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의 ‘무역 전쟁’이 재발할 조짐이다. 미국은 트럼프 행정부와 유사한 수준으로 강경한 대중(對中) 통상을 외치고 있으며, 중국은 미국에 추가 관세 철폐와 제재 철회를 요구하며 맞서는 상황이다.

앞서 지난 2018년 미·중 무역 전쟁이 심화했을 당시, 대미(對美)·대중 경제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는 직격탄을 맞았다. 당시 우리 기업의 피해 규모는 약 3조원으로 추산된다. 주식시장도 큰 피해를 봤다. 2018년 초 2607.10까지 올랐던 코스피지수는 같은 해 말 2040대 초반까지 내렸다.

두 강대국이 패권 경쟁을 벌일 때마다 그 영향권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은 우리나라의 숙명과도 같다. 열강의 틈에서 치열하게 살아남았던 근대 한국과 G2(미국과 중국)의 경쟁 속에서 살 길을 모색하는 2020년대의 한국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이성현 전 세종연구소 중국연구센터장·현 하버드대학교 페어뱅크센터에서 방문 학자. /이성현 박사 제공

향후 10년, 30년간 우리나라가 나아갈 길을 고민하기 위해서는 미국과 중국의 현주소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 미국 하버드대학교 페어뱅크센터에서 방문 학자로 있는 이성현 전 세종연구소 중국연구센터장은 미국과 중국에 모두 정통한 외교 전문가다. 하버드대와 중국 칭화대학교에서 석사,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스탠퍼드대학교 아·태연구소 팬텍펠로우십, 외교부 산하 세종연구소의 중국연구센터장을 지냈다. 최근에는 ‘조지 H. W. 부시 미중관계재단’ 선임연구위원으로도 임명됐다.

지난달 말, 미국 보스턴에 거주 중인 이 전 센터장을 화상 인터뷰했다. 이 전 센터장은 미국과 중국이 전술적인 이유로 무역 분쟁을 일시적으로 봉합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우리나라가 이 같은 일시적 갈등 봉합에 휩쓸리지 말고 일관성 있는 실리적 외교에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두 강국 사이에서 어부지리로 반사 이익을 얻겠다는 안이한 태도를 버려야 한다는 조언도 덧붙였다.

미국이 대(對) 중국 무역 정책과 관련해 연일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캐서린 타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의 연설을 들어보면, 겉으로는 논조가 굉장히 터프하다. 과거 트럼프 행정부 시절 중국이 미국에 약속했던 2000억달러 규모의 미국산 상품 구매를 빨리 이행하라는 것이다. 중국이 지난해 1월 15일 1단계 합의를 통해 미국과 그런 약속을 했는데, 현재까지 목표치의 70%도 구매하지 않은 상태다.

그러나 이면을 들여다 보면 아쉬운 쪽은 미국이다. 올해가 두 달 밖에 남지 않았는데 남은 기간 동안 중국이 과연 약속한 대로 (미국 상품 구입 목표치의) 나머지 30%를 더 사겠는가. 또 중국은 작년부터 이른바 ‘쌍순환(내수시장 활성화를 통해 국내 시장과 국제 시장이 유기적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것)’ 정책을 표방하며 실제로는 내수 경제를 진작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미국 수출 길이 좁아질 때를 대비해 미리 국내 시장 규모를 넓히겠다는 것이다.

중국이 이러한 기조를 이어나가는 가운데, 시간이 지날 수록 미국 기업들이 어려워지고 있다. 기업들이 그동안은 애국적 차원에서 인내했다면, 이제는 더 이상 참기 어려운 지경까지 온 것이다. 이 때문에 미국 정부 입장에서는 자국 기업을 위해서라도 미·중 간 관세를 낮출 필요가 커졌다.

타이 대표가 강경한 발언을 이어가고 있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애가 타는 상황일 것이다. 올해 안에 바이든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화상 정상회담이 열리는데, 정상회담을 제안한 쪽도 미국이었다.”

