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여름, 4년차 투자 심사역 오종욱(당시 29세)은 청년 창업가 한 명을 찾아갔다. 20대의 창업가는 폐업한 횟집을 빌려 돼지고기 유통 스타트업을 운영하고 있었다. 오종욱이 찾아갔을 때, 두 명의 창업 멤버가 나란히 앉아 선풍기를 틀어 놓고 돼지고기를 썰어 잽싸게 포장하고 있었다. 두 창업가가 땀을 흘리며 포장한 돼지고기는 횟감용 냉장고에 차곡차곡 쌓였다.

오종욱은 이 회사에 4억원을 투자하기로 결심했다. 고기의 유통 기간을 혁신적으로 줄여보겠다는 창업가들의 열정에 매료됐기 때문이다. 당시 회사의 기업가치는 30억원에 불과했다. 5년이 지나 회사의 몸값은 2000억원이 넘는 수준으로 올랐다. 네이버도 100억원을 투자했다. 오종욱이 일찌감치 성장 가능성을 알아본 이 회사는 신선 식품 유통 업체 ‘정육각’이다.

현재 캡스톤파트너스에서 이사직을 맡고 있는 그는 5년간 40여개 기업에 투자하며 탄탄한 트랙레코드(실적)를 쌓았다. 정육각 외에도 중고품 직거래 장터 당근마켓, 영어 학습 플랫폼 리얼클래스를 운영하는 퀄슨, 커리어 관련 콘텐츠 구독 서비스 퍼블리 등에 초기 투자해 업계 에이스로 인정받았다.

지난달 중순 서울 강남구 역삼동 캡스톤파트너스 사무실에서 오 이사를 만나 벤처캐피털(VC)에 입문하게 된 계기와 투자 비화, 투자관 등을 물었다. 오 이사는 화려한 언변보다는 차분하고 침착한 말씨로 생각을 조리 있게 풀어나가는 타입이었다. 인터뷰가 진행되는 한 시간 반 동안 전혀 지친 기색 없이 말을 이어나갔다.

오종욱 캡스톤파트너스 이사. /캡스톤파트너스 제공

VC 업계에 입문하기 전에는 어떤 일을 했는지.

“전자공학을 전공해(서울대학교 전기정보공학부 06학번이다) 군 복무를 병역 특례로 대체했는데, 이때 이지스엔터프라이즈 자회사 기웅정보통신이라는 회사에서 근무하며 세무 자동화 서비스 택스메이트를 만들었다. 그 당시에는 세무사들이 손으로 일일이 정보를 기재하고 정리해야 했다. 그게 너무 불편해 보여 직접 해결해보고자 했던 것이다.

서비스를 홍보하기 위해 서울 구로, 가산의 아파트형 공장을 돌아다니며 직접 전단지를 돌려 광고도 하고 영업도 했다. 스타트업 창업자와 비슷한 일을 한 셈이다. 마침 그때가 모바일 서비스들이 한창 출시되던 시기였기에, 그런 경험을 토대로 창업을 한 번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당시 개발했던 제품은 현재 서비스되고 있는지. 또 이후 실제로 창업까지 해봤나.

“내가 병역 특례를 마치고 나올 때쯤 월 매출액이 약 2000만원 나오는 것까지 봤다. 지금도 잘 서비스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얼마 전 기웅정보통신 부사장님을 뵀는데 ‘네가 만들어 놓고 나간 서비스로 돈 많이 벌고 있다’ 하시더라.

창업을 한창 고민하며 학교에서 스쿠터 공유 서비스를 만들어 잠깐 운영한 적도 있다. 나는 공대생이라 301동에서 주로 수업을 들었는데, 서울대 캠퍼스가 너무 크다 보니 경영대학까지 이동하려면 30분도 더 걸린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래서 학교 안에서 스쿠터를 공유하는 서비스를 만들어 2주 정도 운영해 봤다. 그때 같이 창업했던 친구들이 지금 중고차 판매 플랫폼을 운영하는 헤이딜러의 박진우 대표, 김지환 최고기술책임자(CTO)다.

그렇게 창업을 진지하게 고려했지만, ‘아직 나이가 어리니 바로 창업을 하지 말고 VC에 가서 스타트업들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살펴보라’는 (기웅정보통신) 부사장님의 조언을 받아들여 2013년 TS인베스트먼트에 취직했다.”

