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에 맞선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결사항전이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강하게 이어지고 있다. 지정학적 위기에 따른 글로벌 금융 시장의 불확실성은 여전히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처럼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에도 전세계 주식 투자자들은 위험 자산에 대한 베팅을 계속하고 있다. 전세계 상장지수펀드(ETF) 정보를 제공하는 ETFDB에 따르면, 지난 25일(현지 시각) 기준으로 최근 일주일 간 가장 많은 돈이 유입된 상품은 'Invesco QQQ Trust'였다. 나스닥시장에서 금융주를 제외한 대형주에 투자하는 전형적인 성장주 ETF로, 20억2700만달러(약 2조4000억원)이 순유입됐다.
이른바 'QQQ' 외에도 미국 ARK인베스트먼트의 'ARK Innovation ETF'에 4억달러(약 4800억원)가, 'SPDR S&P Biotech ETF'에 3억2700만달러(약 4000억원)가 순유입됐다. 전쟁으로 인한 불확실성 확대에도 전세계 '큰손'들의 마음은 여전히 고성장 기술주에 쏠리는 모양이다.
서학개미(해외 주식을 사는 국내 투자자)들의 선택도 비슷하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최근 일주일 간 국내 투자자들이 가장 많이 산 주식은 미 기술 성장주의 대명사나 다름 없는 테슬라였다. 한 주 동안 테슬라 주식을 3억8000만달러(4600억원) 순매수했다. 나스닥100의 상승을 3배 추종하는 'PROSHARES ULTRAPRO QQQ ETF'도 2억6000만달러(3000억원) 순매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끊이지 않는 포성에도 계속되는 고성장주의 인기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금융 투자 업계 전문가들은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긴축 속도가 조절될 수 있다는 데서 이유를 찾는다.
지난해 말부터 성장주의 주가가 조정 받기 시작한 것은 연준의 긴축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다. 연준이 기준금리 인상 속도를 당초 예상보다 훨씬 높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며 시장 금리인 채권 금리가 급등했다. 성장주의 밸류에이션(기업 가치 대비 주가 수준)은 채권 금리와 밀접한 관계를 지닌다. 성장 기업의 주가에는 미래의 현금흐름이 반영돼있는데, 차입을 일으켜 자금을 조달하기 때문에 채권 금리가 오르면 현 주가의 할인율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으로 글로벌 경기 위축이 심각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자, 연준이 긴축 속도를 늦출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지난 달 28일(현지 시각) 시카고상품거래소(CME)의 페드워치 툴(FedWatch tool)에 따르면, 단기 금융 시장 참여자들은 연준이 이달 기준금리를 25bp 인상할 확률을 93.4%로 봤다. 50bp 인상할 확률은 6.6%에 불과했다.
지정학적 위기가 본격적으로 불거지기 전까지만 해도 연준이 높은 인플레이션을 잠재우기 위해 단번에 50bp를 높일 것이라는 관측이 많이 나온 바 있다. 올해 안에 총 7번의 금리 인상을 단행할 것이라는 추측까지 나왔다. 높은 물가지수를 잠재우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처방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장기화 가능성은 투자자들의 우려를 물가보다 경기 둔화에 쏠리도록 만들고 있다.
이은택 KB증권 연구원은 "미국은 올해 3분기까지, 중국은 2분기까지 경기 둔화가 지속될 것"이라며 "특히 반도체 기업의 이익률이 다소 과대평가되고 있어, 원자재 가격 등 비용 상승이 이익률 추정치를 낮출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미래 경기에 대한 우려를 반영하는 미 국채 10년물 금리는 지난 달 23일 이후 14% 넘게 하락했다. 기준금리와 밀접하게 연동된 미 국채 2년물 금리도 같은 기간 17% 가량 떨어졌다. 지난해 4분기부터 꾸준히 상승 곡선을 그려온 국채 금리가 약 4개월 만에 하락세로 돌아선 것이다.
이제 전세계 투자자들의 시선은 15~16일(현지 시각) 열리는 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 쏠리고 있다. 연준이 기준금리를 얼마나 높일 지, 앞으로의 긴축 속도를 얼마나 조절할 지에 따라 기술 성장주에 베팅한 투자자들의 선택이 적중할 지도 판가름 날 것이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