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조지타운대에서 학부를 졸업하고 유럽계 최대 투자은행(IB)인 크레디트스위스 뉴욕지사에서 기업 인수·합병(M&A)을 담당했다. 그 후 스탠퍼드대학교에서 경영학 석사(MBA) 과정을 밟으며 IB에서 탄탄대로를 밟아나가던 어느 날, 덜컥 회사에 사표를 던졌다.
굴지의 글로벌 IB를 뛰쳐나온 진윤정(39)이 택한 다음 진로는 벤처캐피털리스트였다. 이덕준 전 지마켓 최고재무책임자(CFO)가 만든 벤처캐피털(VC) D3쥬빌리에서 투자 업무를 시작했다. 현재는 소프트뱅크벤처스아시아 최초의 여성 심사역이자 중역인 상무이사로서 동남아시아 스타트업 투자의 ‘큰손’으로 성장했다.
홍콩 재벌 리카싱의 선택을 받은 인도네시아 투자 플랫폼 벤처 아자이브의 가능성을 일찌감치 알아보고 초기 투자를 했으며, 인도네시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토코피디아에 대한 투자 심사를 맡았다.
그 외에도 싱가포르 온라인 쇼핑 업체 샵백, 인도네시아 농촌을 위한 소셜 커머스 플랫폼 슈퍼, 싱가포르 자산관리 플랫폼 엔다우어스, 인도네시아 물류 기술 플랫폼 웨어식스, 인도네시아 음식 배달 서비스 여미코프 등 동남아 시장의 유망 스타트업에 두루 투자하며 7년 만에 탄탄한 트랙레코드(실적)를 쌓았다.
전형적인 금융 엘리트 코스를 밟은 진 상무는 예상보다 훨씬 털털하고 호탕한 타입이었다. 두 명의 자녀를 키우는 워킹맘이기도 한 그는 “이렇게 힘들 수가 있나 싶은 순간이 여럿 있었다”면서도 지금 하는 일이 ‘솔직히' 너무 즐겁다고 했다.
VC에서 일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미국 뉴욕에서 뱅킹 업무를 했지만 바이사이드(buy-side·자금을 투자하고 운용하는 업계)에 대한 환상과 갈증이 늘 있었다. 셀사이드(sell-side·증권 업계)에서 기업 인수·합병을 주선하거나 조언하는 일도 의미 있었지만, 나도 언젠가는 바이사이드에서 어려운 결정을 한번 내려보고 싶다는 마음이 늘 있었다.
그러다 MBA를 미국 캘리포니아주 팔로알토 인근에서 했는데, 팔로알토에 VC가 워낙 많지 않나. 그때 VC에 눈을 떴다. 워킹비자가 필요하다는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MBA 졸업 후 뱅크오브아메리카 메릴린치로 돌아갔지만(미국은 어느 정도 규모가 큰 회사에 다녀야만 워킹 비자를 내준다), 1년 반 동안 매일 괴롭더라. 급여 수준은 좋았지만, 재미가 없었다. ‘내가 돈의 노예인가’ 싶은 생각도 들더라.
정말 즐거운 일을 하면서 내 일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었다. 그러던 중 과거 크레디트스위스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 이덕준 D3쥬빌리 대표를 소개받았다. 그렇게 벤처캐피털리스트로 일하기 시작했다.”
바이사이드에는 VC만 있는 것은 아니지 않나.
“헤지펀드와 사모펀드(PE) 쪽도 고민을 해보긴 했다. 그런데 헤지펀드는 가격이 매일 급등락하다 보니 스트레스가 너무 클 것 같았고, PE는 굉장히 큰돈을 한꺼번에 베팅해야 한다는 것이 엄청나게 부담스러운 일로 느껴졌다. 그보다는 좀 더 많은 사람을 만나서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하다 보니, VC라는 옵션이 남더라.”
원하던 바이사이드에서 실제로 일해보니 어땠는지.
“D3쥬빌리는 사회·환경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까지 고려하는 소위 ‘임팩트 투자’를 하는 회사였다. 그러다 보니 나 스스로도 투자를 하며 내가 세상에 어떤 임팩트를 주고 싶은지 고민을 많이 했다. 많은 청년이 대학을 졸업해 대기업에 취직하거나 공무원 시험을 보는 것 외에도 창업하거나 스타트업에 합류하는 길도 있다는 걸 깨닫게 돕는다면, 그게 바로 VC로서 우리나라에 미칠 수 있는 최고의 영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프트뱅크벤처스에는 어떻게 합류하게 된 건가.