TS인베스트먼트에서의 투자 업무는 어땠는지.

“그때 호준형(손호준 스톤브릿지벤처스 이사) 소개로 토스를 알게 돼 비바리퍼블리카에 대한 투자도 회사에 건의해봤고, 비트코인과 이더리움만 상장돼 있던 시절의 빗썸도 진지하게 투자 검토를 했다. 그때 비바리퍼블리카 기업 가치가 50억원 정도였을 것이다.

그러나 TS인베스트먼트는 주로 규모가 큰 중·후기 투자를 하는 회사였다. 리스크가 있거나 뚜렷한 제품이 없는 회사에 대한 초기 투자는 별로 하지 않았다. 반면 나는 서비스를 직접 만들다 갔으니 초기 투자에 더 관심이 있었고, 자연스럽게 2016년 (초기 투자 전문 회사인) 캡스톤파트너스로 이직했다.

지금은 쿠팡에서 투자개발실장을 맡고 있는 정상엽 전무가 우리 회사에서 심사역을 맡고 있을 당시 내게 이직을 제안했다. 정 실장과 같이 쿠팡에 합류하는 것도 고민했는데, 투자를 더 해보고 싶은 생각이 컸기에 캡스톤파트너스에서 새 커리어를 시작했다.”

쿠팡에 합류했다면 스톡옵션도 많이 받았을 텐데.

“그때 쿠팡 기업가치가 1조원이었으니, 그랬을(스톡옵션을 많이 받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시 투자에 막 재미를 붙이고 있었기 때문에 캡스톤에서 투자를 제대로 배워보고 싶었다. 또 나는 병역특례를 하며 서비스를 출시해 직접 영업과 마케팅까지 하며 사업 개발의 어려움을 경험해봤기에, 개발보다는 투자업에 집중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캡스톤파트너스에서는 초기 투자에 대한 갈증을 해소했는지.

“이직 첫해에만 13개 회사에 투자했다. 팀(창업 멤버들)만 좋으면 좀 공격적으로 투자하자고 마음먹은 상태였다. 대표님(송은강 캡스톤파트너스 대표)이 내게 주문한 사항도 ‘좋은 팀이 있다면 무조건 투자해보라’는 것이었다.

그 해에 투자한 회사 중 현재 가장 성장한 곳이 당근마켓, 정육각이다.”

정육각에서 판매 중인 초신선 식품. /정육각 홈페이지

정육각은 어떤 회사였나.

“2016년 여름 투자를 심사하기 위해 정육각에 찾아갔을 당시, 창업자 두 명이 폐업한 횟집을 빌려 회사를 경영하고 있었다. 지금은 공장이 전부 자동화돼 있지만, 그때는 직접 고기를 받아다 썰어서 유통하던 초기 단계였다.”

초창기 회사에서 어떤 가능성을 본 건지.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뚜렷하고 능력 있는 훌륭한 창업가들이 있었다. 김재연 정육각 대표는 한국과학영재학교와 카이스트를 졸업한, 고기를 좋아하는 똑똑한 창업가였다.

지방에 살다 서울에 올라와 고기를 먹었는데 맛이 없다더라. 왜 맛이 없을까 고민하다 보니, 고기의 유통 기간이 너무 길어서 그렇다는 답을 얻고 직접 (유통) 기간을 줄여보겠다는 의지를 갖고 창업한 것이다.

사실 신선 식품 유통업이 그렇게 큰돈이 들어가는 사업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쉽게 투자하지 못했을 것이다. 인프라 투자 비용 등을 고려하면 내가 투자한 4억원은 턱없이 부족한 돈이었다. 당시에는 그저 사람을 보고 투자했다.”

훌륭한 창업가란 어떤 사람일까.

“정의하기가 어렵지만, 기본적으로 세상을 바꾸려는 선한 의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불편한 것을 편하게, 좋은 방향으로 바꿔보겠다는 의지가 명확하고 거기에 인생을 쏟을 정도로 열정적인 사람들이 훌륭한 창업자가 되는 것 같다.

동시에 자신의 판단이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런 사람들은 사업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지만, 시장이 변하거나 자신이 틀렸다는 생각이 들면 방향을 빨리 바꿀 줄도 안다. 김재연 대표도 그런 창업가였다.”

정육각과는 현재 어떤 관계를 이어가고 있는지.