현재 미국 현지에서 체감하는 경제 상황은 어떤가.

“미국에서는 보통 10월 말 핼러윈데이부터 11월 추수감사절, 12월 크리스마스까지를 ‘경제 대특수’ 기간으로 본다. 쇼핑도 많이 하고 회사에서는 직원들에게 많은 보너스를 지급해 경기 진작에 나서는 것이 정상적인 상황이다.

그러나 요즘 월마트 같은 슈퍼마켓에 가 보면 선반이 텅 비어 있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중국에서 상품을 수입해와야 하는데 물류 대란이 장기화해 수급이 어렵다고 한다. 코스트코에서는 1인당 구매 가능한 화장지의 양을 제한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불안하면 라면을 사들이듯, 미국에서는 경제에 대한 불안 심리가 화장지의 사재기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현재 미국에서는 인플레이션(물가 상승률)이 5%가 넘는 고물가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당국에서는 향후 6개월 안에 물가 상승률을 3%대로 낮추는 걸 목표로 하고 있지만, 많은 학자가 이에 대해 비관적 입장이다. 코로나19 팬데믹 국면에서 바이든 행정부가 지나치게 많은 돈을 풀었기 때문에 고물가 상황이 단기간에 해결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 팬데믹으로 일터를 떠났던 500만 명의 미국인이 직장에 돌아오지 않고 있다. 일을 하지 않아도 매달 보조금이 1600~1800달러씩 들어오는데, 누가 굳이 코로나 감염의 위험을 감수하고 직장에 나가겠나. 시급 20달러 이상을 주겠다고 해도 취직을 하지 않으려 한다.

많은 미국인이 코로나 팬데믹 국면에서 70만명 이상이 사망한 것을 지켜보며, 굳이 직장에 나가서 돈을 벌기보다는 더 편안하고 여유 있는 삶을 살고자 한다. 코로나로 인한 불확실성의 시대가 미국 노동 인구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 것이다. 일터에 돌아가지 않는 미국인들로 인해 향후 몇 년 뒤 상당한 파급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3일(현지 시각) 앤드류스 에어포스 베이스에 도착했다. /AP연합뉴스

바이든 행정부는 경제 문제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최근 미국 버지니아 주지사 선거에서 공화당의 글렌 영킨 후보가 민주당 테리 매컬리프 후보를 꺾고 당선됐다. 버지니아 유권자의 3분의 1이 표심에 영향을 미친 결정적인 요소로 ‘경제’를 꼽았다. 이는 바이든 대통령의 위기를 상징한다.

지금 워싱턴D.C.에는 바이든 행정부가 경제 정책을 잘 펼쳐나가고 있다고 평가하는 전문가가 별로 없다. 바이든 행정부는 현재 사면초가에 놓였다. 인플레이션도 해결을 못한 데다 정부가 추진하려는 경기 부양책에 대해서도 공화당뿐 아니라 민주당 내부에서 거센 반대가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내년 중간선거를 치른다면 공화당이 의회의 다수석을 다시 점령할 가능성도 있다. 중간선거는 차기 대선의 승패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변수이기 때문에 공화당에 패한다면 바이든 행정부의 위기는 더 심화할 수 있다.

경제 문제는 바이든 행정부가 반드시 해결해야만 하는 시급한 과제다. 연말을 앞두고 경제를 살려 민심을 다독이지 못한다면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율은 현 수준에서 더 떨어질 수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했을 당시 새 정부에 대한 미국인들의 지지율은 60%에 달했지만, 현재는 40%까지 낮아진 상태다. 새 행정부와 국민 사이의 ‘허니문’이 보통 1년은 지속되는데, 반년 만에 지지율이 폭락한 것이다. 국면 전환을 위해서는 경제 상황을 조금이라도 회복해야만 한다.”

바이든 행정부가 경제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중국을 더 압박하게 될까.

“바이든 행정부는 기본적으로 중국에 대해 강경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지만, 경제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중국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다. 내년 중간선거를 앞두고 정권의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전술적으로 중국과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다만, 미국과 중국이 정식으로 ‘화해’를 할 것으로 기대해서는 안 된다.

