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금이 연초부터 2차전지 분야 대형주를 대거 사들이고 있다. '70조 대어(大魚)' LG에너지솔루션의 상장을 앞두고 동종 업체들의 주식을 선매수하는 모양새다.

증권업계 관계자들은 SK이노베이션(096770)삼성SDI(006400)가 LG에너지솔루션의 대안이 되고 있다고 분석한다. LG에너지솔루션의 유통 가능 주식이 워낙 적어 기관의 물량 확보 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동종 업계 대형주라도 미리 포트폴리오에 담으려는 수요가 많다는 얘기다.

반면 지난해 연기금으로부터 사랑 받았던 게임주와 엔터테인먼트주는 정초부터 대량 매도되고 있다. 전세계 주요국 경제가 긴축 기조로 돌아서며 금리가 오르자, 게임을 비롯한 기술 성장주의 하방 압력이 높아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런 전망 때문에 연기금이 손실을 줄이기 위해 게임주와 엔터테인먼트주 등을 매도하며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그래픽=이은현

◇ LG엔솔 유동비율 10%도 안 돼…"동종 업체 주식이라도 담아야"

26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들어 연기금이 가장 많이 사들인 종목은 SK이노베이션이었다. 한 달도 안 되는 새 1434억원을 순매수했다. 2위는 525억원을 기록한 삼성SDI였다.

작년까지만 해도 2차전지는 연기금으로부터 외면 받은 테마였다. 연기금은 지난해 SK이노베이션과 삼성SDI 주식을 각각 7571억원, 1조1263억원 순매도했다.

지난해 초부터 2차전지 업체들의 주가가 대폭 오른 상황에서 업황이 악화하자 밸류에이션(기업 가치 대비 주가 수준) 부담이 커졌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낳은 차량용 반도체 공급 차질은 전기차 배터리 주문량의 감소로 이어졌고, 이는 2차전지 업체의 공장 가동률 하락과 고정비용 증가를 야기했다.

증권 업계 관계자들은 연기금이 올 들어 '변심'한 이유를 LG에너지솔루션에서 찾는다. 27일 유가증권시장에 입성하는 LG에너지솔루션은 공모가 기준 예상 시가총액이 70조2000억원에 달하며, 향후 100조원까지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시총이 140조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제시한다.

LG에너지솔루션이 시총 2~3위에 오른다는 것이 이미 기정사실화한 분위기에서, 물량 확보를 위한 기관들의 경쟁은 치열할 수밖에 없다. LG에너지솔루션의 상장 후 유통 가능 물량은 전체의 9.47%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대주주와 우리사주조합이 보유한 지분, 그리고 기관 수요예측 단계에서 최장 6개월의 의무보유 확약이 걸린 물량이다.

일러스트=손민균

손주섭 케이프투자증권 연구원은 "LG에너지솔루션은 상장 후 코스피200 같은 주요 지수에 편입되는 것은 물론, 지수 안에서 상당히 높은 비중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며 "물량을 충분히 담지 못한 펀드는 자연스럽게 벤치마크 지수보다 낮은 수익률을 기록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기관들이 LG에너지솔루션 못지 않은 수익을 낼 만한 종목을 미리 확보하기 위해 경쟁 중이라는 것이다.

손 연구원은 "향후 LG에너지솔루션의 주가가 오르면 시총 상위권에 있는 다른 종목들의 주가는 악영향을 받겠지만, 2차전지 테마는 함께 오를 가능성이 있다"며 "동종 업체들의 밸류에이션이 상대적으로 저평가됐다는 인식도 있어, 이들 종목을 미리 사는 것이 유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균 삼성증권 연구원도 "LG에너지솔루션이 공모를 통해 받은 자금으로 설비 등에 투자하면 2차전지 업황 자체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며 "이 경우 LG에너지솔루션 주식을 확보하지 못하더라도 후방 효과를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 작년에 사랑 받은 게임주, 금리 상승기엔 매력 떨어져

2차전지주가 LG에너지솔루션의 '후광'을 입고 연기금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면, 지난해 수요가 집중됐던 게임주는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했다.

작년 8월 상장한 크래프톤(259960)의 경우, 지난해 연기금의 순매수액이 1조1781억원에 달했으나 올해는 1627억원어치 매도됐다. 연기금은 카카오게임즈(293490) 역시 지난해 2177억원 순매수했으나 올 들어 486억원어치를 팔았다. 펄어비스(263750)도 올 들어 연기금의 외면을 받고 있다. 작년 순매수액은 630억원이었지만, 올해는 255억원 순매도다.

그 외에 게임업체 위메이드(112040), 엔터테인먼트 업체 하이브, JYP Ent.##와 와이지엔터테인먼트도 올해 연기금의 순매도액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크래프톤 배틀그라운드 gif

연기금이 올 들어 게임 및 엔터테인먼트 관련주를 대량 매도하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금리 상승이다.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아지며 전세계 주요국 중앙은행이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 및 기준금리 인상을 서두르자, 시장 금리가 연일 고공행진 중이다.

지난달 19일까지만 해도 1.377%에 그쳤던 미 국채 10년물 금리는 이달 18일 1.875%로 급등했다. 이처럼 시장 금리가 오르면 기술 성장주는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성장주는 미래의 성장성을 근거로 주가가 오르는데, 금리가 오르면 비용이 많이 들어 미래 현금 흐름이 나빠지기 때문이다.

전 연구원은 "게임주는 작년 한해 동안 NFT(대체불가능토큰·Non-Fungible Token)와 메타버스(가상세계) 등과 엮이며 많이 올랐지만, 올해는 기술주의 전반적인 밸류에이션 부담과 중국의 규제 등 악재 때문에 투자 매력이 떨어진 상황"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