락하고 작은 스타트업이 새로운 공룡으로 성장하는 것은 인류 역사에서 계속 반복돼온 현상이다. 어떤 영역에서든 큰 기업일수록 경각심과 위기 의식을 갖고 새 기술을 받아들이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지난 2월 9일 오후 서울 성동구 DSC인베스트먼트 본사에서 윤건수 대표가 조선비즈와 인터뷰하고 있다. /고운호 기자

그 외에 유망할 것으로 보는 섹터는.

“AI 관련 기업이 계속 좋을 것이다. 손병두 한국거래소 이사장도 신년사에서 AI를 미래 유망 산업으로 꼽지 않았나. AI 기술 자체보다는 AI를 접목하고 활용하는 방식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유통, 물류뿐 아니라 에너지 효율화에도 AI 기술이 중요하게 쓰인다.

또 ESG(환경·사회·지배구조)가 중요해지고 있는 만큼, 지속 가능한 친환경 산업을 영위하는 스타트업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태양광 발전 같이 대규모 자본이 필요한 산업은 VC가 아닌 사모펀드(PEF)가 투자할 영역인 반면, VC는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ESG 관련 기업에 투자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 회사에서 투자한 리코의 경우 사업장의 특성에 맞는 음식물 쓰레기 처리 솔루션을 제공한다.”

바이오는 지난 몇 년 간 가장 인기 있는 테마 중 하나였으나 요즘은 그렇지 않다. 한국거래소의 상장 심사 관문이 높아져 엑시트가 어려워졌고, 투자도 줄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앞서 상장한 바이오 기업 중 기술적 성과를 내지 못한 회사가 많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겪고 있는 혹한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본래 바이오 산업은 임상 1, 2상을 거쳐 3상 통과의 성과를 내기까지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리는 분야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아무리 기술이 발달해도 약이나 바이오 제품은 일정 기간 인체를 대상으로 실험을 해봐야 결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 우리나라 바이오 스타트업들이 세계적인 수준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좋은 기술을 큰 기업에 라이선스아웃(기술 수출)해서 그들의 임상시험 과정을 옆에서 함께 경험하며 배울 필요가 있다. 향후 10년 간 그런 과정을 겪다 보면 국내 바이오 기업들도 충분히 세계적 반열에 올라설 잠재력이 있다. 따라서, 현재 바이오 스타트업이 겪고 있는 기업가치 조정은 VC 입장에서는 적정한 밸류에이션(기업 가치 대비 주가 수준)에 투자할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DSC인베스트먼트의 가장 큰 강점은 무엇일까.

“초기 투자는 평균 투자 금액이 낮아 포트폴리오사의 개수가 많을 수밖에 없다. 현재 국내 스타트업 시장에는 기존의 전통적 VC뿐 아니라 글로벌 VC, 증권사, 자산운용사 등이 대거 진출해있지만, 초기 투자를 잘 할 수 있는 회사는 많지 않다. 리스크도 크고 사후 관리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할애해야 하기 때문이다. DSC인베스트먼트는 대형사로서는 드물게 초기 투자에 특화돼있다. 그것이 우리의 가장 큰 강점이다.”

성공하는 창업가들이 지닌 공통점이 있다면.

“나는 ‘진화하는 CEO’를 좋아한다. 매번 대화를 나눌 때마다 지식과 생각, 콘텐츠의 깊이가 진화하며 비전이 뚜렷해지는 CEO들이 있다. 김봉진 우아한형제들(배달의민족 운영사) 대표, 그리고 우리가 투자한 반도체 스타트업 퓨리오사AI의 백준호 대표가 전형적인 예다. 진화하고 발전하는 과정을 10번 거친 CEO가 있다고 생각해보자. 그렇지 않은 CEO와는 비교가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