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들어 주식시장에서 대규모 순매수를 지속해온 기관 투자자들이 29일 '팔자'로 돌아섰다. 국내 기관은 하루 만에 1조7000억원어치 현물을 쏟아내며 주가 지수의 하방 압력을 높였고, 결국 이날 코스피지수는 3000선을 밑돌며 2993.29로 마감했다.
연일 무서운 기세로 주식을 사들이던 기관이 돌연 1조7000억원의 팔자세로 돌아선 이유는 이날이 배당락일이었기 때문이다. 배당 수익을 노리고 현물을 매수했던 기관 투자자들이 배당락 이후 주식을 팔아 차익을 낸 것으로 풀이된다.
증권업계에서는 내년 초에도 기관 투자자들의 매도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말 배당락일 이후에도 국내 기관 매물이 한 달 간 22조원 가량 출회되며 주가지수에 부담을 준 바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29일 국내 기관 투자자들은 유가증권시장에서 총 1조7368억원어치를 판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증권사 등 금융 투자 기관의 매물이 많이 나왔다. 금융 투자 기관들은 하루 만에 총 1조4950억원을 순매도했다.
기관의 '변심'은 7거래일 만에 이뤄졌다. 국내 기관은 지난 21일부터 28일까지 6거래일 연속 순매수를 지속했는데, 이 기간 사들인 주식이 총 4조원 어치에 달한다. 같은 기간 외국계 기관도 1조원 이상을 순매수해 약 5조원어치를 판 개인과 상반된 모습을 보였다.
배당락일 전후에 이뤄지는 기관의 매도세는 매년 되풀이되고 있다. 지난 3년 간 통계를 살펴보면, 기관 투자자들은 연말 배당락 당일 순매도로 전환해 한 달 간 수조원에서 많게는 수십조원에 달하는 매물을 쏟아냈다.
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배당락일이었던 12월 29일부터 한 달 동안 국내 기관은 유가증권시장에서 총 21조7700억원을 순매도했다. 배당락일이 되자마자 바로 2조원 가량을 팔았으며 올해 1월 11일에는 하루 만에 4조원 이상을 순매도했다.
2018~2019년에도 상황은 비슷했다. 2019년 연말 배당락일부터 한 달 간 국내 기관은 6조원을 순매도했다. 2018년 말 배당락일부터 1개월 동안에도 2조원어치를 팔았다. 그 해 12월 들어 배당락일 전까지 순매수액이 4조원을 넘은 만큼, 그 절반에 해당하는 물량이 고스란히 시장에 나온 셈이다.
전균 삼성증권 연구원은 "최근 5~6년 간 기관 투자자들은 연말 배당락 직전까지 주식 현물을 사들여 배당을 받고 선물을 이용해 차익거래를 하는 패턴을 반복해왔다"고 설명했다.
배당락일 전까지 주식 현물을 들고 있다면 배당을 받을 수 있다. 최근 계속된 기관의 매수 행렬도 배당 수익을 노린 수요였을 가능성이 크다. 기관은 현물을 매수하는 대신 가격 변동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선물을 매도하는 경향이 있다.
배당락일이 되면 기관은 그동안 사들였던 현물을 팔 가능성이 크다. 높은 가격에 팔지 않아도 수익이 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배당락일 전에 1만원짜리 주식을 사서 300원을 배당 받았다고 가정해보자. 다음날 주가가 그대로 1만원을 유지하기만 해도, 투자자는 300원의 차익을 얻는 셈이다. 따라서 1만원짜리 주식을 사 300원의 배당을 확정짓는다면, 배당락일부터는 9700원에 되팔더라도 손해가 나지 않는다. 기관은 반면 그동안 대량 매도해 가격이 낮아진 선물을 다시 매수할 가능성이 크다.
증시 전문가들은 배당을 노린 선·현물의 차익 거래 외에도 개인 투자자들이 대주주 요건을 회피하기 위해 급하게 던진 매물을 저가에 매수한 기관이 많았을 것으로 본다.
현행 세법에 따르면, 증시 폐장일인 12월 30일의 2영업일 전(12월 28일) 기준으로 본인과 직계존비속의 주식 보유분을 합산해 한 종목 보유 금액이 10억원 이상이면 대주주가 된다. 대주주로서 주식을 팔면, 해당 종목 보유 기간 등에 따라 양도차익의 22~33%(지방세 포함)를 세금으로 내야 한다. 이때문에 개인 투자자들은 최근 한 달 간 유가증권시장에서 6조7000억원어치를 팔았다.
증권업계의 한 관계자는 "주식을 수십 억원 어치 보유한 개인 자산가들의 경우 20%가 넘는 양도세를 피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28일까지 보유 주식을 낮은 가격에라도 일시적으로 파는 것이 유리했을 것"이라며 "이 매물을 기관 투자자들이 싼 가격에 대량 매수했을 가능성이 크며, 29일에는 바로 되팔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최근 6일 간 금융 투자 기관들은 현물을 3조원어치 사들였지만 선물 순매도액은 1조원 밖에 되지 않는다"며 "선·현물 차익거래를 위해 유입된 금액은 많아야 1조원에 그칠 것이고, 나머지 2조원은 개인의 매물을 저가에 사들인 수요였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증시 전문가들은 내년 초 국내 증시를 둘러싼 대내외 환경이 좋지 않은 만큼, 기관 투자자들이 예년과 마찬가지로 '팔자' 기조를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리서치본부장은 "내년 2월 베이징올림픽으로 인한 코로나19의 재확산 우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 강화에 대한 투자자들의 우려가 크다"며 "1분기에는 주식 투자 여건이 좋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 본부장은 다만 기관이 매도하는 대신 개인 투자자들은 '사자' 기조를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며, 배당락일 전후의 수급 변동 자체가 주가지수에 미칠 영향이 크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