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이은현

LG화학(051910)의 배터리 부문 자회사 LG에너지솔루션과 현대건설(000720) 자회사 현대엔지니어링이 내년 초 나란히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한다. 두 회사는 최근 한국거래소의 상장 예비심사를 통과했으며, LG에너지솔루션은 7일 증권신고서를 제출하고 본격적인 기업공개(IPO) 절차에 착수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공모를 통해 최대 12조원의 자금을 조달한다. 예상 시가총액은 약 70조원이다. 현대엔지니어링의 경우, 증권 업계에서 전망하는 공모가 기준 시가총액이 약 10조원이다. 이를 토대로 추산한 공모 금액은 최대 2조원 수준이다.

증시 전문가들은 내년 초 이들 종목이 잇달아 상장하면 증시 자금을 대거 흡수하며 수급 불균형이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하는 분위기다. 다만 신규 상장주 물량은 짧게는 하루 이틀, 길게는 일주일간 집중적으로 쏟아지는 데 그치는 경우가 많다며, 수급 부담이 오래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 LG엔솔 예상 시총 70조원, 현대엔지 10조원...1월부터 차례로 상장

8일 증권 업계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과 현대엔지니어링은 내년 1월부터 차례로 공모 청약을 진행하고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할 전망이다. KB증권이 두 회사의 상장 주관을 모두 맡고 있는 만큼, 청약일이 겹치지 않도록 순차적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두 업체 중 먼저 상장에 나서는 쪽은 LG에너지솔루션이다. 증권신고서에 따르면 이 회사는 25만7000~30만원의 희망 공모가 범위(밴드)를 제시했다. 밴드 상단을 기준으로 추산한 공모 금액은 12조7500억원이며, 상장 후 시가총액은 70조2000억원이다. 단숨에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 3위에 오를 수 있는 규모다.

현대엔지니어링의 시가총액은 많게는 10조원, 적게는 6~8조원으로 추산된다. 김현욱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지금 현대엔지니어링은 장외 주식 시장에서 8~9조원의 시가총액을 인정받고 있는데, 여기에 프리미엄을 부여하면 시총이 10조원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증권 업계에서 말하는 ‘프리미엄’이란 현대자동차그룹의 지배 구조와 관련 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지분 11.72%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번 상장 과정에서 지분 일부를 구주 매출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정 회장 지분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현대엔지니어링의 평가 시가총액을 높게 산정하는 것이 유리하다.

반면, 시가총액을 아무리 높게 평가해도 8조원에 그칠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증권 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대엔지니어링의 영업이익은 삼성엔지니어링과 비슷한 수준인데 삼성엔지니어링의 시가총액은 4조원대에 불과하다”며 “현대엔지니어링의 시가총액 산정에 삼성엔지니어링보다 높은 밸류에이션(기업 가치 대비 주가 수준)을 적용하려면 해외 사업 비중이 높아야 하는데, 최근에는 오히려 국내 주택 사업 비중이 높아지고 있어 밸류에이션을 높이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현대엔지니어링이 2조원 규모의 현금성 자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향후 소형 원전이나 현대차그룹의 수소 사업에 진출할 가능성이 크다며, 적정 시가총액을 삼성엔지니어링보다 2~4조원 큰 6~8조원으로 추산했다.

◇ 카뱅·하이브 상장 때도 기존 코스피200 시총에 영향

증시 전문가들은 내년 초부터 시가총액이 70조원, 10조원에 육박하는 기업이 잇달아 상장하면 투자금이 해당 종목에 쏠리며 다른 상장 기업들이 피해를 볼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지난 8월 6일 카카오뱅크(323410)(첫날 시가총액 33조원)가 상장한 날, 이 종목의 거래대금은 총 3조7050억원으로 전체 유가증권시장 거래대금의 24%를 차지했다. 이 비율은 다음날인 7일에도 23%를 기록했으며, 9월 23일에야 1% 미만으로 떨어져 현재까지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지난해 주식시장에서 투자 열기가 가장 뜨거웠던 방탄소년단(BTS) 소속사 하이브(352820)(첫날 시가총액 8조7000억원) 역시 마찬가지였다. 상장 첫날 거래대금이 유가증권시장의 15%를 차지하며 증시 자금을 빨아들였다.

증권 업계 관계자들은 신규 상장주에 대한 자금 쏠림 현상의 원인이 기관 투자자들에게 있다고 분석했다. 김영일 대신증권 연구원은 “개인 투자자들은 한 종목을 지나치게 많이 보유하는 경우가 거의 없어, 신규 상장주에 대한 아주 큰 확신이 없으면 기존에 갖고 있던 주식을 팔고 갈아타는 것이 쉽지 않다”며 “반면 기관은 시가총액이 큰 종목을 펀드에 새로 편입하기 위해 보유 주식을 파는 경우가 많아, 기존 코스피200 구성 종목의 주가 하방 압력이 커질 수 있다”고 예상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과거 대형주가 상장했을 때도 기존 코스피200 구성 종목들의 시가총액이 일시적으로 급감했다. 지난해 10월 15일 하이브가 상장한 날, 코스피200 전체 시가총액은 이틀 전보다 25조원 감소했다. 코스피200 시가총액 합은 같은 달 30일까지 꾸준히 감소했으며 이후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카카오뱅크가 상장한 지난 8월 6일에도 코스피200 전체 시가총액 합이 이틀 전보다 8조원 넘게 감소했다. 시가총액 합은 같은 달 20일까지 점진적으로 줄었다. 카카오뱅크가 상장한 날부터 20일까지 총 136조원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새내기주가 기존 상장 종목들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것이 증권 업계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회사가 새로 상장하면, 대부분의 투자자가 첫날 매도하며 물량이 대거 출회된다”며 “이 같은 현상은 단기적으로 하루 이틀, 길게는 일주일간 지속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2~3주간 지속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대어(大魚) 상장을 다른 시각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석훈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기업은 대체로 증시 상황이 좋을 때 IPO를 추진하기 마련”이라며 “새로운 기업의 상장으로 증시 전체가 한층 더 활기를 띠고 더 많은 외부 자금이 유입되는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