“2014년 어느 날 소프트뱅크벤처스아시아의 파트너 중 한 명인 이은우 부사장에게 전화가 왔다. 소프트뱅크벤처스에서 최초로 여성 심사역을 한 명 채용하려고 하는데 인터뷰를 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이었다. 소프트뱅크가 IT 기업인 만큼 내가 기술을 모르는 게 문제가 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이 부사장이 ‘기술을 잘 아는 심사역은 이미 많고, 다른 관점을 가진 인재가 필요하다’고 하더라.”
소프트뱅크벤처스에서 가장 처음 맡았던 투자 건은 무엇인지.
“싱가포르에서 식료품 판매 플랫폼을 운영하는 레드마트였다. 우리나라의 마켓컬리와 비슷한 회사로 볼 수 있다. 이강준 전 상무(현 두나무앤파트너스 대표)가 투자를 검토했던 회사인데, ‘네가 영어를 할 줄 알고 숫자를 자주 보던 사람이니 한번 맡아서 해보라’며 넘겨주시더라. 그런데 레드마트 투자 업무를 하면서 정말 신나게 깨졌다(혼났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혼이 났나.
“IB에서는 리서치를 하거나 시장 규모를 볼 때 맥킨지나 베인앤드컴퍼니 등 컨설팅 업체에서 쓴 보고서를 많이 인용한다. 싱가포르의 온라인 식료품 시장 규모를 알아내야 하는데, 과거에 하던 대로 당연히 골드만삭스와 맥킨지 등이 추산한 시장 규모의 평균치를 낸 것이다. 그때 이강준 상무가 ‘누구나 볼 수 있는 정보를 인용해서 쓰는 게 말이 되느냐’며 혼을 내시더라.
이 대표님이 가르쳐준 접근법은 이런 식이었다. 싱가포르 인구를 3~4명으로 나눠 가구 수를 추산하고, 그다음으로는 연평균 소득을 가구 수로 나누고. 이렇게 세분화된 정보를 토대로 인구 중 몇 퍼센트(%)가 온라인 서비스를 이용할지 추산해보라고 하시더라.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왜 이 사업이 더 크게 성장할 수 있을지 미래를 예측해보라고 하셨다. ‘이미 존재하는 숫자’를 사용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정말 큰 가르침이었다.”
미래를 예측하는 게 중요하다는 가르침이 결국 유효했는지.
“유효했다. 레드마트가 2016년 알리바바에 인수됐는데, 그 후 코로나19가 유행하며 알리바바에 매각됐을 때보다 몸값이 훨씬 더 많이 오른 상태다. 이젠 싱가포르에서 레드마트는 보편적인 서비스가 됐다고 하더라. 물론 코로나는 그 누구도 예상하기 어려웠겠지만, 어떤 변화가 닥칠 수 있다는 가정 하에 싱가포르의 온라인 커머스 시장이 어느 정도로 성장할지는 미리 예측해야 했다.”
VC가 앞날을 예측하는 최선의 방법은 무엇일까.
“물론 어려운 일이지만, 현상을 보고 판단하면 안 되고 창업자가 앞으로 무엇을 더 만들어낼 수 있을지 상상을 해야 한다. 이 창업자가 언젠가 ‘파도를 잘 탈 수 있을지’ 알아보는 게 정말 중요한 것 같다.”
파도를 탄다는 게 무슨 뜻인가.
“파도가 나를 향해 밀려올 때는 아무리 노력해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지만, 뒤에서 나를 밀어주면 자연스럽게 나아갈 수 있다. 어떤 산업이나 섹터가 파도라면 그걸 타는 것은 창업자들의 몫이다. 새로운 변화가 나타났을 때 그 위에 잘 올라탈 준비가 돼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봐야 한다.”
직접 투자한 회사 중에도 그런 곳이 있었는지.
“인도네시아에서 주식 투자 플랫폼을 운영하는 아자이브가 전형적인 예다. 2018년 발굴해 투자한 회사다. 미국 액셀러레이터(스타트업을 발굴해 투자하고 사업 공간, 멘토링 등 종합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 와이콤비네이터 출신 스타트업이었는데, 창업자들이 스탠퍼드대학교 MBA 후배들이더라. 그런데 이 창업자들에 대한 평판이 굉장히 좋더라. 비록 나이는 스물 다섯살 밖에 되지 않았지만 똑똑하고 야망도 커서 잠재력이 대단하다는 평이 많았다.
그렇게 추천을 받아 미팅했는데, 솔직히 그들이 당시에 하던 사업 자체는 그다지 매력적으로 와 닿지 않았다. 뮤추얼펀드나 상장지수펀드(ETF)에 쉽게 투자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겠다는 계획이었는데, 그 당시 인도네시아의 1인당 GDP가 2500달러(약 288만원) 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펀드 투자를 대중화한다는 것이 너무 먼 훗날의 일이라고 느꼈다.
