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조 대어(大魚)' LG에너지솔루션의 기관 수요예측 경쟁률이 최대 2000대1에 달한다는 투자은행(IB) 업계의 추측이 나왔다. 지난 11~12일 이틀 간 실시한 수요예측 결과, 국내 기관 경쟁률만 1700대1을 훨씬 넘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희망 공모가 범위(밴드) 상단인 30만원에 공모가를 결정하는 것이 유력해진 분위기다.

기관은 개인 투자자와 달리 증거금이 없어도 청약할 수 있어, 수량을 배정 받고 싶은 만큼 많이 적어낼 수 있다. 이 때문에 1경(京)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진 기관 주문 금액도 기업공개(IPO) 시장 유동성과는 별 관련이 없다. 그럼에도 수요예측 경쟁률은 상장 후 주가 흐름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척도가 된다. 얼마나 많은 기관이 자발적 의무보유 의사를 표하는 지 여부도 신규 상장주의 등락률과 높은 상관관계를 가진다.

그래픽=이은현

14일 조선비즈는 작년 유가증권시장 신규 상장사 14개(스팩, 리츠 제외)의 수요예측 경쟁률과 상장 첫날 종가 간 관계를 분석해봤다. 그 결과, 기관 수요예측 경쟁률이 높았던 회사들은 대부분 상장 첫날 공모가 대비 높은 수익률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상장일 종가의 공모가 대비 상승률이 100%가 넘는 종목은 카카오페이(377300), 일진하이솔루스(271940), 아주스틸(139990), SK바이오사이언스(302440) 등 4개였는데, 이들 기업 모두 기관 수요예측에서 네자릿수 경쟁률을 기록했다.

첫날 이른바 '따상(공모가의 2배에 시초가를 형성한 후 상한가)'에 성공한 일진하이솔루스와 SK바이오사이언스가 수요예측에서 각각 1471대1, 1275대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카카오페이와 아주스틸의 경쟁률은 1700대1이 넘었으며, 상장 첫날 공모가 대비 114%, 122%의 투자 수익을 올렸다.

기관의 수요예측 결과에서는 경쟁률 뿐 아니라 의무보유 확약 비율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의무보유 확약이란 수요예측에 참여하는 기관이 자발적으로 설정하는 것이다. 상장 후 15일~6개월 간 보유 주식을 팔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기관 보유 주식에 보호예수(락업)이 걸리면 상장 직후 물량이 과도하게 출회해 주가를 떨어뜨릴 위험이 작아진다. 이 때문에 상장을 추진하는 회사는 6개월 의무보유 확약을 건 기관에 물량을 배정하길 선호하며, 인기가 치열한 종목일 수록 의무보유 확약 비율도 높아지기 마련이다.

의무보유 확약 비율이 높은 종목들은 대체로 상장 후 성적표도 좋았다. 일례로 에스디바이오센서(137310)는 수요예측 경쟁률이 1000대1을 넘고도 상장일 종가가 공모가 대비 17% 오르는 데 그쳤는데, 이 회사의 경우 경쟁률보다는 의무보유 확약률과 주가의 상관관계가 높았다. 의무보유 확약 비율이 12%에 불과했던 것이다. 많은 기관 투자자들이 몰렸지만 시장에 나올 수 있었던 물량이 상대적으로 많았기에, 상장 당일 주가 흐름도 부진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해 3월 18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SK바이오사이언스의 상장 기념식이 진행되고 있다. /한국거래소

공모주 투자 수익률이 낮았던 기업들은 대부분 수요예측 경쟁률과 의무보유 확약 비율 모두 저조했다. 중고차 업체 케이카(381970)의 경우 상장 첫날 종가가 공모가보다 8% 낮았는데, 이 회사는 수요예측에서 40대1의 경쟁률을, 의무보유 확약 비율 4.91%를 기록하는 데 그쳤다. 게임 '배틀그라운드'를 만든 크래프톤(259960) 역시 수요예측 경쟁률과 의무보유 확약률이 각각 243대1, 22%로 비교적 낮았으며, 상장 첫날 공모가보다 9% 낮은 가격에 거래를 마쳤다.

한편, 개인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한 일반 공모 청약 경쟁률은 상장 후 주가와의 상관관계가 비교적 낮았다. 카카오뱅크(323410)는 공모 청약 경쟁률이 181대1에 그쳤지만 상장일 종가의 공모가 대비 상승률이 80%에 달했다. 카카오페이(377300) 역시 일반 공모 청약 경쟁률이 30대1에 불과했다. 다만, 카카오페이의 경우 100% 균등 배정을 적용했기 때문에 청약 경쟁률 자체는 큰 의미가 없었다.

이석훈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기관의 수요는 시장의 수요를 반영하는 매우 중요한 1차적 정보가 된다"며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하는 대형주는 특히 개인보다 기관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아, 기관의 수요가 상장 후 주가와 더 밀접한 연관 관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개인 투자자들은 공모 청약 시장에 참여하면 상장 첫날 팔고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인 만큼, 개인 청약 경쟁률이 높아도 상장 당일 주가가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다"며 "반대로 기관은 자발적 의무보유를 통해 상장 후 일정 기간 주식을 내놓지 않기 때문에, 기관의 경쟁률이나 의무보유 확약 비율이 상장 후 주가 흐름을 예측할 수 있는 더 정확한 척도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