된서리를 만난 우리 증시가 몸살을 앓고 있다. 세계적인 인플레이션과 경기 침체 우려, 미국의 정치적 불확실성과 중국 헝다(恒大·에버그란데)그룹의 파산 위기 등 대외 악재가 한꺼번에 몰아치며 코스피지수는 3000선을 내주고 연 중 최저점을 경신했다.

일러스트=정다운

대부분 섹터의 주가가 휘청대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제약·바이오주의 급락이 두드러졌다. 인플레이션 우려로 채권 금리가 오르는 가운데 성장주가 전반적으로 타격을 입은 데다, 미국 머크의 먹는 코로나19 치료제가 게임체인저(결과나 흐름의 판도를 바꿀 만한 중요한 제품)로 급부상하자 기존 백신 및 치료제 개발·제조사들의 투자 매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코스피지수가 2% 가까이 급락한 지난 5일, 국내 증시에 상장된 제약·바이오주는 대부분 폭락했다. 시가총액 10위 기업 셀트리온(068270)은 주가가 12% 넘게 하락했고, 다음날인 6일에도 2.7% 내렸다. 셀트리온 주가는 최근 8거래일 연속 하락 곡선을 그리고 있다. 셀트리온은 정맥주사 제형인 코로나 치료제 '렉키로나주'를 만들었다.

모더나 백신을 위탁 생산하는 삼성바이오로직스(207940)도 5~6일 이틀간 10%가량 하락했으며, SK바이오사이언스(302440)는 16% 가까이 급락했다. SK바이오팜(326030)은 9.5% 내렸다.

그런데 이 같은 상황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이 돌연 제약·바이오주를 대거 사들였다. 6일 유가증권시장에서 외국인이 순매수액이 가장 컸던 종목은 셀트리온이다. 이들은 셀트리온을 450억원어치 순매수했다.

외국인은 SK바이오사이언스 주식도 350억원어치를 사들였으며, 이연제약(102460)녹십자(006280), 신풍제약(019170)과 삼성바이오로직스도 순매수했다. 비록 순매수액이 크지는 않으나, 유가증권시장 전체에서 2800억원어치 매물을 쏟아낸 와중에 이뤄진 매수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외국인이 순매수로 전환한 것을 제약주 매수 신호로 해석해도 괜찮을까. 해외 주식시장의 상황과 증시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아직은 관망하는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지난밤 미국 뉴욕 증시에서 모더나는 전날보다 9% 하락한 302.42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노바벡스는 5% 가까이 하락했다. 화이자 백신을 공동 개발한 바이오엔테크 역시 5.6% 하락했다. 홍콩 증시에서도 제약주의 하락이 계속되고 있다. 6일 JD헬스 주가는 7.5% 내렸으며, 핑안굿닥터는 3.1%, 알리바바헬스인포메이션은 2% 넘게 하락했다.

증시 전문가들은 경구용 치료제가 전체 제약 시장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허혜민 키움증권 연구원은 "머크의 경구용 코로나 치료제가 입원과 사망률을 낮춰 '위드 코로나'를 앞당길 것"이라며 "백신의 확보가 어렵고 의료 인프라가 갖춰져 있지 않은 개발도상국에서는 경구용 치료제 확보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미국 뉴저지의 머크 본사. /연합뉴스

허 연구원에 따르면, 머크의 코로나 치료제 '몰누피라비르'의 임상 3상 중간 분석 결과 코로나 감염자의 입원·사망 위험이 50%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감마·델타·뮤 변이 바이러스에서도 일관적인 데이터가 나왔다고 그는 전했다.

기존 코로나 치료제를 한 시간 동안 정맥 주사로 투여해야 했다면, 몰누피라비르는 코로나 증상이 시작되고 5일 내 복용하면 돼 간편하다. 또 병원에 입원하지 않아도 되는 만큼, 코로나 병상 확보를 가능하게 해준다는 장점을 지닌다.

허 연구원은 "현재 선진국에서도 백신 접종률이 60~70%에서 더 오르지 않고 정체하고 있어, 미국 정부가 몰누피라비르의 긴급 사용 승인을 내주게 된다면 백신 접종을 꺼리는 사람들에게도 대안이 생기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허 연구원은 이에 따라 국내 제약·바이오 섹터도 단기 조정이 불가피하다고 전망했다. 지난해부터 코로나 팬데믹이 제약·바이오주의 상승 랠리를 이끌어온 만큼, 그간의 상승폭을 어느 정도 반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오는 25일부터 시작될 3분기 실적 발표 시즌 역시 제약·바이오 업체에는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신한금융투자는 셀트리온의 3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39% 감소한 1496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셀트리온헬스케어의 높은 재고 수준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다.

SK바이오사이언스 역시 3분기 실적이 좋지 않을 전망이다. NH투자증권은 SK바이오사이언스의 3분기 영업이익 전망치를 기존 1293억원에서 970억원으로 하향 조정했다. 이 회사는 현재 노바백스 백신의 정부 계약 물량에 대한 매출 인식 기준을 검증 중인데, 이 작업이 지연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서근희 삼성증권 연구원 역시 "지난해 코로나 진단 키트 업체들 역시 실적은 개선되는데도 수요 감소가 명백해 밸류에이션(기업 가치 대비 주가 수준)이 하락했다"며 "코로나의 수혜를 받았던 국내 헬스케어 업종 역시 경구용 코로나 치료제의 보급으로 주가가 부진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다만 코로나와 무관한 바이오 기업들이 상대적으로 수혜를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서 연구원은 "네오이뮨텍, 메드팩토 같은 비코로나 바이오 업체들은 연초부터 모멘텀(동력) 부재에 따른 소외로 주가가 하락해왔으나, 다음 달 개최되는 미국 면역항암학회(SITC)를 기점으로 모멘텀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허 연구원 역시 "비코로나 분야인 순수 바이오 업체들은 임상 재개, 위드 코로나로 인한 우호적인 신약 영업 환경, 대면 학회 재개 등에 힘입어 주가 반등을 노릴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