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백화점이 문을 열자마자 매장으로 달려드는 사람들의 사진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미처 다 올라가지도 않은 셔터 밑을 비집고 들어가 전력 질주하는 모습이 마치 목숨을 건 서바이벌 게임 참가자들 같았다.
'오징어 게임' 참가자나 전쟁 난민을 연상케 한 이들이 질주한 이유는 단 하나였다. 바로 '샤넬 백'. 가방 가격이 내일부터 700만원대에서 800만원대로 인상된다는 소식을 접하자, 하루 먼저 '싼' 가격에 사려는 사람들이 몰려든 것이다. 지금은 이마저도 1000만원이 넘으니 그때 가방을 산 사람들이 승자일지도 모르겠다.
혹자는 한국인의 명품 사랑이 유난하다고 하나, 이는 비단 우리나라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닌 것 같다. 독일 시장조사업체 스태티스타와 아일랜드 업체 리서치앤마켓츠의 분석을 종합해보면, 전 세계 명품 시장 규모는 지난해 2581억달러(약 306조원)에서 올해 3096억달러(약 367조원)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스태티스타는 이 시장 규모가 2025년까지 연 평균 5.4%씩 성장할 것으로, 리서치앤마켓츠는 2026년까지 연 평균 9.22%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5년 뒤 글로벌 명품 시장 규모가 4298억달러(약 509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올해 명목 국내총생산(GDP)인 4153억달러를 거뜬히 넘는 규모다. 아랍에미리트 GDP(4101억달러)와 비교하면 5% 가까이 크다.
글로벌 명품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들의 주가도 잇달아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한 점에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가방으로 유명한 에르메스 주가는 8일(현지 시각) 사상 최고가인 1466.5유로를 기록했다. 에르메스 주가는 올해 들어 66% 올랐으며, 최근 한 달간 20%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시계 브랜드인 '바쉐론콘스탄틴', '아랑에운트죄네', 'IWC'와 '반클리프아펠', '까르띠에' 등을 보유한 리치몬트 그룹 역시 최근 한 달 사이에 주가가 24% 오르며 연일 최고가를 갈아 치우고 있다. 전세계 1위 명품 대기업이자 프랑스 시가총액 1위 업체인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는 지난 5일 사상 최고가에 근접한 708.9유로에 거래를 마쳤다. 최고가는 지난 8월 12일 기록한 712유로였다.
이들 기업의 주가가 최근 들어 급등하고 있는 것은 코로나19 팬데믹을 아랑곳하지 않는 호실적 때문이다. LVMH의 3분기 매출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20% 늘어난 155억유로(약 21조원)를 기록했다. 코로나 팬데믹 이전인 2019년 3분기와 비교해서도 11% 늘었다. 앞서 지난 8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공동부유(共同富裕·함께 잘 살자는 뜻)'를 강조하고 나서자 전 세계 명품 업계가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으나, 이는 기우에 불과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스위스 자산운용사 감(GAM)인베스트먼츠의 스웨타 라만찬드란 펀드매니저는 "애널리스트들이 명품 기업의 수익 추정치를 상향 조정하고 있다"며 "특히 중국과 같이 중요한 휴가 시즌을 앞두고 있는 나라의 소비자들이 명품 소비를 늘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라만찬드란 매니저는 또 명품 기업들의 실적이 최근 전 세계를 뒤흔드는 공급망 차질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롭다고 설명했다. 명품 기업들의 소싱 및 제조가 주로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단순하게 이뤄지기 때문에, 공급 대란의 영향을 별로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향후 중국 시장의 부활과 이른바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와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출생한 Z세대를 가리키는 단어)의 구매력 향상으로 명품 기업들의 실적이 꾸준히 좋아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컨설팅 기업 올리버와이먼은 "예전 같았으면 여행에 많은 돈을 썼을 Z세대 소비자들이 여행 대신 명품 소비를 늘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명품 소비는 특히 아시아를 중심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스태티스타는 "중국 시장의 소비 부활과 MZ 세대가 글로벌 명품 시장을 주도할 것"이라며 "아시아 시장이 중국을 중심으로 가장 가파른 성장세를 나타낼 것이며, 유럽과 북미, 남미, 아프리카, 호주 및 오세아니아가 그 뒤를 이을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