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호 LB인베스트먼트 대표가 지난 8일 오후 서울 대치동 LB인베스트먼트 본사에서 조선비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오종찬 기자

유동성 잔치는 끝났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양적완화 축소와 기준금리 인상에 돌입하며 현금을 거둬들이고 있다. 이에 넘쳐나는 시중 자금에 초유의 호황을 맞았던 스타트업들도 중요한 변곡점을 맞았다. 주식 시장에서 투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가자, 비상장 스타트업의 기업가치도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조선비즈는 국내 주요 VC를 이끄는 리더들을 차례로 만나 올해 스타트업 시장의 향방과 유망 산업, VC들의 대처 방향에 대해 물었다. [편집자주]

2021년은 한국 스타트업 시장에 여러모로 기록적인 한 해였다. 벤처 펀드의 결성액은 9조2000억원을 돌파해 투자 재원이 총 41조원 넘게 모였다. 벤처캐피털(VC)의 신규 투자 금액은 7조7000억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그만큼 스타트업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솟았고, VC 간 경쟁은 그 어느 때보다 치열했다.

범 LG가(家) VC로 잘 알려진 LB인베스트먼트는 지난해 가장 눈에 띄는 투자 및 회수 성과를 낸 투자사 중 한 곳이다. 신규 투자 건수는 1700건을 기록했으며, 680억원짜리 펀드는 2024억원으로 불려 성공적인 엑시트(투자금 회수)를 완료했다.

LB인베스트먼트가 기록한 괄목한 성과의 중심에는 박기호 대표가 있다. 박 대표는 회사에서 진행하는 모든 투자 건을 직접 검토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한번 투자를 결정하면 시리즈B, C는 물론 상장 이후 후속 투자까지 과감하게 단행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 8일 오후, 서울 대치동 LB인베스트먼트 본사에서 박 대표를 만났다. 박 대표는 벤처 투자 시장이 긴축 국면에서도 계속 성장해나갈 가능성이 크지만, 선발 기업과 후발 기업 간 양극화가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지난해 투자 성과를 간략히 소개한다면.

“2011년 결성한 ‘KoFC-LB Pioneer Champ 2011-4호’ 펀드를 내부수익률(IRR) 24.3%로 청산했다. 쉽게 말하면 투자 기간 동안 매년 24.3%의 복리 수익률이 난다는 의미다. 처음 결성액이 680억원이었는데 회수 금액 2024억원을 달성했다. 성과보수로는 233억원이 발생했다. 한 펀드에서 하이브, 펄어비스, 덱스터(영화 ‘신과 함께’ 등의 시각 효과를 담당한 특수 효과 업체), 스타일쉐어, 직방 등 유니콘(기업 가치가 10억달러가 넘는 스타트업)에 두루 투자해 좋은 성과를 냈다. 특히 하이브에 65억원을 투자해 20배 넘는 수익을 냈으며, 펄어비스에는 50억원을 투자해 780억원을 회수했다.

2014년 결성한 1159억원짜리 펀드도 이달 만기가 돌아오는데 연장할 계획이다. 청산 전에 벌써 3000억원대 중반까지 늘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달성한 IRR만 20%가 넘는 셈이다. 지난해 말 상장한 바이오 기업 툴젠, 제넥신, 또 올해 상장할 컬리(마켓컬리 운영사) 등이 특히 우수한 성과를 냈다.

과거에는 1000억원짜리 펀드가 IRR 5~7%만 달성해도 굉장한 성과로 평가 받았다. 이처럼 2~3배 불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유니콘을 넘어 데카콘(기업 가치가 100억달러가 넘는 스타트업)을 향해 성장하는 기업들이 많이 나오며 스타트업의 성장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어, 그동안 우리가 지속해온 투자 전략이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미국 뉴욕 타임스퀘어에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등장하는 대형 광고가 표출돼있다. /네이버웹툰 제공

최근 시중 자금이 워낙 많아 투자금을 집행하는 VC 간 경쟁이 치열했다. 올해도 이 같은 현상이 계속될 것으로 전망하는지.

“올해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연초부터 주식시장이 조정을 받고 있는데 비상장 시장에서는 전혀 아무런 조짐이 나타나지 않으며, 오히려 스타트업들의 몸값은 더 오르고 있다. 본래 증시 상승기에는 상장사의 몸값이 오르면 비상장사의 기업가치가 금방 따라 오르지만, 하락기에는 상장사·비상장사의 가격 조정 간 시차가 크다. 게다가 작년에만 9조원 넘는 펀드가 새로 결성됐다. 이 같은 상황에서 비상장 스타트업의 기업가치가 하락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넘치는 유동성이 스타트업의 몸값 상승을 주도해나갈 것이라는 뜻인가.