미·중 정상회담이 결정되자 미국 주식시장에 상장한 중국 기업들의 주가가 갑자기 급등하며 분위기가 반전되기도 했는데, 양국 간 갈등이 봉합되더라도 그것은 전술적인 협력에 가깝다고 봐야 한다. 일각에서는 미·중 양국이 티격태격하다가도 결국 화해할 것이라고 내다보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미·중 관계에 대한 일부 전문가들의 낙관론은 무엇에서 비롯했을까.

“미·중 갈등 완화로 실익을 볼 수 있는 미국 기업들과 월스트리트 큰손들의 이해관계가 개입돼 있다고 해석해야 한다.

현재 미국 내 이익 집단들이 대부분 ‘반중’으로 돌아선 가운데, 월스트리트 금융계만은 여전히 중국과 친밀한 관계를 이어나가고 있다. 본래 실리콘밸리도 중국계 자금이 많이 들어와 있어 친중적 성격이 강했지만, 작년 초 마이클 폼페이오 당시 국무장관이 기업가들에게 국가 안보를 위해 중국과 협력하지 말 것을 당부한 이후 중국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월스트리트는 여전히 중국에 친화적이다. 블랙록은 지난 9월 중국 펀드 시장에 진출해 1조원이 넘는 투자금을 조성했다. 골드만삭스는 중국에 세운 자회사 가오화증권의 지분 100%를 취득했다. 중국 본토에서의 사업을 확대해나가겠다는 것이다.

금융가와 더불어 미국 기업들도 중국 시장을 굉장히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최근 재중 미국 기업인 단체인 상하이미국상회(美國商會)가 진행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중국에 진출한 미국 회사 중 85%가 향후 5년간 중국 시장 전망에 대해 낙관했다.

미국 기업들의 중국 투자는 미·중 무역 전쟁이 계속된 2018~2020년 감소했지만, 올해 들어 다시 2017년 수준을 회복했다. 이들 기업은 또 85%가 중국 내 생산 기지를 다른 나라로 옮기지 않을 것이라고 답변했다. 여전히 자신들이 돈을 벌 수 있는 곳은 중국이라고 믿는 것이다.”

양국의 궁극적인 화해가 어렵다면, 두 나라의 관계는 향후 어떻게 될 것으로 보나.

“미·중 양국의 강대강(强對强) 국면은 앞으로 30년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30년간 점진적으로 악화할 것이며, 우열이 확실히 가려지면 갈등이 끝나게 될 것이다.

다만 중간 중간 서로의 정치적 필요에 의해 타협을 하는 일이 한 번씩 있을 것이다. 화해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것은 착시 현상이다. 일시적 갈등 봉합으로 이해해야 한다.”

캐서린 타이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 류허 중국 국무원 부총리(왼쪽부터). 두 사람은 미·중 양국의 무역 협상 대표다. /AP연합뉴스

미·중 갈등이 지속되면 우리나라가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을까.

“미·중 양국 사이에서 어부지리로 이익을 얻겠다는 안이한 생각을 해선 안 된다. 강대국 사이에서 우리나라의 설 자리가 점점 작아지고 있기 때문에, 그 같은 ‘반사이익’을 취하기는 어렵다.

대신 강대국의 경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우리나라의 지분을 확보하고 나서, ‘우리가 너희를 위해 어떤 역할을 할 테니 너희도 대북 문제 등에 협력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2강 사이에서 우리나라의 설 자리가 왜 작아지고 있나.

