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 미국의 부채 한도 협상 차질과 미·중국 무역분쟁 재점화 가능성 등 대외 악재가 연이어 발생하며 국내 주식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되고 있다. 증시 전문가들은 최근의 주가지수 급락이 일시적인 현상에 그치지 않고, 코스피지수의 하방 압력이 점진적으로 강해질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은다.

상장 주식 시장의 장기적 조정 가능성이 커짐에 따라, 비상장 주식 시장의 타격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인수·합병(M&A)이 미국 등 선진국과 비교해 활발하지 않은 우리나라의 특성상, 스타트업과 벤처 기업에 투자한 금액은 대부분 기업공개(IPO)를 통해 회수되고 있기 때문이다. 증시 침체로 인해 이미 상장돼 있는 회사들의 밸류에이션(기업 가치 대비 주가 수준)이 떨어지면 상장하려는 회사의 몸값도 내려갈 수밖에 없다.

일러스트=정다운

8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최근 한 달간 코스피지수는 6.5% 넘게 하락한 상태다. 코스닥지수의 하락률은 8.3%에 달한다.

최석원 SK증권 지식서비스부문장은 “(인플레이션 등) 대외 악재에 대한 우려가 증시에 충분히 반영된 이후에야 투자자들도 주가 반등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며 “그전까지는 (외국인, 기관뿐 아니라) 개인 투자자들의 공포 매물도 많이 나오며 주가가 점진적인 하락을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아직 주식 시장의 분위기가 비상장 주식 시장까지 전이된 상황은 아니다. 여전히 비상장 시장에는 유동성이 풍부해 투자 수요가 넘쳐난다는 것이 IB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지난달 28일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올해 1~8월 벤처 투자 금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6% 많은 4조6158억원에 육박했다. 역대 최대치였던 지난해 연간 벤처 투자금(4조3045억원)을 이미 뛰어넘은 것이다.

비상장사들의 몸값도 연일 높아지고 있다. 장외 주식 시장 거래 플랫폼 증권플러스비상장에 따르면, 대표적인 유니콘(기업 가치가 1조원을 넘는 비상장사)인 핀테크 기업 토스 주가는 최근 한 달간 15% 가까이 높아졌다. 토스는 지난 6월 투자를 유치했을 당시 8조2000억원의 기업 가치를 인정 받았는데, 현재 증권플러스비상장에서는 시가총액이 18조원에 달하는 상황이다. 메타버스 플랫폼을 운영하는 온페이스는 한 달 동안 시가총액이 48% 넘게 늘었다.

이처럼 비상장사들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솟고 있으나, 상장 주식 시장이 침체되면 결국 비상장사도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IB 관계자들은 말한다. 한 벤처캐피털(VC) 관계자는 “지금 같은 조정장이 길어진다면, 대략 6개월의 시차를 두고 비상장 주식 시장 역시 하락으로 돌아설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또 다른 VC 관계자는 “벌써 최고투자책임자(CIO) 등 경영진 사이에서는 투자 규모를 좀 줄여야 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다”며 “비싼 가격에 투자했다가 향후 엑시트가 힘들어지면 자칫 ‘폭탄 돌리기’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비상장사들의 높은 밸류에이션을 그대로 인정하고 투자를 감행하면, 향후 회수 시장이 어려워질 경우 난처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비상장사가 IPO를 하기 위해서는 동종 업계 상장사들의 주가수익비율(PER), 주가순자산비율(PBR) 밸류에이션 평균치를 구해 자사에 적용한 뒤 기업가치를 산정해야 한다. 따라서 증시가 침체해 상장사들의 몸값이 낮아진다면, 비상장사는 높은 밸류에이션을 포기하고 낮은 시가총액에 상장하거나 IPO 자체를 취소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비상장 주식 시장의 침체는 초기 투자보다는 후기 투자 시장에 먼저 찾아오는 것이 일반적이다. 시리즈A·B 같은 초기 투자는 상대적으로 영향을 덜 받는다.

실제로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됐던 지난해 초, 증시가 급락하자 한국거래소에 상장 예비심사를 받던 회사 8개가 무더기로 심사를 철회하기도 했다. 기대하는 수준의 밸류에이션을 인정받기 어렵다는 생각에 IPO 일정 자체를 연기한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상장 일정 자체를 중단하는 것 역시 기업 입장에는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시간이 지나 다시 상장에 도전한다고 해서 상황이 현재보다 나아지리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자금이 필요한 기업이나 투자금을 회수해야 하는 VC 입장에서 상장 철회는 ‘악수’가 될 수 있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과거 증시가 침체했을 때, 비상장사들은 IPO 자체를 철회하기보다는 일단 상장 승인을 받고 공모 일정을 미루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거래소의 예비 심사를 통과한 기업은 6개월 안에만 상장하면 된다. 이 관계자는 “혹은 밸류에이션을 낮춰 우선 상장한 뒤, 향후 유상증자를 통해 필요한 자금을 더 조달하겠다는 회사들도 있었다”고 전했다.

많은 비상장사가 상장에 나서기보다는 계속 장외 시장에서 투자를 받으며 증시 반등을 기다릴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한 VC 대표이사는 “유동성이 풍부한 상황에서 자산가들은 은행에 돈을 예치해두기보다는 지금처럼 비트코인이나 비상장사 투자를 계속할 것이며, 유니콘들의 몸값은 계속 높아질 것”이라며 “골치 아프게 변동성 큰 상장 주식 시장에 뛰어들기보다는, 돈이 넘치는 장외 시장에서 계속 펀딩을 받는 방식으로 엑시트를 하다 몇 년 후 장이 좋아지면 IPO에 도전할 회사가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