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재정난을 겪어온 간송미술관이 파격적인 돌파구를 마련하며 문화계와 금융 시장에 신선한 충격을 줬다. 국보 제70호인 훈민정음 해례본을 100개 한정판 대체 불가 토큰(NFT·Non-fungible Token)으로 만들어 개당 1억원에 판매하기로 한 것이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한글을 창제한 목적과 제작 원리를 담은 책으로, 1940년 경북 안동에서 발견된 것을 간송 전형필이 사들인 후 현재까지 그 후손들이 소유해왔다.
간송미술관의 이번 결정이 화제가 된 것은, 그동안 그림이나 영상 등에 주로 활용돼왔던 NFT가 문화재에도 확대 적용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했기 때문이다. 고유한 이더리움 토큰으로 주요 국보를 소유할 수 있다는 사실은 대중에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NFT는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해 디지털 자산의 소유주를 증명하는 토큰이다. 보통 암호화폐의 일종인 이더리움으로 거래되며, 특정 디지털 파일과 일대일로 연결돼있어 고유성과 희소성을 지닌다. 실물 회화나 물체 혹은 추상적 개념도 디지털 파일로 만들어 암호화폐를 연결할 수 있다. 이번 훈민정음 해례본 역시 소유자인 간송미술관에서 디지털 파일로 만든 뒤 고유한 토큰을 연결하는 것이며, 소유자가 직접 진위성을 보장해준다.
올 초 뜨겁게 달아올랐다 시들해졌던 NFT가 다시 인기를 끌고 있다. NFT 시장 분석 업체인 논펀저블닷컴에 따르면, 이달 6일 전 세계 NFT 자산 판매액은 총 8150만달러(948억원)에 달했다. 12일에는 1671만달러(194억원)로 줄었지만, 거래액이 이달 초부터 매일 급증과 급감을 거듭하고 있다.
NFT 일일 거래액은 올해 5월 3일 1억달러를 넘었으나, 이후 약 두 달 동안 100만~200만달러 사이에서 증감하며 지지부진한 흐름을 이어갔다. 그러다 지난달 초부터 다시 투자 수요가 몰리는 것이다.
최근 NFT 시장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앞서 언급했듯 사용처가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해외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NFT 시장은 다각화하며 확대되고 있다.
대표적인 국내 인물 사진 작가 황문성은 12일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진을 NFT로 만들어 경매에 올렸다. 노 전 대통령이 2002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유시민씨와 인터뷰하던 중 촬영한 사진이다.
가수들은 음반에 NFT를 연결해 한정판으로 판매하고 있다. 기존 음반과 비교하면 고가에 판매되지만, 팬 입장에서는 그 값을 지불할 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에 시장이 형성될 수 있다.
이처럼 NFT 사용처가 다양해지자 양대 IT 플랫폼 업체인 네이버와 카카오도 고유 암호화폐를 발행해 NFT 시장에서 맞붙었다.
카카오는 자체 블록체인 플랫폼 '클레이튼'에 '클립 드롭스'라는 NFT 전용 플랫폼을 개설했다. 배우 하정우의 작품에 NFT를 연결해 경매에 올렸다. 네이버 역시 일본 거래소 '비트맥스'를 통해 NFT 플랫폼의 베타 버전을 선보였다.
암호화폐 시장의 향후 흐름을 예상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NFT의 활용이 점점 보편화하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NFT 시장을 단순한 '투기판'으로 치부할 단계는 지났다고 해도 괜찮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