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플랫폼 업체들이 잇달아 증시 입성을 추진하는 가운데, 상장 주관사 선정을 둘러싼 증권사들의 눈치 싸움이 치열하다. 사업 모델이 유사한 업체의 상장 주관을 중복으로 맡을 수 없는 만큼, 증권사 입장에서는 경쟁 플랫폼 중 어느 곳을 택해 입찰하는 것이 유리할지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다.
증권 업계에서는 향후 더 많은 플랫폼 업체들이 상장에 뛰어들면 증권사들의 셈법이 더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11번가와 티몬도 기업공개(IPO)를 앞두고 있어, 이들까지 상장 작업에 본격적으로 착수한다면 증권사들은 더 많은 요소를 고려해야만 한다.
27일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현재 증권사들은 차량 호출 서비스라는 공통 분모를 가진 카카오모빌리티와 쏘카를 놓고 고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말 쏘카가 상장 주관사를 선정한 데 이어, 이 달 23일에는 '카카오T'를 운영하는 카카오모빌리티까지 국내외 주요 증권사 10곳에 입찰제안요청서(RFP)를 발송하며 IPO 준비 작업에 착수한 상황이다. 국내 증권사 중에서는 NH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KB증권, 대신증권이 RFP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올 들어 크래프톤(259960)과 SKIET, 현대중공업 등 IPO 대어(大魚)들의 상장 주관을 맡으며 선전하고 있는 미래에셋증권은 카카오모빌리티의 상장 주관 후보에서 일찌감치 배제됐다. 삼성증권 역시 미래에셋증권과 더불어 카카오모빌리티의 RFP를 받지 못했다. 이들이 각각 쏘카의 대표 주관사와 공동 주관사로서 계약을 맺은 상태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통상 경쟁관계에 있는 업체의 주요 딜을 맡은 증권사를 IPO 주관사로 선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영업 기밀이 유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IB 업계 관계자는 "두 회사(미래에셋증권과 삼성증권) 입장에서는 카카오모빌리티가 이렇게 빨리 상장에 착수할 것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카카오모빌리티의 기업가치가 쏘카의 2배 이상으로 추산되는 만큼, 쏘카와 섣부른 계약을 했다는 후회를 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롯데렌탈(089860) 상장 주관을 맡은 NH투자증권·한국투자증권·KB증권은 차량 렌탈 서비스라는 공통점 때문에 이해 상충에 걸릴 수도 있었으나, 롯데렌탈이 간발의 차로 증시에 입성함에 따라 카카오모빌리티의 상장 주관 경쟁에 뛰어드는 것이 가능해졌다. 롯데렌탈은 지난 19일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했다.
증권 업계에서는 향후 미래에셋증권과 삼성증권이 쏘카와의 상장 주관 계약을 파기하고 카카오모빌리티 상장 주관 경쟁에 뛰어들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카카오모빌리티의 몸값이 쏘카의 2배 이상으로 추정되는 만큼, 상장 주관을 통해 얻게 될 수수료에도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미래에셋증권 측은 "쏘카 상장 주관을 맡고 있기 때문에 (카카오모빌리티의) RFP를 받는 것은 기대도 하지 않았다"는 입장이지만, 주관 계약 해지가 법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닌 만큼 상황을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IB 업계에서는 말한다.
카카오모빌리티는 지난달 28일 GS칼텍스와 GS에너지로부터 300억원을 투자받았는데 신주 발행가액이 6만3770원이었다. 당시 카카오모빌리티는 4조원 이상의 몸값을 인정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비상장주는 현재 장외 주식 거래 플랫폼 엔젤리그에서 유상증자 기준 몸값의 2배가 넘는 약 8조4000억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고 있으나, IB 업계에서는 향후 10조원까지 오를 가능성도 내다보고 있다.
만약 카카오모빌리티의 상장 후 시가총액이 10조원이 된다면, 그 중 20%를 공모주로 내놓는다는 가정하에 공모 금액이 2조원에 육박할 전망이다.
이커머스 업체들의 상장을 두고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신선 식품 새벽 배송 1위 업체인 마켓컬리와 신세계그룹 통합 온라인몰 SSG닷컴, 식품 이커머스 가운데 유일한 흑자 기업인 오아시스마켓이 올해 잇따라 상장을 본격화 하면서 증권사 간 눈치 싸움이 치열하다.
마켓컬리 운영사 컬리는 지난달 국내 대형 증권사에 RFP를 보내 이달 중 주관사를 선정할 예정이었으나 일정을 연기했다. 컬리는 그동안 상장을 성공적으로 이뤄낸 이력 등을 고려해 대형 증권사를 주관사로 염두에 뒀으나, 대형사 중 한국투자증권과 NH투자증권은 오아시스마켓의 상장 주관사로 이미 선정됐다.
미래에셋증권과 삼성증권은 컬리보다는 SSG닷컴 상장 주관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와 달리 KB증권의 경우 김성현 대표이사까지 직접 프리젠테이션 참여를 진지하게 고려했을 정도로 컬리 상장 주관 계약에 열의를 보였지만, 컬리가 미적지근한 태도를 보이자 이제는 SSG닷컴에 집중하겠다는 입장이다.
SSG닷컴은 투자 유치 과정에서의 계약 조건에 따라 오는 2023년까지 상장하기로 돼 있는데, 시점을 내년으로 정하고 지난 13일 국내외 증권사에 RFP를 보냈다. 마켓컬리와 SSG닷컴 모두 9월 중에 상장 주관사 선정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증권사 입장에서는 SSG닷컴과 컬리 모두 놓치기 아쉬운 대어다. IB 업계에선 가파른 성장세를 토대로 두 회사의 기업가치를 각각 9조~10조원, 4조~5조원 수준으로 본다. SSG닷컴의 경우 성공적으로 상장시키면 신세계그룹의 다른 딜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크다. 컬리는 '제2의 쿠팡'이라는 상징성이 있다.
유통업계의 한 관계자는 "SSG닷컴이 예상보다 빨리 상장에 나서면서 컬리의 셈법이 복잡해졌다"며 "이해 상충을 피하기 위해 SSG닷컴이 주관사를 선정한 뒤에 컬리가 나설 가능성이 크고, 오아시스마켓처럼 여러 증권사를 공동 주관사로 선정할 수도 있다"고 전했다.
플랫폼 기업들의 상장 행렬은 이제 시작이다. 증권사들의 수주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달 말 아마존과 손잡고 해외 직구 서비스 '아마존 글로벌 스토어'를 오픈하는 11번가는 2023년을 목표로 상장을 준비 중이다. 티몬은 연내 상장 계획을 최근 철회했지만 라이브 커머스 등 미디어 플랫폼으로서 기능을 강화해 내년 이후 상장에 재도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