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민연금이 주식시장에 새로 입성한 이른바 '대어(大魚)'들을 대량 매수하고 있다. 올해 들어 증시가 박스권 안에서 횡보하고 있는 만큼, 신규 상장주에 투자해 어느 정도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 받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반면 국민연금은 삼성전자(005930), SK하이닉스(000660) 등 '국민주'로 인식돼온 시가총액 상위 종목들을 대거 팔고 있다. 증시 전문가들은 국민연금이 국내 주식의 보유 비중을 점진적으로 줄여야 하는 상황인 만큼, 포트폴리오 조정을 위해 시가총액이 큰 대형주를 많이 파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12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최근 한 달 간 연기금이 가장 많이 사들인 종목은 카카오뱅크(323410)였다. 카카오뱅크 주식을 2690억원 순매수한 것으로 집계됐다.
연기금은 최근 국내·외 기관이 대량 매도하며 주가가 급락한 크래프톤 주식도 많이 사들였다. 10일 크래프톤이 상장한 이후 총 1480억원어치를 순매수했다. 같은 기간 외국계 기관은 2742억원을, 국내 금융 투자 업체들은 359억원을 순매도했지만, 이들과 상반된 선택을 한 것이다.
연기금은 그 외에도 지난 16일 상장한 SD바이오센서를 최근 한 달 동안 570억원 순매수했다. 상장일에만 순매수액이 340억원을 기록해, 당일 연기금의 순매수 금액 1위 종목으로 이름을 올렸다. 앞서 지난 5월 11일 상장한 SKIET의 경우에도 연기금의 일일 순매수액이 260억원을 기록했다.
이 같은 연기금의 신규 상장주 선호는 올해 2분기부터 뚜렷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올해 초나 지난해까지만 해도 연기금은 신규 상장 기업을 많이 매수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올해 3월 18일 상장한 SK바이오사이언스(302440)는 상장 당일 460만원어치를 팔았다. 의미 있는 수준의 매도량은 아니지만, 딱히 선호하지도 않은 것이다. 연기금은 지난해 9월 10일 상장한 카카오게임즈(293490)의 경우 상장 당일 280만원어치를 팔았으며, 상장 후 석 달 간 20억원을 순매도했다.
연기금은 올해 들어 신규 상장주를 증시에 입성한 후에도 많이 사고 있지만, 상장 전 기관 수요예측 단계에서도 적극적으로 매수하고 있다. 카카오뱅크의 경우 연기금과 운용사 고유재산 및 은행·보험사에 배정됐던 물량이 총 644만주였는데, 그 중 83%인 534만주에 6개월 의무보유 확약이 걸렸다. 장기간 의무보유 확약을 함으로써 더 많은 물량을 배정 받고자 한 것으로 해석된다. 수요예측에 참여했던 모든 기관의 배정 주식 중 6개월 의무보유 확약이 걸렸던 물량이 37%였던 것과 비교해, 매우 높은 비율이다.
연기금은 크래프톤의 기관 수요예측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총 103만주가 연기금, 운용사 고유재산 및 은행, 보험에 배정됐는데, 이 중 87.4%에 3개월 의무보유 확약이 걸렸다. 미확약 물량의 비중은 8.7%에 불과했다. 외국계 기관의 배정 물량 중 80%에 의무보유 확약이 걸리지 않았던 것과 비교하면, 연기금의 수요예측 참여 의지가 특히 강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국민연금의 사정을 잘 아는 금융 투자 업계 관계자는 "최근 기금운용본부 주식운용실에서 특히 게임과 엔터테인먼트 관련주를 선호하는 분위기가 강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실제로 연기금은 지난 3개월 간 방탄소년단(BTS) 소속사인 하이브(352820) 주식을 3380억원어치 사들였다. 그 외에도 넷마블(251270) 주식을 645억원 순매수한 것으로 집계됐다. JYP Ent.(035900)와 CJ ENM(035760), 와이지엔터테인먼트(122870)도 각각 589억원, 464억원, 416억원어치 사들였다.
연기금은 반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시총 상위주들을 대량 매도하고 있다. 최근 한 달 간 삼성전자 주식을 5300억원, SK하이닉스를 1960억원 순매도한 것으로 집계됐다. 그 외에도 현대차(005380), SK텔레콤(017670), LG생활건강(051900), 카카오(035720), 현대모비스(012330) 등 시총이 큰 대형주들을 많이 팔았다.
금융 투자 업계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국내 주식의 보유 비중을 줄여야만 하는 상황이라, 기회가 될 때마다 시총이 큰 삼성전자 주식을 조금씩 팔아야만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연금은 앞서 지난 5월 28일 '2021년도 제6차 회의'를 통해 오는 2026년까지 국내 주식의 목표 비중을 기존 15%에서 14.5%로 0.5%포인트 낮추기로 결정했다. 국내 주식의 보유 비중을 쉽게 낮추기 위해서는 시총 비중이 높은 삼성전자 주식을 많이 파는 것이 유리하다.
올 들어 증시가 박스권에서 횡보하고 있는 만큼, 국민연금이 수익을 안정적으로 낼 수 있는 신규 상장주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졌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새로 상장한 기업 62개사의 공모가 대비 평균 주가 상승률(11일 종가 기준)은 74%에 달했다. 상장 첫날 시초가 대비 평균 주가 상승률은 19%였다. 즉, 공모주를 사지 못하고 상장 첫날 시초가에 매수하기만 해도 평균 20%에 가까운 수익률을 보장 받을 수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