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장(Bull Market)이란 본래 증권 시장에서 사용되는 관용어다. 황소가 뿔로 치받는 모습에서 따온 단어로, 아래서 위로 솟는, 즉 상승장을 의미한다.

장미셸바스키아의 1983년작 '인 디스 케이스(In this case)'. 지난해 5월 크리스티뉴욕 경매에서 9310만달러에 낙찰됐다. /크리스티

작년부터는 미술품 시장에 대한 뉴스를 볼 때도 불장이라는 단어를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롤렉스 시계나 샤넬 매장에서만 보던 이른바 '오픈런(백화점 문이 열리자마자 쇼핑하기 위해 달려가는 것)'이 아트페어에서도 나타났고, 그림 한 점이 54억5000만원에 낙찰된 사례도 등장했다. 미술 시장은 여러 모로 기록적인 한 해를 맞이했다.

그러나 전세계 미술 시장으로 눈을 돌려보면, 국내 불장도 '새발의 피' 수준이다. 지난해 전세계에서 최고 낙찰가를 기록한 동시대 미술품은 미국 화가 장 미셸 바스키아(1960~1988)의 '인 디스 케이스(In This Case)'였는데, 가격이 무려 9310만달러였다. 20년 전 가격(99만9500달러)의 90배가 넘는다. 한화로는 약 1100억원으로, 국내 경매에서 최고가를 기록한 야요이 쿠사마의 '호박' 20점을 살 수 있는 금액이다.

미술 시장 분석 업체 아트프라이스에 따르면, 2020년 하반기부터 2021년 상반기까지 1년 동안 전세계에서 발생한 동시대 미술(컨템포러리 아트) 매출액은 27억달러(3조2000억원)에 달했다. 전년 같은 기간의 2배에 달하는 금액이자 사상 최대치다. 동시대 미술은 대략 1970년대 이후의 사조를 한정해 가리키는 용어다. 전체 매출액의 60%는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 뉴욕과 홍콩에서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여느 시장이 그렇듯 미술 시장을 논할 때도 국내 상황만 보는 것은 한계가 있다. 우리 시장이 지금처럼 빠른 속도로 성장하며 세계적으로 입지를 강화해나가는 시기에는 더욱 그렇다. 국내 미술 시장의 향방을 가늠하려면 글로벌 시장, 특히 아시아 미술의 허브이자 우리의 벤치마킹 대상이라 할 수 있는 홍콩 시장을 잘 봐야 한다.

홍콩 미술 시장이 아시아의 허브로서 지녔던 독보적인 위치가 이전과 같지 않다고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아시아 시장의 중심은 홍콩이다. 한국 화가 김환기(1913~1974)의 132억원짜리 그림만 해도 서울이 아닌 홍콩 경매에서 팔렸다. 한국 시장에서 그 정도로 비싼 작품에 대한 수요가 발생하기는 아직 역부족이라는 판단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홍콩 미술 시장에서는 어떤 작가의 작품이 가장 인기 있을까. 현재 전세계 화단을 점령한 작가는 바스키아이며, 이는 홍콩 시장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과거 홍콩 미술 시장에서 중국계 화가들의 작품 비중이 높았다면, 이제는 전세계 바스키아 작품 판매액의 36%를 홍콩 시장이 차지하고 있다고 아트프라이스는 전했다. 1년 간 바스키아 작품은 아시아 시장에서 1억1820만달러(약 1400억원)어치 판매됐다.

작품 당 가격은 바스키아가 압도적으로 높으나, 전체 낙찰가에서는 일본 작가 요시토모 나라가 바스키아를 꺾고 1위를 기록했다. 아시아 시장에서 1년 간 요시토모 나라의 작품 358점은 총 1억3750만달러(약 1640억원)에 낙찰됐다. 낙찰 총액 3위는 중국 화가 리우 예(Liu Ye)가 차지했다. 총 5520만달러(약 660억원)의 낙찰액을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