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반기 기업공개(IPO) 시장에서 가장 큰 기대를 받았던 카카오페이가 암초를 만났다. 금융당국이 카카오페이 등 핀테크 업체들의 금융 상품 비교·추천 서비스를 ‘광고’가 아닌 ‘중개’ 행위로 규정하며 영업에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이다.
금융당국 규제에 따르면, 전자금융업자인 카카오페이와 네이버파이낸셜 같은 핀테크 업체들이 보험·펀드·대출 등의 비교 견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위법 행위다. 해당 서비스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오는 24일까지 위법 소지를 해소해야만 한다.
금융당국이 직접 나서 핀테크를 향해 칼을 빼들자, 금융 투자 업계의 시선은 당장 상장을 앞둔 카카오페이에 쏠렸다.
카카오페이는 이미 한 차례 금융감독원의 정정 신고서 제출 요구를 받고 희망 공모가 범위(밴드)를 하향 조정하며 상장을 미뤘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이번에는 회사의 근간을 뒤흔들 만한 대형 악재가 터지자, 업계 일각에서는 상장이 또다시 지연되거나 최악의 경우 아예 불가능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증시 전문가들과 금융당국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번 규제는 카카오페이의 IPO 절차를 중단할 만한 사안은 아니다. 상장 일정이 한 번 더 미뤄질 확률은 절반 정도다.
카카오페이가 먼저 나서 금융당국의 요구 사항을 받아들이고 증권신고서를 정정하는 등 발 빠르게 대처한다면, 상장 일정을 계획대로 추진할 가능성이 크다. 다만 회사의 기업 가치는 어느 정도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① 상장 적격성 문제 없을 듯… 수익원도 안정적
증권 업계 관계자들은 카카오페이의 상장 자체는 문제가 없다고 입을 모은다. 보험과 펀드 상품의 견적 비교는 자회사인 KP보험서비스와 카카오페이증권을 통해 서비스되고 있는데, 이 자회사들이 이미 중개 라이선스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위법 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투자은행(IB) 업계의 한 관계자는 “보험과 펀드의 견적 비교 서비스가 모회사 카카오페이가 아닌 자회사들의 라이선스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는 내용은 모두 증권신고서에 분명히 기재돼 있다”며 “금융위원회에서 이번에 내놓은 규제 중 카카오페이에 새롭게 적용되는 사항은 하나도 없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대출의 경우에도 특별한 하자가 없으면 인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며, 이 역시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카카오페이는 지난 2019년 7월 금융위원회에 의해 혁신금융서비스 사업자로 지정돼 대출 금리 등을 비교해주는 서비스를 영위해왔다. 혁신금융서비스 사업 기한이 2년인 만큼, 올해 7월 금융위에 정식 라이선스 취득을 신청했고, 현재 심사를 받는 중이다. 결과는 이달 중순 이후에 나올 예정이다. 대출 비교 라이선스는 보험·펀드와 달리 자회사가 아닌 카카오페이가 직접 갖게 된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현재 카카오페이의 매출액 대부분이 금융 상품 비교가 아닌 결제(송금, 온·오프라인 결제 포함) 서비스에서 나오는 만큼, 이번 규제가 상장을 접어야 할 만큼 치명적인 악재는 아니라고 봤다.
카카오페이가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증권신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회사의 연 매출액 2844억원 가운데 결제에서 발생한 매출액은 2046억원이었다. 전체 매출액의 72%에 해당한다. 대출·투자·보험 서비스의 매출액은 644억원으로, 전체의 22%였다.
국내 결제 서비스 시장이 매년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는 만큼, 카카오페이의 수익원도 안정적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내 결제 서비스 업체들의 거래 금액은 지난 5년간 연평균 86%씩 증가했으며, 지난해는 총 75조1000억원을 기록했다. 현재 국내 시장에서 결제·송금 서비스를 영위하는 업체는 총 83개다. 카카오페이의 시장 점유율은 약 17%로 추산된다.
② 상장 지연 피하려면 사업 위험성 보완해야
이처럼 카카오페이의 상장 적격성에는 큰 문제가 없을 전망이다. 그러나 금융당국의 요구를 받아들여 위법 소지를 없애는 것은 필수 요건이다. 금융당국이 제시한 시한까지 14일밖에 남지 않은 만큼, 최선의 방법은 보험·펀드 서비스의 주체가 ‘카카오페이가 아닌 자회사’라는 점을 명시하는 것이다.