“우선, 미·중 양국의 갈등이 심화하거나 완화할 때마다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양국은 서로 견제의 끈을 놓지 않는 가운데 필요할 때만 전략적으로 협력해왔는데, 그때마다 우리나라는 이를 무역 전쟁의 종료로 받아들여 낙관론에 치우치곤 했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비일관적인 외교 정책이다. 현 정부는 그간 친중적 기조를 유지해왔는데, 지난 5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갑자기 미국 쪽으로 기우는 모습을 보였다. 정의용 외교부장관은 3월 말까지만 해도 ‘미·중은 우리의 선택 대상이 결코 아니다’라며 두 나라 모두 중요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는데, 정상회담에서는 대만 문제까지 거론하며 과도한 친미적 입장을 취한 것이다. 현 정부는 지난 4년간 대만 문제를 단 한 번도 언급한 적이 없었다.

한 나라의 외교적 저울 추가 한 달 반 만에 이렇게 큰 폭으로 회전하는 것은 국제 정치에서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 설상가상으로 우리 정부는 이 같은 (대만 문제) 발언에 대해 단지 ‘외교적인 언사였을 뿐’이라고 해명했는데, 이처럼 일관성 없는 모습은 국제 사회에서 신뢰를 얻기 매우 어렵다.”

그러면 미·중 양국에 우리나라는 어떤 존재인가.

“2015년 당시 외교부 장관이 ‘미·중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며 이를 ‘축복’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6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 볼 때, 우리나라는 그때까지만 해도 미·중 양국이 서로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고 싶어하는 나라였다. 그러나 지금은 강대국 입장에서 우리나라의 전략적 중요성이 떨어진 상태다.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그럼에도 아직은 동맹으로서의 가치가 여전히 남아 있다. 주한미군은 물론이고 삼성이나 LG, SK 등 기업들의 가치와 케이팝 등의 문화적 가치도 여전히 크다. 한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가진 동맹적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미국이 ‘북한과 대화할 용의가 있다’고 하는 것도 동맹에 대한 예우이자 립서비스다. 동맹국으로서 악수를 하되, 손에 힘은 전혀 없는 셈이다.

지금 미국은 북한에 관심을 가질 겨를이 없다. 중간선거와 경제 살리기 등 산적한 과제가 많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북한 문제에 신경을 많이 썼던 것은 미국 외교에서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지금은 다시 미국 특유의 ‘전략적 인내’로 돌아간 상황이다.”

한·중 관계의 현주소는 어떤지.

“문 대통령은 앞서 2017년 말 중국 정부가 ‘다음에 방문할 것’을 권유하는 상황에서도 방중을 밀어붙인 적이 있다. 당시 중국은 중앙경제공작회의(이듬해 3월에 열리는 양회(兩會)의 밑그림을 그리는 회의)를 앞두고 바쁜 시기였다. 그 해 10월 말 시진핑 정부 2기가 막 출범했기 때문에 관료들의 인사를 둘러싸고 치열한 샅바 싸움이 벌어지던 시기였다. 이 때문에 중국에서는 문 대통령을 다음해에 초청하고자 했지만, 청와대에서는 ‘해가 바뀌기 전 방중하겠다’는 내부 방침을 고수했다.

중국을 상대할 때는 이처럼 조바심을 내고 서두르면 패한다. 중국인들 스스로 조바심을 내도록 유도하는 편이 옳다.

문재인 행정부는 우리나라의 역대 정부 중 친중적 성향이 가장 강하다고 평가받는데도, 임기 내 중국의 최고 지도자를 한 번도 초대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시 주석은 작년 1월 코로나 팬데믹 직전 미얀마에도 방문했는데, 이웃나라인 우리나라에는 아직 한 번도 오지 않았다. 시 주석은 다른 국가 원수들과 많이 가진 ‘화상 정상회담’도 문 대통령과는 하지 않았다.”

우리 기업들이 양국 사이에서 곤란을 겪는 경우도 적지 않다.

“최근 미국 정부가 우리나라 반도체 기업들에 공급망 관련 정보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우리뿐 아니라 대만 TSMC도 정보 제출을 요구받았다. 대만은 미·중 갈등에서 미국에 협력해왔는데 갑자기 이 같은 상황에 놓이자 상당히 당황한 상태다.