“2016년 기업 가치 30억원에 4억원을 투자한 이후, 현재까지 총 130억원을 투자했다(IB 업계에 따르면 정육각의 현재 기업가치는 2000억원을 넘는 수준이다). 초기 투자금 4억원은 지분 희석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 계산하면 280억원의 가치를 지닌다. 지분 희석을 감안한 현재 가치는 88억원이다.

초창기는 창업가들이 정보를 필요로 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멤버들에게 스톡옵션을 얼마나 줘야 하는지, 사람을 얼마나 채용해야 하는지에 대해 조언을 해주기도 했고, 이후에는 후속 투자를 받을 수 있도록 소개를 많이 해줬다. 지금은 내가 직접 사외이사로 들어가 있지만, 워낙 빠르게 잘 성장하고 있어 따로 도움을 줄 부분이 없을 정도다.”

초기에 투자한 회사가 그렇게 성장한 것을 보면 어떤 느낌이 드나.

“매우 뿌듯하면서도, 투자에 대한 가치관도 좀 더 명확하게 다듬게 된다. 정육각의 성장을 보면서는 ‘이렇게 사람을 보고 투자하는 게 역시 맞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현재까지 내가 투자한 회사들이 총 40여개인데, 창업가의 가능성을 보고 투자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훌륭한 창업가와 반대로, 투자를 꺼리게 되는 창업가도 있는지.

“신뢰를 못 주는 사람에게는 투자를 잘 안 하게 된다. 여러 번 만나 대화를 해도 내게 말하는 내용이 투명하지 않다든가, 회사의 약점을 감추려는 사람에게는 신뢰가 가지 않는다.”

그 외에도 투자를 기피하는 회사의 특징이 있나.

“특정 투자자의 지분율이 지나치게 높은 회사에는 마음이 가지 않는다. 예를 들어 유명한 엔젤(개인) 투자자가 40%의 지분을 가진 경우, 회사가 성장해나갈수록 이익이 외부인에게 돌아가게 된다. 사업이 잘될수록 내부 구성원들이 많은 이익을 가져가는 회사가 좋은 회사다.”

김재현 당근마켓 대표이사. 2016년 8월에 촬영한 사진이다. /노자운 기자

당근마켓은 처음에 어떻게 투자하게 됐는지.

“2016년 창업가들이 먼저 우리 회사에 찾아왔다. 아직 판교 등 경기 일부 지역과 서울 강남 지역에서만 서비스하던 단계였고, 전국구 서비스를 시작하겠다며 투자를 받으러 왔더라. 직원이 10명 정도 있던 때다.”

중고나라라는 회사가 이미 있었던 상황이다. 당근마켓에서 어떤 성장 가능성을 본 건가.

“이용자들의 플랫폼 방문 횟수와 체류 시간이 눈에 띄더라. 중고나라는 특정 제품을 사야겠다는 뚜렷한 목적을 갖고 접속하는 서비스였지만, 당근마켓은 이용자들이 인터넷 쇼핑을 하듯 자주 접속해 둘러보는 서비스였다.

그 당시 통계를 보니 한 번 당근마켓 애플리케이션(앱)을 설치하면 30일 중 24일 동안 접속한 이용자도 많았고, 매회 20분씩 체류하며 주변에서 어떤 상품이 팔리고 있는지 살펴보더라.

당근마켓의 첫 기관투자자로서 5억원을 투자했고, 현재까지 매 라운드(투자 단계)에 참여해 누적 40억원을 투자했다(IB 업계에서는 당근마켓의 현재 기업가치를 3조원 수준으로, 캡스톤파트너스가 보유한 당근마켓의 지분가치를 1000억원 이상으로 추산한다).”

당근마켓이 이렇게 성장하기까지 어떤 도움을 줬는지.

“팀이 너무 훌륭해서 그저 투자해주는 것밖에는 할 일이 없었다. 다만 내가 투자한 다른 회사들과 묶어서 함께 광고하는 식으로 마케팅을 도와준 적은 있다.

당근마켓과 정육각, 그리고 셰프(요리사)의 요리를 간편식 형태로 배달해주는 플레이팅을 묶어 패키지 광고를 해봤다. 고객층이 주로 서울 강남 지역의 가정주부들이라는 점을 고려해 공동 마케팅을 한 것이다.”

벤처 펀드 결성도 직접 하는지.