증권 업계 관계자는 “카카오페이에서는 자회사들이 중개업 인허가를 갖고 있다고 주장하나, 소비자 입장에서는 결국 카카오페이 플랫폼을 통해 보험·펀드 비교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라며 “중개업을 자회사가 하고 있다는 점을 명확히 고지하지 않는다면, 금융위에서는 카카오페이도 별도의 인허가를 취득해야 한다고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금융당국도 아직 핀테크 업체들의 보완책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세워 놓지 않은 만큼, 보완 방안에 대해서는 업계와 당국 간 협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9일 홍성기 금융위 금융소비자정책과장은 핀테크 기업들과의 간담회 이후 브리핑에서 “금융위가 (규제를 피하기 위한 조건을) 먼저 알려주는 것보다는 핀테크 업체들이 개별적으로 구체적인 보완 방법을 제시해오면, 이를 취합한 후 검토해 (어떤 조건이 필요한지) 답변하겠다”고 말했다.
위법 소지의 해소뿐 아니라 증권신고서 재수정도 불가피하다. 카카오페이는 앞서 희망 공모가 범위(밴드)를 6만3000~9만6000원으로 제시했으나, 7월 16일 금감원에 정정신고서 제출 요구를 받고 지난달 31일 밴드를 6만~9만원으로 내렸다. 현재는 금감원의 재심사를 받으며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금융당국의 이번 규제가) 카카오페이가 정정신고서를 한 차례 제출한 이후에 나온 이슈인 만큼, 카카오페이에서 자발적으로 소명하지 않으면 금감원이 정정을 또 한 번 요청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금감원이 카카오페이가 제출한 정정신고서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다면, 제출 다음날부터 16영업일째 되는 날(9월 27일) 효력이 발생한다. 효력이 발생하면 카카오페이는 그다음 절차인 기관 수요 예측을 실시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오는 27일 전 카카오페이가 자발적으로 증권신고서를 다시 한 번 수정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금감원이 재정정을 요청할 예정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카카오페이가 자발적으로 정정한다면 상장 일정이 지연될 가능성이 작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증권 업계에 따르면, 카카오페이는 증권신고서 중 ‘사업의 내용’ 항목을 보충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금융당국의 규제 때문에 향후 보험·펀드의 인허가를 자회사가 아닌 카카오페이에서 직접 취득해야 할 수도 있다는 내용을 고지해야만 사업 위험성에 대해 충분히 설명했다고 인정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③ 기관 수요예측 경쟁률, 예상보다 부진할 수도
카카오페이가 앞서 제시한 기업 가치를 그대로 인정받을 수 있을지도 관건이다. 금융당국의 요구 사항을 충분히 반영해 기존 서비스를 차질 없이 제공한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투자자들은 금융당국의 규제 자체를 리스크로 인식할 가능성이 크다.
현재 카카오페이의 매출액 중 대부분은 결제 서비스에서 나오고 있지만, 보험·펀드·대출 서비스의 매출액 비중이 점차 높아지는 추세다. 증권신고서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카카오페이의 전체 매출액은 2163억원이었으며, 그 중 대출·투자·보험 서비스 매출액이 695억원이었다. 전체의 32.1%를 차지한 것이다. 이는 지난해 대출·투자·보험 서비스 매출 비중과 비교하면 10%포인트 이상 높아진 수치다.
특히 대출 비교 서비스는 카카오페이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주력 사업이다. 카카오페이는 신용대출 비교 서비스를 넘어 향후 카드론과 오토론, 주택담보대출 비교 견적까지 영역을 넓히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당국이 카카오페이의 금융 서비스에 제동을 걸고 나섬에 따라, 투자자들은 회사의 성장성에 대한 기대치를 낮출 가능성이 있다.
한 증권사 자기자본투자(PI) 관계자는 “카카오가 가진 브랜드 파워가 크고 앞서 상장한 카카오뱅크의 주가 흐름이 워낙 좋았던 만큼 카카오페이 역시 투자 매력이 있지만, 금융당국의 규제 리스크가 전면에 드러난 상황을 고려할 때 기존 계획보다 좀 더 낮은 가격을 (기관 수요예측에서) 적어낼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전망했다.
카카오페이가 희망 공모가 범위를 자발적으로 하향 조정하는 방안도 가능하나, 증시 전문가들은 그럴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카카오페이는 앞서 희망 공모가 범위를 한 차례 조정하는 과정에서 적정 시가총액을 오히려 상향 조정했다. 기존 적정 시가총액은 16조6000억원이었으나, 조정 후 적정 시가총액은 18조원이다. 대신 주가 할인율을 높이는 방법으로 공모가를 소폭 낮췄다.
카카오페이 측은 이와 관련해 정해진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금감원 관계자 역시 “(희망 공모가 재조정은) 카카오페이에서 결정할 문제”라며 선을 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