“유동성도 원인이라고 볼 수 있으나, 비상장사 외에 마땅한 투자처가 없다는 것도 중요한 이유다. 부동산 투자 기회는 규제 때문에 막혀 있으며 상장 주식 시장은 이미 조정을 받기 시작했고 저금리는 지속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지속된 2년 간 우리 사회에는 큰 변화를 위한 힘이 농축돼왔는데, 그것이 결국 스타트업에 대한 기대를 더해 투자 수요의 증가를 낳고 있다. 2년 동안 확대된 유동성은 코로나 종식 이후에도 새로운 산업 영역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 팬데믹의 수혜를 본 모바일 서비스, 디지털 분야에는 계속 돈이 몰릴 것이다.

결국 벤처·스타트업 시장은 장기적으로 우상향할 수밖에 없다. 다만 최근 2~3년 간 기업가치가 단기간 지나치게 급등한 면이 있기 때문에 일부 기업은 일시적으로 상승폭이 작아지거나 소폭 조정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어떤 기업이 소폭 조정을 받을까.

“동종업계 내의 선두 기업 몸값은 견고할 것이다. 반면 하위 그룹은 조정을 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1~100위 기업이 있다면, 1~20위 기업은 가치가 오히려 오를 것이며 50위 밑으로는 일시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있다. 즉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2000년대 초 우리나라에 수많은 포털 기업이 있었지만 결국 살아 남은 회사는 네이버와 다음뿐이지 않나. 모바일 메신저 애플리케이션도 우후죽순 생겨났지만 결국 카카오톡 하나만 남았다.”

스타트업의 ‘옥석 가리기’가 중요하다는 것인데, 옥석은 어떻게 가릴 수 있나.

“핵심 경쟁력의 유무를 잘 봐야 한다. ‘내가 이런 서비스를 남들보다 먼저 출시했다’는 것은 핵심 경쟁력이 될 수 없다. 다른 업체에서 따라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벤처캐피털리스트는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이 아닌 서비스를 ‘사는’ 사람이다. 종국에 성공적 결과물을 낼 수 있는 경쟁력이 무엇인지 잘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투자한 회사 중 반려동물의 분비물로 건강도를 측정하고 식품, 보험 서비스까지 연계하는 피펫이라는 곳이 있다. 이 회사는 2년 간 동물의 분비물을 갖고 일일이 실험하며 방대한 양의 빅데이터를 뽑아냈다. 그건 경쟁사에서 쉽게 따라할 수 없는 경쟁력이다.”

지난해 모바일 플랫폼과 이커머스 산업이 압도적으로 성장했는데, 올해는 어떤 영역이 주목 받을지.

“종합 커머스가 아닌, 특정 섹터에 국한된 버티컬 커머스가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 예를 들어 코로나19 팬데믹 국면에서 외출이 제한되니 집을 꾸미려는 수요가 늘며 ‘오늘의 집’ 같은 인테리어 커머스 플랫폼이 성장했다. 또 해외 여행을 못하게 되자 명품 온라인 쇼핑 수요가 어마어마하게 몰리고 있다. 우리 회사에서는 트렌비에 100억원을 투자했는데, 월 매출액이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트렌비와 발란, 머스트잇을 명품 이커머스 시장의 3대 강자로 부른다). 지난해 12월 거래액이 500억원이었는데, 이는 같은 해 연초(120억원) 대비 4~5배 가량 증가한 수준이다.”

박기호 LB인베스트먼트 대표가 지난 8일 오후 서울 대치동 LB인베스트먼트 본사에서 조선비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오종찬 기자

이커머스 플랫폼에서 명품 소비는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는지.

“명품의 온라인 구매는 MZ세대(밀레니얼+Z세대·1981~2010년생)들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MZ세대는 명품을 구매한 뒤 다시 중고로 되파는 식의 소비를 많이 한다. 친구들끼리 돈을 모아 한정판 상품을 구입해 돌아가면서 사용한 뒤 비싼 값에 되팔아 수익이 나면, 그 수익금을 나눠 갖는 경우도 있다. 이 때문에 MZ세대의 명품 시장은 중고 시장과 맞물려 작동한다.”

최근 많은 버티컬 커머스 업체들이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컬리의 경우 초창기 신선식품을 판매했는데 요즘은 가전까지 팔지 않나.

“일단 특정 섹터에서 충성 고객을 확보하고, 해당 고객들에게 신뢰를 받으면 점진적으로 영역을 확장해나가는 것이다. 성장 한계 때문에 불가피하게 나타나는 현상인데, 나는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생존을 위한 전략적 선택이다. 음악 기획사도 드라마 기획사 및 콘텐츠 제작사와 합종연횡하는 사례가 많지 않나. 하이브의 경우 위버스(팬들을 위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 플랫폼을 만들어 그 안에서 콘텐츠를 서비스하고 있다. 영역 구분이 의미 없어지는 단계로 나아가는 바람에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다.”

