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석 같이 믿었는데 배신 당했다. 국제적 사기꾼이다.”
한 달 전 “일론 형(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만 믿고 7000만원을 비트코인에 올인했다”던 A씨는 분노에 차 있었다. 미국 수사당국은 그런 사기꾼을 왜 가만히 놔두는지 모르겠다는 푸념도 서너 번 했다.
A씨가 한 달 만에 태도를 180도 바꾼 이유는 머스크가 올린 트윗 때문이었다. 머스크는 지난 12일(현지 시각) 트위터에 “테슬라는 비트코인을 이용한 차량 구매를 중단(유보)하기로 했다”고 썼다.
그간 비트코인의 열렬한 지지자를 자처했던 머스크가 돌연 폭탄 발언을 하자, 암호화폐의 가격은 일제히 급락했다. 머스크의 트윗이 올라온 직후, 코인마켓캡에서 5만7000달러(약 6460만원)가 넘던 비트코인 가격은 하루도 안 돼 4만9000달러(약 5550만원)까지 떨어졌다. 13일(현지 시각) 장중 한때는 4만8000달러(약 5440만원)대 초반까지 하락하기도 했다.
머스크의 ‘배신’에 급락한 것은 비트코인 뿐이 아니었다. 도지코인은 머스크의 트윗이 올라온 후 0.5달러대 초반에서 0.37달러까지 하락했다. 그가 도지코인의 시세를 이끄는 ‘도지파더(Dodgefather)’를 자처해온 만큼, 암호화폐 투자자들의 충격도 컸다.
암호화폐 투자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던 머스크가 돌연 입장을 바꾼 표면적 이유는 ‘환경 보호’였다. 그는 트윗에서 “우리는 비트코인의 채굴과 거래를 위한 화석 연료 사용의 급격한 증가를 우려한다”고 밝혔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가 연일 경영 화두로 떠오르는 만큼, 이 같은 명분은 얼핏 정당해 보인다. 그러나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지난달 잭 도시 트위터 CEO와 캐시 우드 아크인베스트 CEO가 암호화폐 채굴이 재생 가능한 에너지를 장려한다(incentivizes renewable energy)는 연구 결과를 지지했을 당시, 머스크도 적극적으로 동의했다. 그때는 인지하지 못했던 비트코인 채굴과 환경의 관계를 갑자기 깨달아 생각이 변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케임브리지 얼터너티브 금융센터(Cambridge Center for Alternative Finance)에 따르면, 암호화폐를 채굴하는 데 필요한 전력 중 38%가 석탄을 이용해 만들어진다. 2019년에는 20~80테라와트시(TWh)였던 비트코인 소비 전력은 올해 100TWh를 넘은 상태이며 128TWh까지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
이 때문에 머스크의 입장 변화에는 다른 이유가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코노믹타임스는 비트코인을 통한 테슬라 구매 결제 허용 이후 차 판매량이 신통치 않았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가격 변동 폭이 크고 공급량이 인위적으로 통제되는 비트코인의 특성 상, 투자자들은 이를 이용해 물건을 사기보다는 투기를 위해 비축해두려는 성향이 강하다. 따라서 비트코인을 이용한 테슬라 차량 구매가 부진할 수밖에 없었고, 이에 실망한 머스크가 결정을 철회했다는 것이다.
이코노믹타임스는 그 외에도 머스크가 기관 투자자들을 의식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ESG에 큰 관심을 가진 기관 투자자들이 볼 때, 비트코인을 과도하게 광고하고 지지하는 테슬라는 투자 매력이 떨어질 수 있다. 기관 투자자들이 기업을 외면하기 시작하면 결국 주가가 하락해 머스크의 자산 가치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암호화폐 투자자들을 배신한 머스크의 속내가 무엇인지는 누구도 정확히 알기 어렵다.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알고 싶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큰손’의 한 마디에 늘 주목하고 앞날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것은 개미들에겐 불가피한 일이다.
실제로 암호화폐 시장의 일부 관계자들은 머스크가 올린 트윗의 행간을 읽고 그 안에서 희망적인 메시지를 찾고 있다. 로이터에 따르면, 다수의 암호화폐 전문가들은 테슬라가 이번 결정 이후 비트코인의 채굴을 친환경적으로 만들고자 재생 에너지의 생산을 장려하는 프로젝트에 투자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친환경 에너지를 사용하는 비트코인 채굴자 그룹을 만들 수도 있다고 전문가들은 예상했다.
로이터는 “비트코인을 청정에너지로 채굴하거나 석유 추출 부산물에서 나오는 열을 채굴에 재활용하려는 움직임이 전 세계적으로 활발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