하지만 인도네시아에도 언젠가 핀테크 혁명이 올 것이고, 그 변화 속에서 파도를 가장 잘 탈 수 있는 창업자가 그들이라는 확신은 들었다. 창업자의 가능성만 보고 투자를 결정한 것이다. 우리 회사 투자심의위원회에서도 ‘이 사업이 잘 안 되더라도, 이 친구들은 언젠가 열릴 인도네시아 핀테크 시장에서 방향 전환을 해 좋은 서비스를 만들어낼 사람들’이라고 설득했다.”
아자이브는 결국 기대에 부응했나.
“2018년 증권 거래 중개업 면허를 취득하고 우리나라의 토스 같은 핀테크 회사로 전환했는데, 인도네시아에서 핀테크 바람이 불며 급성장하기 시작했다. 처음 증권 거래 앱을 출시했을 때까지만 해도 인도네시아 증권거래소에서 80개 증권사 중 79등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3등까지 올랐다. 1년도 안 되는 기간에 거의 불가능한 성장을 이뤄낸 것이다.
아자이브는 이후 홍콩 재벌 리카싱이 운영하는 VC에서도 투자받고, 올해 3월에는 글로벌 1위 핀테크 투자사 리빗캐피탈의 주도로(리빗캐피탈은 미국 로빈후드 등 전 세계 핀테크 유니콘 기업 50~60%에 투자한 회사다) 6500만달러(748억원)를 투자받았다.”
아자이브에는 워낙 초기에 투자했으니 수익률도 높겠다.
“회사가 더욱 성장할 것으로 보고, 아직 한 주도 팔지 않았다. 다만 기업 가치는 많이 올랐다. 현재 기업 가치가 3000억원이 넘으니, 내가 투자했을 때에 비해 30배 정도 오른 것 같다.”
성공할 창업가를 어떻게 알아보나.
“대화를 나누다 보면 해결하고 싶은 문제에 대해 열정이 넘치고 신나서 흥분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기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 가장 무서운 사람이다. ‘저러다 번아웃 증후군이 오면 어쩌나’ 걱정도 되지만, 그런 사람들은 일과 삶을 따로 구분해 놓고 있지 않아 쉽게 지치지 않더라. 그리고 자신에 대한 무한한 믿음이 있다. 나는 그런 좋은 에너지를 믿는 편이다.”
동남아 스타트업에 투자를 많이 하고 있는데, 현지 시장은 어떤가.
“토코피디아와 고젝 같은 동남아 1세대 스타트업들이 만들어진 시기가 2008~2009년이니, 이후 10년이 흐르며 많은 변화가 있었다.
1세대 스타트업들이 데카콘(기업 가치가 10조원이 넘는 스타트업)으로 성장하며, 그 회사에서 많은 사람이 나와 또 다른 스타트업을 창업하고 있다. 페이팔 출신으로 성공한 창업가들을 뜻하는 ‘페이팔 마피아’처럼 ‘토코피디아 마피아’, ‘고젝 마피아’가 생기는 것이다. 현 세대 창업가들은 1세대 스타트업들의 성공을 목격했기 때문에 창업에 대한 두려움도 크지 않다.
또 동남아 시장에 미국과 중국 등 외국계 자본이 많이 흘러들어가고 있다. 특히 중국 자본은 원래 인도 시장에 많이 유입됐는데, 인도와 중국 간 국경 분쟁이 가열되면서 인도가 중국 자본을 아예 안 받고 있다. 그래서 그 많은 돈이 인도 대신 동남아에 들어가고 있다.”
소프트뱅크의 네임밸류가 해외 기업 투자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되는 건 아닌가.
“우리 회사를 굳이 알리려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좋은 점이다. 그러나 미국, 중국계 자본이 계속 흘러들어오는 상황에서 투자사의 브랜드만으로는 부족하다. 스타트업이 원하는 바를 누가 충족해줄 수 있는 지가 중요하다.”
자본이 넘쳐나는 상황에서, 진 상무가 가진 경쟁력은 무엇일까.
“나는 피투자사 대표와 호형호제하는 성향은 아니다. 그렇게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술도 잘 못 마시고 집에 아이도 둘이 있어 어렵더라. 그 대신 ‘돈만 넣고 입을 싹 닫는 사람이 아니다’라는 것을 늘 어필하고 ‘문제나 고민이 있을 때 내게 가장 먼저 전화해달라’고 늘 당부한다. 그래서 문제가 터지면 나를 먼저 찾는 창업가들이 정말 많다. 새벽까지도 전화 오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투자사로서 피투자사의 모든 것을 도와줄 필요는 없지 않나.
