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코스닥시장 상장사 오스템임플란트의 주식 매매거래가 돌연 정지됐다. 최근 한 달 동안 주가가 20% 가까이 급등하며 ‘잘 나가던’ 국내 1위 임플란트 기업의 상승 랠리를 막아선 것은 한 직원의 횡령·배임 소식이었다. 재무 담당 직원 이모씨가 1880억원에 달하는 거금을 횡령한 것으로 드러나 곧바로 상장적격성 실질심사의 기로에 놓였다.

임직원의 횡령이나 배임 및 감사의견 거절 등으로 인한 상장폐지 사례는 최근 3년 간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지난해에만 총 20건이 발생했는데, 이는 2013년(27건) 이후 8년 만의 최다 기록이다.

증시 전문가들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상장사 간 실적·재무 건전성 양극화가 심화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회생이 어려운 지경으로 내몰리는 부실 기업들도 늘어나고 있다고 말한다. 기업의 재무 건전성이 악화되면 횡령이나 배임 등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확률도 높아진다. 이는 결국 상장 기업의 증시 퇴출이라는 최악의 결과를 낳기 쉽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그래픽=이은현

이날 한국거래소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주식시장에서 불미스러운 이유로 상장폐지된 종목은 총 20개에 달했다. 전년도 상장폐지 기업 수(15개)보다 5개 많다. 스팩(SPAC·기업인수목적회사)이나 우선주를 제외하고 보통주 주권만 집계했다. 타 기업에 편입되며 자연스럽게 증시에서 떠났거나 자진 상폐된 기업도 제외했다.

상장폐지 대상은 한국거래소가 정해 놓은 일정 기준에 도달한 기업이다. 즉시 퇴출될 수도 있고, 관리종목 지정 단계를 거쳐 폐지가 이뤄질 수도 있다. 유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형식적인 상장폐지 요건을 충족한 경우다. 감사보고서의 감사의견 거절이 대표적인 예다. 최근 사업연도 사업보고서상 자본금이 전액 잠식되거나 자본금 50% 이상 잠식이 2년 연속 이뤄질 경우에도 자동으로 상장폐지된다.

두번째는 상장적격성 실질심사를 거치는 경우다. 횡령·배임 혐의가 있거나 분식회계, 영업정지, 중요 사항 허위 기재, 상장폐지 요건을 피하기 위한 유상증자나 분할 등이 발생하면 기업심사위원회의 심사를 받게 된다. 최근 직원의 횡령으로 증시 퇴출 위기에 놓인 오스템임플란트의 사례 역시 여기에 해당한다.

지난해 퇴출 기업이 증가한 주된 이유는 두번째 사례, 즉 상장적격성 실질심사를 통한 상장폐지가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에이팸·이매진아시아·이엠네트웍스·지유온 등 4개 기업이 전직 대표이사의 횡령 혐의로 상장폐지됐다. 그 외에 ‘행남자기’로 오랜 기간 높은 인지도를 얻었으며 영화 투자 사업에도 진출했던 행남사는 회계처리 기준을 위반하며 증시에서 퇴출됐고, 에이치디(옛 해덕파워웨이)는 옵티머스 사태의 자금 세탁처로 지목받으며 상장폐지됐다. 전년도(2020년)에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끝에 퇴출된 기업이 3개에 불과했던 것과 비교하면 뚜렷한 증가세다.

일러스트=손민균

거래소 측은 상장적격성 실질심사가 까다로워진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거래소 코스닥시장본부 상장관리부 관계자는 “실질심사를 통해 상장폐지를 결정한 이후에도 적정한 계획을 제시하면 개선 기간을 부여하는 등 기회를 주고 있다”며 “최근 심사 기준이 강해졌거나 부실한 기업들이 급증했다든가 하는 가시적 변화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도 상장폐지 위기에 놓인 종목은 100개가 넘는다. 거래소에 따르면 3일 현재 유가증권 및 코스닥시장에서 관리종목으로 지정된 종목(보통주)은 106개에 달하는 상황이다. 그중 48개는 지난 한해 동안 관리종목 리스트에 올랐다.

관리종목 지정은 상장폐지 기준에는 미달했지만 향후 증시 퇴출 우려가 있는 기업들이 거래소로부터 받는 일종의 ‘유예 조치’다. 관리종목으로 지정된 후 1년 간 누계 벌점이 15점 이상 추가됐거나 90일 이내 관리 지정 사유가 해소되지 않을 경우 상장폐지될 수 있다. 관리종목뿐 아니라 그 전 단계인 ‘환기종목’으로 지정된 업체도 53개사에 달한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실적이 좋아진 회사들도 많지만, 산업 구조에 근본적인 변화가 나타나며 기존 전통산업 영역의 상장사들은 상당수가 회생조차 어려운 한계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며 “최근 들어 기업 간 양극화 현상이 매우 심화한 상태”라고 말했다.

황 선임연구위원은 “실적이 좋은 기업은 비도덕적인 수단을 동원하지 않아도 정상적으로 운영되나, 한계에 내몰린 기업에서는 어려울수록 내 밥그릇부터 챙겨야겠다는 심리가 강해지면서 모럴해저드가 발생하기 쉽고 결국 상장폐지될 가능성도 그만큼 커질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