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긴축 우려에 증시가 전반적으로 부진한 흐름을 이어가는 가운데 실적 둔화 가능성과 옵션 만기 영향까지 맞물리며 빅테크주가 낙폭을 키웠다. 증권가에서는 당분간 시장 변동성이 계속되고, 주가가 추가로 하락할 수 있는 만큼 저가매수에는 신중해야 한다는 전망에 무게를 실었다.

지난 달 28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 증권거래소(NYSE) 입회장에서 트레이더들이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21일(현지 시각) 뉴욕 증시에서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전날보다 450.02포인트(1.3%) 하락한 3만4265.37,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84.79포인트(1.89%) 내린 4397.94에 거래를 마쳤다. 빅테크 등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지수는 385.10포인트(2.72%) 밀린 1만3768.92에 장을 마감했다.

연초부터 뉴욕 3대 지수 중 나스닥지수는 유독 맥을 못 추는 상황이다. 올해 들어 하락률만 12%다. 금융정보업체 팩트셋에 따르면 지난 20일까지 새해 첫 14거래일 동안 나스닥지수 낙폭은 2008년 이후 최대를 기록했다. 연초 이후 S&P500지수 하락률은 7.72%, 다우지수는 5.7% 하락했다.

서정훈 삼성증권(016360) 연구원은 “이번 주 진행되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앞두고 연준의 긴축 강도에 대한 투자자들 불안감이 커졌다”며 “마침 옵션 만기일이라 매물이 쏟아지고, 실적에 대한 실망감까지 겹치면서 시가총액 상위에 포진된 빅테크주가 일제히 하락했다”고 설명했다.

빅테크주는 서학개미(해외주식에 베팅하는 국내 개인투자자)가 미 증시에서 가장 많이 사들이는 종목들이다. 지난해 1월 4일~12월 30일 기준 서학개미 순매수 상위 종목 10개 중 상장지수펀드(ETF)를 제외한 종목은 모두 빅테크주였다. 테슬라, 애플, 알파벳, 엔비디아, 마이크로소프트 등이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

2021년 서학개미 순매수 상위 종목. /그래픽=손민균

앞서 넷플릭스 주가는 21일(현지 시각) 정규장과 시간외 거래에서 21.8% 급락했다. 지난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수혜주로 분류되며 기록한 고점(700달러)와 비교해 40% 이상 하락한 수준이다. 향후 신규 가입자 수 증가 추세가 둔화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인데, 넷플릭스 실적은 사실상 가입자 수에 좌우되고 있다.

넷플릭스가 휘청대자 월트디즈니, 로쿠 등 다른 스트리밍 업체들도 동반 약세를 나타냈고, 실적 발표를 앞둔 빅테크 기업들도 부진했다. 애플, 마이크로소프트가 각각 1.3%, 1.9% 내렸고, 구글 모회사인 알파벳은 2.2% 하락했다. 메타 플랫폼스와 테슬라가 각각 4.2%, 5.3% 떨어졌고, 아마존은 6% 가까이 하락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갈등 역시 주가 낙폭을 키운 요인으로 꼽혔다. 만약 두 나라의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커져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면 인플레이션을 통제할 수 없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최근 주식시장 조정의 본질은 인플레이션에 따른 통화정책 긴축 불안감이다.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 시장 약세가 변동성을 더했다는 분석도 있다.

증권가에서는 이번 주를 지나면서 변동성이 정점을 통과할 가능성이 크지만, 빅테크주를 비롯해 미 증시가 추세적으로 반등하기까지는 시간이 다소 소요될 것으로 내다보는 분위기다. 통화정책 불확실성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까지는 추가 하락이 계속될 수 있기 때문에 저가매수는 신중히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일혁 KB증권 연구원은 “한동안 잠잠하던 S&P500 변동성 지수 VIX와 나스닥100의 변동성 지수 VXN 모두 급등했다”며 “시장 하락 공포에 보유한 주식을 매도하는 투자자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고 했다. 그는 이어 “하락이 하락을 부르는 흐름은 조금 더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김 연구원은 “팬데믹 이후 투기성이 강한 신용증거금을 활용한 매수세가 매우 강했다”며 “시장이 상승할 때 상승세를 부추겼던 신용증거금이 지금처럼 주가가 떨어지는 시기에는 반대로 하락세를 부추길 가능성이 높고, 연준에서 시작된 유동성 축소는 이제 막 시작됐는데 시장에선 이 우려를 충분히 반영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노동길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지난주 빅테크 변동성을 키운 옵션 만기 영향력이 점차 줄어들면서 조만간 빅테크 하락 속도가 둔화될 순 있겠다”며 “1월 FOMC에서 별다른 악재를 찾지 못할 가능성도 높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주가 조정의 본질은 인플레이션에 따른 긴축 우려이기 때문에 추세적 반등을 기대하긴 이르다”고 덧붙였다.

일시적으로 주가가 반등하더라도 이른바 공포지수로 불리는 VIX, VXN 등을 주시하며 투자심리가 전반적으로 안정되길 기다려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당장 주가가 급락한 만큼 기술적으로 반등하는 모습을 보일 수는 있겠지만 투자에 낙관적이기에는 여전히 조심스럽다는 것이다.

이웅찬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VIX가 충분히 상승하고 안정을 찾아갈 때까지 비로소 주가 하락이 진정됐다고 판단할 수 있다”며 “새로운 리스크가 해소되던지 지수가 추가로 큰 폭 하락하고 매수세력의 손절매(로스컷)이 나오든지 해야 의미 있는 반등 추세가 나타날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