“투자자로서 최악의 상황은, 피투자사에 문제가 생겼는데 모르고 있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내게 가장 먼저 털어놓고 같이 고민하는 경험이 하나 둘 쌓이다 보면, 서로 진심으로 신뢰하는 사이가 될 수 있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투자자의 모습이다.”
그렇게 일하다 보면 지치지는 않는지.
“한 번은 5개의 투자 건을 동시에 진행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사람이 이렇게 힘들 수가 있을까 싶었다. 신규 투자 2건을 검토하며 피투자사의 추가 투자 유치 3건을 검토했고, 그 외에도 여러 회사를 만나 미팅을 했다.
어쩔 수 없지 않나. 피투자사의 투자 유치 시기를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이 업의 특성은 밀물과 썰물이 있다는 것이다. 일이 몰릴 때는 확 몰리다가 펀딩이 끝나면 숨 쉴 틈이 있다. 썰물 때는 다시 돌아다니며 새로운 회사를 발굴하고 관계를 맺어나간다.”
국내 스타트업에 투자한 사례 중 재미있는 것이 있으면 소개해달라.
“인테리어 스타트업 아파트멘터리에 투자한 사례가 특이했다. 윤소연 대표는 과거 공중파 방송사에서 9년간 편성PD로 근무했는데, 여가 시간에 ‘칼슘두유’라는 블로그도 운영했다. 자기 집을 직접 리모델링하면서 모든 과정을 소개한 블로그인데, 글을 정말 재미있게 잘 써서 팔로워가 굉장히 많아졌다. 나도 당시 결혼을 준비하고 있었기에 블로그 글을 즐겨 보곤 했다.
그러다 윤 대표가 인테리어 관련 서적을 냈는데 15쇄까지 나오며 큰 성공을 거뒀다. 결국 이분이 창업을 하면 잘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직접 찾아가 만났고, 퇴사해서 사업을 해보는 건 어떻겠냐고 설득까지 했다.”
아파트멘터리 창업 후 투자를 바로 한 건가.
“당연히 사표를 내라고 설득할 때부터 투자 계획이 있었다. 당시 우리 회사에는 1년에 한 번씩 각 심사역이 파트너 한 명만 설득한다면 즉시 3억원을 투자할 수 있는 ‘심사역 딜’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나는 그동안 심사역 딜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만큼 자신 있는 회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파트멘터리는 성공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고, 바로 심사역 딜을 이용해 3억원을 초기 투자했다. 이후 추가 투자까지 했고, 아직 투자금 회수는 하지 않았다.
아파트멘터리의 기업 가치를 공개할 수는 없지만, 내가 워낙 초기에 투자했고 회사도 잘 크고 있어서 수익도 상당할 것으로 기대한다. 2019년 여러 VC에 100억원을 추가 투자받았고, 올해 매출액은 300억원 정도로 기대된다.”
투자를 결정할 때 특히 중요시하는 요소가 있는지.
“나는 대표이사뿐 아니라 CTO, CFO 등 ‘C레벨’의 주요 멤버들을 전부 만나본다.
많은 벤처캐피털리스트들이 대표를 보고 투자한다고 하는데, 나는 회사의 핵심 멤버들이 어떻게 유기적으로 어울려 잘 지내는지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이 대표의 약점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또 그것을 대표가 아는 지도 궁금하다.
대표는 자신의 약점이 무엇인지를 알아야만 다른 사람을 통해 보완할 방법을 알 수 있다. C레벨 뿐 아니라 채용 담당자도 꼭 만나본다. 어떤 철학을 갖고 채용하는지 묻는다.”
VC에서 일하기를 희망하는 사람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세상의 변화를 주도하는 최전방에 있는 사람들의 아이디어를 가장 먼저 들을 수 있는 일이니, 누가 해도 재미있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할 줄 아는 사람이 VC 업에 잘 맞는 것 같다. 항상 자신이 옳아야 하고 지적받는 것을 싫어한다면 이 일과 맞지 않다.
만약 어떤 회사에 초기 투자할 기회를 놓쳤는데, 자신이 틀린 것을 인정하기 싫어서 시리즈B(사업이 어느 정도 성장해나가는 단계에 이뤄지는 투자), 시리즈 C(사업이 일정 궤도에 오른 단계에서 이뤄지는 투자)에도 계속 투자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한 번 틀리는 데서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틀리는 셈이다. 정말 괜찮은 투자자라도, 한 번 내 판단이 틀렸다면 피투자사에 쫓아가 ‘내 돈을 받아달라’고 말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VC 업계 밖에서는 성공적인 투자 사례만 보고 ‘몇 배를 벌었다’는 것에만 주목하나, 그 이면에는 수많은 장례식도 있다. 내가 투자한 모든 회사가 잘될 수는 없다. 그것을 감당할 마음의 각오가 돼 있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