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박현우(33)씨는 최근 주식 투자로 큰 손실을 봤다. 코로나19 진단키트 제조사 씨젠(096530) 주식을 1000만원어치 보유하고 있었는데, 3일 하루 동안 주가가 8% 넘게 하락한 것이다. 이날 국내 주식시장에서는 1년 2개월 만에 공매도가 재개됐다. 씨젠은 하루 만에 290억원어치가 공매도 됐는데, 이는 전체 거래대금의 34%에 달하는 규모다.

이날 공매도 재개의 직격탄을 맞은 종목은 씨젠 뿐이 아니다. 헬릭스미스(084990)카카오게임즈(293490) 등 코스닥 상장사들과 셀트리온(068270), LG디스플레이(034220), 신풍제약(019170) 등 유가증권시장의 대형주들이 공매도 물량을 이기지 못하고 하락했다.

공매도 재개로 인한 증시 하락은 외국인과 기관 등 '큰손'들이 주도했다. 주식 공매도 시장은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외국인과 기관 전용 시장'이라는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전체 공매도 금액에서 개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1% 남짓한 수준에 그친다.

전문가들은 지난해부터 국내 증시 상승을 개인 투자자들이 주도해온 만큼, 공매도 시장에도 개인이 더 많이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 시장 1%만 차지한 개미, 공매도 직격탄 맞을 수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3일 유가증권시장에서 발생한 공매도 거래금액은 총 8140억원으로, 이 중 90.7%를 외국인 투자자들이 차지했다. 기관은 7.7%를, 개인은 1.6%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코스닥시장에서는 하루 동안 2790억원 규모의 공매도가 발생했다. 이 중 외국인은 78%를, 기관은 20.3%를 차지했다. 개인 투자자들의 비중은 1.8%에 불과했다.

그래픽=이민경

거래소 측은 "개인 대주 시스템 개선과 대주 재원 확충 등의 노력을 한 덕에 공매도 금지 전과 비교해 개인 참여 비중이 높아졌다"고 밝혔다. 지난해 공매도 금지 전에는 개인의 일 평균 공매도 거래대금이 77억원이었으며 비중이 1.2%에 불과했지만, 재개 후인 3일에는 개인의 거래대금이 181억원, 비중이 1.7%로 늘었다는 것이다.

금융당국은 이번 재개를 앞두고 개인의 공매도 참여를 활성화하겠다는 취지로 제도를 일부 개편했다. 지난해까지는 개인 투자자들이 6개 증권사에서만 주식을 빌려 공매도를 할 수 있었는데, 현재는 주식을 대여할 수 있는 증권사가 17개로 늘었다. 개인의 대주를 위해 확보된 주식은 총 2조4000억원 규모다.

그러나 1% 남짓한 비중을 놓고 개인의 공매도가 활성화됐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증권 업계 관계자들은 말한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개인의 공매도 금액이 지난해와 비교해 어느 정도 늘어난 건 사실이나, 여전히 전체의 98~99%는 외국인과 기관이 차지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외국인이나 기관 등 큰손들이 특정 종목을 집중적으로 공매도하면, 해당 종목을 보유한 개인 투자자들은 속수무책으로 막대한 손해를 입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3일 공매도 재개로 인한 주가 급락 피해는 개인 투자자들의 점유율이 높은 코스닥시장에 집중됐다. 이날 코스닥시장의 공매도 거래대금은 전체 거래대금의 3.1%를 차지했는데, 그 영향으로 코스닥지수는 전날보다 21.64포인트(2.20%) 하락한 961.81로 마감했다.

상대적으로 유가증권시장의 피해는 덜했다. 공매도 거래대금이 전체의 4.9%에 달했지만, 코스피지수는 전날보다 0.66% 하락하는데 그쳤다. 공매도로 인한 주가 하방 압력이 코스닥시장에 비해 약했던 것이다.

◇ 1주도 안 갖고 공매도만 하는 외국인, 규제할 필요 있어

증시 전문가들은 공매도로 인한 개인 투자자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개인에게도 공평한 투자 기회를 줘야 한다고 말한다.

현행 규정에 따르면 개인과 외국인·기관의 공매도 요건에는 적지 않은 차이가 있다. 대표적인 차이는 대주·대차 기간이다. 개인은 증권사로부터 최대 60일 동안 주식을 빌릴 수 있지만, 외국인과 기관의 주식 대차 기간에는 기한이 없다. 상호 간 협의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기간을 무한정 늘릴 수 있지만, 주식을 빌려준 기관에서 상환을 요구(리콜)하면 이틀 안에 갚아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래픽=이민경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개인 투자자들은 기관과 달리 상환 기간을 무조건 보장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유리하기도 하나, 60일은 너무 짧은 감이 있다"며 "기본으로 180일의 기한을 부여하고 한 차례 연장해 총 360일까지 주식을 빌릴 수 있도록 제도를 개편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개인은 공매도 대주 담보비율에 있어서도 외국인·기관에 비해 불리한 요건을 적용 받고 있다. 담보비율은 부채액을 주식 평가액으로 나눈 값을 의미한다. 만약 공매도에서 약정된 담보비율을 지키지 못할 경우, 보유 주식은 반대매매로 인해 강제 청산될 수 있다. 반대매매는 융자를 받아 매입한 주식의 가격이 담보비율 밑으로 하락하면 증권사가 주식을 임의로 처분하는 것을 뜻한다.

현행 규정에 따라 개인의 공매도 담보비율은 140~150% 수준이며, 외국인과 기관의 담보비율은 105%에 그친다. 한 증시 전문가는 "대주 담보비율이 지나치게 높으면 주가가 크게 하락하지 않아도 반대매매에 노출될 위험이 커진다"며 "개인 투자자 입장에서는 이 같은 위험을 안고 공매도에 투자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외국인·기관의 공매도 비율을 제한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외국인과 기관은 삼성전자 등 기관 비중이 높은 대형주보다는 자신들이 주도권을 잡기 쉬운 코스닥 중소형주에서 공매도를 많이 하는 경향이 있다"며 "1주도 보유하지 않은 종목에서 공매도만 해 주가를 하락시키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안 교수에 따르면 이 같은 폐해는 특히 국내 주식시장에서 크게 나타난다. 인수·합병(M&A)이 활발하지 않아 상장이 거의 유일한 엑시트(투자금 회수) 방법인 국내 증시의 특성 때문에 매년 많은 기업이 코스닥시장에 신규 상장하는데, 이런 기업들의 경우 기관의 의무 보유 물량이 적어 대부분의 물량을 개인이 떠안고 있다. 개인 투자자의 보유 비중이 높다 보니, 코스닥시장은 외국인과 기관의 대규모 공매도에 노출될 위험이 크다.

안 교수는 "만약 특정 종목의 주식 100주를 개인이 80주, 외국인이 10주, 기관이 10주씩 나눠 가졌다면, 이 보유 비율에 비례하도록 공매도 상한선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종목에서 20주의 공매도가 발생한다면, 그 중 외국인은 10%인 2주까지만 공매도할 수 있도록 제한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개인의 건전한 공매도 활성화를 위해서는 충분한 사전 교육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관휘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공매도는 1주만 잘못 해도 전 재산을 날릴 수 있을 만큼 위험한 투자 방법인데, 현재 금융투자협회에서 실시하는 30분짜리 교육만으로는 공매도에 대해 충분한 지식을 전달하기 어렵다"며 "개인 투자자들이 과대 평가된 주식을 찾을 수 있는 안목을 기르도록 제대로 된 사전 교육을 해야만 공매도 시장도 건전하게 커 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