대만은 비슷한 상황에 놓인 우리나라 정부에 공조와 협력을 요청했지만, 우리 정부는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우리와 대만이 반도체 분야에서 서로 경쟁하는 관계는 맞으나, 이 같은 공동의 문제에는 협력하는 것이 옳다. 각 기업이 알아서 할 일이라고 생각해 손 놓고 있을 문제가 아니다.

지난해 미국 정부가 중국에 대한 제재의 일환으로 우리나라에 화웨이 등 중국 기업 제품을 사용하지 말아 달라 요청했을 때도, 우리 정부는 ‘민간 기업이 결정한 사항”이라며 거리를 뒀다. 그때 다른 나라들은 정부가 직접 나서 입장을 표명했다. 기업과 정부는 서로 떨어져 있지 않다. 전부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구글(Google) 본사. /조선DB

미·중 갈등 국면에서 우리나라가 살아남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지.

“두 나라가 경쟁하면 우리나라가 중간에서 이익을 볼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고, 궁극적으로 산업 경쟁력을 키우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미국 하버드대학교에서는 최근 컴퓨터사이언스 학과 교수 7명을 신규 임용했다. 한 학과에서 교수를 한 번에 7명이나 채용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구글에서 인공지능을 연구했던 사람 두 명도 포함됐다. 하버드가 이 같은 ‘파격’을 선보였으니 스탠퍼드대학교와 MIT에서도 신규 임용 경쟁에 들어갔을 것이다.

우리나라도 빅데이터와 머신러닝 기술을 계속 개발해야 한다. 삼성SDS 같은 회사들이 국가 전략적 측면에서 더 중요해질 것이다. 우리 기업들의 첨단 기술력이 발전하면 자연스럽게 외교 관계에서 우리나라의 입지도 강해진다. 한반도 안에서 우리끼리 자생력을 키워서 강대국들 틈에서 목소리를 내겠다는 철학은 일리가 있지만, 우리는 지금 현실적인 국제 관계 안에서 살고 있지 않나.

또 미·중 갈등이 악화해 우리 기업에 불똥이 튈 경우 해당 국가에서 철수하는 방안도 정부 차원에서 진지하게 고민하고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기업이 갑자기 현지 정부 규제를 받아 자금이 동결되거나 공장을 철수해야 하는 상황에 놓일 수도 있다. 이 때 우리 정부는 기업이 스스로 알아서 해결하도록 방치할 것이 아니라, 시나리오별로 해결책을 마련해놓고 재빠르게 함께 대응해야 한다.”

동아시아 정세를 논하기 위해서는 러시아를 빼놓을 수 없지 않나. 최근 국제 유가가 급등하며 에너지 패권을 가진 러시아의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와 러시아의 관계는 어떤지 궁금하다.

“작년에 한·러 수교 30주년을 맞아 서울에 러시아 문화원을 설립해야 한다는 얘기가 여러 차례 나왔다. 주 러시아 한국 문화원은 이미 2006년에 설립됐지만, 주한 러시아 문화원은 아직 없다. 만약 우리나라가 러시아 문화원을 설립해 문화 외교를 강화하고 블라디보스토크 등 러시아 도시에 우리 기업의 공장을 설립하는 등 친화적인 입장을 취했다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방한하고 양국의 외교 관계도 더욱 돈독해졌을 것이다.

우리 정부는 그간 러시아를 소홀하게 대해왔다. 러시아 경제 규모가 중국의 9분의 1~10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 우리 기업들도 굳이 러시아 시장 진출을 위해 대규모 연구·개발(R&D)을 해야 할 필요성을 못 느끼는 것 같다. 그러나 러시아는 경제적으로도 외교적으로도 굉장히 중요한 나라다. 항공 우주 기술의 강국이기 때문에 누리호 같은 발사체를 개발하는 데 있어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한·러 관계를 친밀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앞서 언급한 러시아 문화관을 만들어 문화적인 교류를 하고 K팝 외교를 하는 등 민간 교류를 활성화해야만 한다. 러시아와의 관계에 있어 성의를 보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