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기업공개(IPO) 최대어 중 하나로 꼽히는 게임 '배틀그라운드' 개발사 크래프톤이 기업가치를 약 25조원 안팎으로 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크래프톤은 11일 한국거래소 유가증권시장본부의 상장 예비 심사를 통과했으며, 기업가치를 토대로 빠르면 1~2주 안에 희망 공모가 범위(밴드)를 제시할 예정이다.
게임 업계와 금융투자 업계에서는 크래프톤이 25조원의 기업가치를 인정 받을 수 있을 지에 대해 엇갈린 의견을 내놓고 있다. 한편에서는 크래프톤이 배틀그라운드에 대한 매출 의존도가 높고 지난해 순이익이 5000억원대에 그쳤던 만큼 25조원이 지나치게 높은 가격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반면, 올해 순이익이 7000억원을 무리 없이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 같은 몸값 산정이 합리적이라는 분석도 있다.
◇ "크래프톤, 기업가치 20조~30조원 평가"···"PER 45배 적용해야 가능"
14일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크래프톤은 현재 자사 기업가치를 최소 20조원에서 30조원 사이로 보고 있으며 현실적으로 약 25조원 안팎을 고려 중이다. 당초 기업가치가 30조~40조원까지 오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던 것과 비교하면, 회사 측에서 기대치를 다소 낮춘 것으로 해석된다.
IB 업계 관계자는 "최근 신규 상장사들의 주가 흐름이 그리 좋지 않아, 크래프톤 내부에서도 공모가를 보수적으로 설정하고 상장한 후 주가를 올리는 편이 모양새가 더 좋다는 여론이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또 다른 IB 관계자에 따르면, 이 같은 기업가치 산정에는 대주주인 장병규 이사회 의장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게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크래프톤은 14일 현재 장외 주식 거래 플랫폼 증권거래소 비상장에서 55만5000원에 거래되고 있다. 이를 토대로 계산한 시가총액은 24조171억원이다. 또 다른 비상장 주식 거래소 38커뮤니케이션에서도 24조7853억원의 시가총액을 형성하고 있다. 즉, 회사 측에서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진 몸값 25조원은 어느 정도 합리적인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기업가치 25조원이 재무적으로도 합리적인 수준인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회사의 순이익과 적정 밸류에이션(기업 가치 대비 주가 수준)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 금융 투자 업계 일각에서는 25조원이 지나치게 고평가된 가격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통상 공모가는 지배주주 순이익에 동종 업계 평균 주가수익비율(PER)을 곱한 뒤 일정 할인율을 적용해 산정한다. 크래프톤이 기업가치를 25조원으로 평가 받으려면, 지난해 지배주주 순이익 5563억원을 기준으로 PER 45배를 적용해야 한다. 현재 국내 증권사들이 바라보는 엔씨소프트(036570)·펄어비스(263750) 등 국내 게임사들의 적정 PER은 대부분 20~25배 수준이며, 넷마블(251270)이 30배 안팎으로 가장 높다.
또 크래프톤의 올해 실적이 지난해에 비해 다소 악화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올해 지배주주 순이익이 지난해 순이익에 못 미칠 것으로 전망할 수도 있다. 크래프톤의 올해 1분기 지배주주 순이익은 1940억원으로, 전년 동기(2838억원) 대비 32% 줄었다. 크래프톤은 지난해 1분기 2838억원의 지배주주 순이익을 냈지만 2분기부터는 이익이 감소하면서 연간 지배주주 순이익은 5563억원에 그쳤다. 올해도 2분기부터 지배주주 순이익이 1분기보다 감소할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배틀그라운드에 대한 실적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는 점도 크래프톤의 기업가치에 대한 우려를 키운다. 게임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크래프톤의 매출액 가운데 배틀그라운드에서 나오는 매출은 약 80%를 차지한다. 회사에서도 이 같은 한계를 인지하고 최근 이영도 작가의 판타지 장편 소설 '눈물을 마시는 새'와 '피를 마시는 새' 저작권(IP)을 활용해 신작 게임 개발을 추진 중이나, 관련 실적은 상장을 앞둔 현 시점의 기업가치에 반영할 수 없는 상황이다.
◇ "PER 33배 적용해도 25조원 평가 가능"
크래프톤이 25조원의 기업가치를 충분히 인정 받을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1분기 이익이 2분기 이후로도 줄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1분기 실적이 2~4분기까지 이어진다면, 크래프톤의 연간 지배주주 순이익은 7760억원 가량이 된다. 이 경우 PER을 33배만 적용해도 기업가치는 25조원이 된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크래프톤의 올해 1분기 실적이 상대적으로 악화된 것으로 보일 수도 있으나, 이는 지난해 1분기 실적이 일시적으로 지나치게 좋았기 때문에 나타난 착시 효과"라며 "별다른 변수가 없다면, 올해 연간 순이익 7000억원은 무리 없이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PER 33배는 앞서 증시에 입성한 게임 업체들과 비교해도 합리적인 수준이다. 지난해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한 카카오게임즈(293490)는 PER 34.9배를 적용해 공모가를 산정했으며, 코스닥시장 상장사 펄어비스(263750)의 PER은 35.4배였다.
업계 일각에서는 크래프톤이 넷마블의 선례를 따라 PER 대신 주가매출비율(PSR)과 주가를 주당순자산가치로 나눈 값(PBR·주가순자산배율)을 토대로 공모가를 산정할 수 있다는 추측도 나왔다. 현재 크래프톤의 배동근 최고재무책임자(CFO)는 2017년 넷마블이 상장할 당시 공동 주관사 JP모간의 IB 본부장을 맡았던 경력이 있다. 넷마블은 당시 매출액을 반영한 PSR과 자기자본, 무형자산을 반영한 PBR의 산술평균을 낸 뒤 이를 토대로 공모가 밴드를 제시했는데, 그 덕에 PER 51배에 달하는 높은 수준의 기업 가치를 평가 받을 수 있었다.
다만 이렇게 PSR과 PBR을 고려한 기업가치 산정 방법을 크래프톤에 적용하는 것은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게임 업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넷마블은 게임 퍼블리싱(판매)에 주력하는 업체인 반면, 크래프톤은 개발사이기 때문에 영업이익률이 매우 높다"며 "이처럼 이익률이 높은 업체의 경우 매출액을 반영한 PSR보다는 순이익을 반영하는 PER을 적용해야 기업 가치를 더 높게 평가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