“지금까지 대표 펀드매니저로서 3개 펀드를 결성했다. 그 중 한 개는 현재 모집 중인 300억원 규모의 펀드다. 8월 중 결성이 완료될 것 같다.”

펀드 출자자(LP)를 상대할 때 어려운 점은 없나.

“젊은 펀드매니저들이 LP에게 펀드 운용 전략을 어필하고 인정받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린다. 좀 더 무르익어야 하고, 능력을 검증받기까지 시간이 더 필요한 것 같다. 그래서 LP를 만날 때는 명확한 차별성을 나타낼 수 있는 전략을 갖고 가야 한다.

캡스톤파트너스의 경우는 창업 초기 단계에 공격적으로 투자하고, 잘 되는 회사에 후속 투자를 계속 한다는 큰 전략을 갖고 있다. 대표님을 중심으로 그런 전략을 갖고 창업가 친화적인 투자를 계속 해오고 있다.”

투자자로서 오 이사가 가진 강점이 무엇일까.

“창업가들을 신뢰한다는 것이다. 투자자는 본질적으로 창업가와 사업의 성장 가능성에 대해 늘 의심할 수밖에 없는데, 의심을 너무 많이 하다 보면 사업에 지나치게 간섭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나는 창업가들이 충분히 고민한 끝에 의사 결정을 내리면, 그것을 서포트(격려·응원)하는 역할을 하려고 한다.

투자자가 사업에 개입해 방향성을 만들려고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투자 과정이 어려웠던 회사도 있었는지.

“그룹 운동 플랫폼 ‘버핏서울’에 투자하는 과정이 어려웠다. 체육대학 입시 학원을 운영하던 장민우 대표와 VCNC(쏘카 운영사)에서 근무하던 공진규 이사가 공동 창업한 회사였는데 창업가들의 역량이 정말 뛰어나더라. 펀드 결성 시기와 그 회사의 투자 유치 시기가 서로 맞지 않아 기회를 한 번 놓친 후 다시 찾아갔는데, 한 시간 동안 역으로 면접을 봤다.

‘우리 사업에서 어떤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으냐’, ‘당신이 (투자자로) 와서 어떤 것을 도와줄 수 있느냐’는 등의 질문들에 대답하고 겨우 투자할 수 있었다. 좋은 창업가들에게는 투자자들이 줄을 서기 때문에, 간절히 투자하고 싶다면 여러 번 찾아가서 조르고 부탁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오종욱 이사가 투자한 버핏서울. /버핏서울 홈페이지

벤처캐피털리스트가 되고 싶은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직장인 중에는 최고의 직업이다. 훌륭한 창업가들을 옆에서 계속 보며 새로운 것을 만들어나가는 에너지를 접할 수 있다. 투자를 통해 좋은 성과가 나면 다른 직장인들과 비교해 괜찮은 수준의 보상을 받을 수도 있다. 혹은 창업가들을 보며 쌓인 지식과 인사이트를 활용해 주식 투자나 사업 개발 등 다른 일을 할 수도 있다.”

요즘 주로 하는 고민이 무엇인가.

“나는 스타트업들이 많이 등장해 생태계가 만들어지던 좋은 시기에 VC 업계에 입문했다. 내가 잘해서라기보다는, 시장이 좋아졌고 큰 물결에 잘 올라탔기 때문에 좋은 회사들에 투자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것을 지속 가능하게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계속 고민 중이다. 창업가들을 서포트하는 프로그램을 더 체계화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다.”

투자는 한 달에 몇 건이나 검토하나.

“정말 많을 때는 하루에 서너개 씩 검토한다. 기존에 투자해 놓은 회사들도 하루에 한두 군데는 만나거나 통화하니, 바쁠 때는 하루에 네다섯 개 회사와 소통하는 것 같다. 피투자사 대표님들 전화를 받고 한 시간씩 통화할 때도 잦다.”

쉴 시간은 있나.

“아침마다 수영을 하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머리에 쉴 시간을 준다. 도움이 많이 된다.”

혹시 창업을 다시 하고 싶은 생각도 있는지.

“창업가들을 서포트하다보면 간접적으로 창업과 회사 경영을 경험할 수 있다. 그들의 고민을 함께 나누다 보면, 사업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도 함께 나누게 된다. 나는 앞으로도 투자업을 계속 하면서 창업가들을 돕는 일을 계속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