버티컬 커머스 외에 또 어떤 산업이 유망할까.

“가상화폐 산업 생태계가 결국 점점 더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지난해 주식시장이 급변동하는 와중에도 플레이투언(P2E·돈 버는 게임)과 NFT(대체불가능토큰·Non-Fungible Token) 기술을 적극 도입한 게임 회사 주가는 크게 오르지 않았나. 과거 폐쇄적인 시장에서 유저들끼리 사고 팔던 아이템에 토큰을 붙여 거래하도록 만든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급성장한 메타버스(가상세계)의 경우 자본 시장에서 지나치게 주목 받은 감이 있지만, 그 시장은 장기적으로 분명히 성장할 수밖에 없다. 사이버 공간에서 구현된 세상과 다양한 서비스는 우리가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방향이다. 메타버스에 필요한 핵심 기술부터 메타버스 안에서 작동하는 NFT 경제까지 가상화폐 생태계는 하나의 큰 축을 이루게 될 것이다.”

LB인베스트먼트는 하이브에 투자해 막대한 수익을 올렸는데, 혹시 그 외에 투자한 연예 기획사가 있는지 궁금하다.

“가수 선미, 뱀뱀, 이스포츠팀 ‘담원’이 소속된 어비스컴퍼니에 투자했다(이 회사는 지난 달 기업가치 1000억원을 인정 받은 바 있다). 이동형 대표가 대학교 신입생일 때부터 사업에 관심을 갖고 있다가 군대에서 전역한 후 바로 창업한 회사다. 어비스컴퍼니는 ‘리빌딩(rebuilding)’을 굉장히 잘하는 기획사다. 기존 소속사와의 계약이 만료됐거나 인기가 과거보다 덜한 가수의 잠재성을 잘 찾아내 기획적으로 마케팅을 한다.”

인공지능(AI) 스타트업의 인기는 어떨지.

“이제는 AI 기술 자체를 개발하는 회사보다는 AI를 활용해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회사에 주로 투자한다. 최근 원프레딕트라는 회사에 50억원을 투자했는데, 이 회사는 전력 공급 체계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할 지 AI가 빅데이터를 토대로 예측하는 시스템을 개발한다. 전통 산업 영역에 AI를 접목한 전형적인 사례다.”


VC의 재원으로 가상화폐를 직접 사들이는 방안도 고려 중인지.

“그건 제도적 측면에서 많이 고민해봐야 하는 문제다. 설령 투자를 한다 해도 수익 실현을 하기 위해서는 관련 법규가 필요한데, 전통 VC들이 접근하기는 아직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영역이다.”

바이오 벤처·스타트업은 한국거래소의 상장 심사 관문이 높아져 엑시트가 어려워졌다는 얘기가 많이 나온다. 바이오 기업에 대한 투자는 줄여나갈 생각인지 궁금하다.

“기술 특례 상장 심사 기준이 강화하며 바이오 벤처 시장의 엑시트가 단기적으로는 어려워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늘 바이오 기업에 대한 투자 비중을 20% 정도로 유지해왔다. 바이오 벤처 투자가 유행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세계 시장에서 통할 만한 핵심 기술을 가진 바이오 기업에는 지속적으로 투자할 생각이다. 결국 핵심 경쟁력을 보유한 바이오 기업은 옥석 가리기 게임을 넘어서 ‘옥’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VC들도 그것을 믿고 끈기 있게 버텨주는 힘이 필요하다.”

VC 사이의 투자 경쟁이 치열한데, LB인베스트먼트의 가장 큰 경쟁력은 무엇일까.

“선택하고 집중하는 투자 전략을 고수하고 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표현처럼 창업 초기 단계에서 한번 연을 맺으면 상장 및 엑시트(투자금 회수) 이후에도 함께 가는 경우가 많다. 프로젝트 펀드를 따로 결성해 상장한 회사 지분을 취득하곤 한다. 예를 들어 반도체 기업 센코는 상장하기 전에도 투자를 했는데, 2020년 상장한 후 또 투자하기 위해 257억원 규모의 프로젝트 펀드를 포스코와 함께 만들었다.

또 식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업체와 한 약속은 꼭 지키고 투자자로서의 의견과 생각은 정직하게 전달할 필요가 있다. 시장에 돈이 넘치고 혼란한 시기일 수록 그러한 기본을 잘 지키는 VC가 최고의 파트너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