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등 국가원수 또는 총리나 장관처럼 권력의 정점에 있는 사람들이 내놓은 발언이나 정책은 때로는 엉뚱한(?) 그리고 예상하지 못한 효과를 내기도 한다. 예를 들어 국내에서 시행된 전세 계약갱신 청구권이 대표적이다. 세입자를 보호하기 위해 2년간 추가로 계약을 할 수 있도록 제도를 바꿨지만 집주인들은 갱신 청구를 행사할 것으로 생각해 한 번에 전세 보증금을 크게 올리는 사례가 빈번했다. 임차인인 세입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정책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 것이다.
중국도 예외는 아니다. 최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공동부유(共同富裕), 즉 인민이 함께 부유해지자는 슬로건으로 분배 정책을 강화하고 있는 것이 예상치 못한 명품 수요와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시 주석은 지난 8월 17일 공산당 핵심 지도부가 참석한 제10차 중앙재경위원회 회의에서 공동부유를 강조했다. 이후 알리바바 등 독과점 논란이 있는 기업에서 이익을 회수해 인민들에게 나눠주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알리바바는 연간 순이익의 절반을 기부하기로 했는데 사실상 정부의 공동부유 방침에 따른 조치다.
공동부유는 상대적으로 부유한 주택 보유자에게도 세금을 강화하고 있다. 지난 10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회가 주택 보유자에게 물리는 '부동산세'(房地産稅)를 일부 시범 지역부터 순차적으로 도입하도록 했다. 중국은 주택을 사고팔 때 거래세가 일부 있다. 그러나 한국의 재산세나 종합부동산세에 해당하는 보유세는 사실상 없었는데 이제부터는 이런 보유세를 걷겠다는 의미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시 주석의 부자들에 대한 부동산 규제가 고가의 명품 시계 수요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보도에서 중국의 열정적인 부동산 투자자들의 관심이 부동산에서 명품 시계 시장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보도했다. 또 그 이유를 시 주석의 부동산 투기에 대한 강력한 규제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FT는 명품 시계 수입상과 업계 전문가들을 인용 "중국의 스위스산 고가 시계 수입이 올해 1월부터 10월까지와 비교했을 때 최근 40% 이상 늘었다"고 전했다. 로렉스, 파덱 필립 등 수천 만원에서 수억원에 달하는 시계를 찾는 사람들이 크게 늘고 있다는 얘기다.
중국 시장조사기관 따쉐 컨설팅(Daxue Consulting)의 까미유 고작 연구원은 "(규제로 인해) 부동산 시장이 냉각되고 있고 중국 부유층들이 부동산을 대체할 투자대상을 찾고 있다"며 "명품 시계가 그에 대한 답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롤렉스나 파덱 필립과 같은 고가의 시계는 몇 년이 지난 후에도 가격이 떨어지지 않고 오히려 가격이 소폭 오르는 등 사고 파는 것이 쉽다. 부자들의 입장에선 인플레이션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고 안전자산으로 구입해 놓고 필요할 때 현금화하기가 쉬운 셈이다.
롤렉스나 파덱 필립과 같은 시계 브랜드 이외에 샤넬, 에르메스, 루이비통 등 주요 명품 브랜드에 대한 중국인의 애정은 뜨겁다. 지난해 중국인의 명품 구매 규모는 3500억위안(약 63조원)이었고 2025년이면 세계 명품 시장 매출의 절반이 중국에서 나올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글로벌시장 조사 기업인 유로모니터 인터내셔널에 따르면 올해 럭셔리 상품 시장 규모는 3495억5900만달러(약 415조1300억원)로 지난해보다 13.3% 증가했다. 이는 코로나 19의 장기화로 인한 보복 소비가 늘어난 영향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미국 증시에 상장된 상장지수펀드(ETF)인 LUXE(Emeles Luxury Goods ETF)와 프랑스 증시에 상장된 GLUX(Amundi ETF S&P Global Luxury UCITS ETF) 등도 덩달아 투자자들 관심이 높아지고 있고 루이비통이 속해있는 LVMH(Luis Vuitton Moet Hennessy), 구찌를 보유하고 있는 기업 케링(Kering) 등의 주가도 꾸준히 상승 중이다.
시 주석의 공동부유와 부동산 규제 정책이 중국 명품 시장에 계속해서 영향을 미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런 브랜드들의 주식 또는 상장지수펀드(ETF)에 투자한 국내 투자자들은 시 주석이 이끄는 공동부유가 명품 시장에 미칠 영향을 잘 살펴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시 주석이 롤렉스시계 값을 얼마나 올려놓을지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