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 넘게 금지돼왔던 주식 공매도가 3일 재개됐다. 공매도는 증권사로부터 주식을 빌려서 매도한 다음 저가에 사서 갚는 거래 기법이다. 주가 하락이 예상될 때 공매도 기법을 활용하면 그만큼 차익을 거둘 수 있다.
금융위원회는 이날부터 KOSPI200, KOSDAQ150지수 편입 종목들을 공매도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공매도는 지난해 3월 14일 코로나19 여파로 인한 증시 급락을 막기 위해 금지됐는데, 14개월 만에 빗장이 풀렸다.
앞서 증권 전문가들은 공매도 재개가 증시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할 것이라면서도, 최근 들어 대차잔고(투자자들이 주식을 빌린 후 갚지 않은 물량)가 급증했거나 밸류에이션(기업 가치 대비 주가 수준)이 지나치게 높은 종목은 일시적으로 주가가 하락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 대차잔고 급증한 30개 종목, 2개 제외하고 모두 하락
대차잔고는 향후 공매도가 얼마나 이뤄질지 추정할 수 있는 선행지표 역할을 한다. 국내 금융법상 공매도를 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대차거래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미리 빌려둔 주식의 잔고가 갑자기 큰 폭으로 증가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매물이 공매도를 통해 시장에 출회될 가능성이 있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3일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기준으로 한 달간 코스피200 편입 종목 중 대차잔고비율(대차잔액을 시가총액으로 나눈 값)이 가장 큰 폭으로 상승한 종목은 CJ CGV(079160)였다. 3월 31일까지만 해도 2.25%에 그쳤던 대차잔고비율이 한 달만에 10.56%까지 상승했다.
후성(093370)과 보령제약, LG이노텍(011070), GS건설(006360), 오뚜기(007310)도 최근 들어 대차잔고비율이 많이 오른 종목들로 꼽힌다.
코스피200 편입 종목 중 대차잔고가 가장 많이 증가한 종목 15개의 주가 흐름을 살펴본 결과, 호텔신라(008770)와 HDC(012630)를 제외한 나머지 13개 종목은 모두 하락 마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보령제약과 신풍제약(019170)은 12% 넘게 떨어졌다. 이 중 신풍제약의 경우 공매도 거래량이 전체 거래량의 13%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두산중공업과 일양약품(007570) 주가도 각각 8%, 6% 이상 하락했다. 이날 하루 두산중공업의 공매도 거래량은 전체 거래량의 12%에 달했다. 일양약품의 경우 공매도 비중이 8%를 넘었다.
코스닥시장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나타났다. 코스닥150 편입 종목 중 대차잔고비율의 상승폭이 가장 컸던 15개사 주가가 일제히 하락 마감했다. 특히 에이스테크(088800)는 12.5% 하락했으며, 헬릭스미스(084990)는 10% 넘게 떨어졌다. 이 중 헬릭스미스는 공매도 비중이 15.3%에 달했다.
그 외에 씨젠(096530)과 엘앤에프(066970), 에이치엘비생명과학 등이 하락 마감했다. 씨젠의 공매도 비중은 35%에 달했다.
◇ 몸값 비싼 코스닥 기업 대부분 하락… 성장주 약세
밸류에이션이 지나치게 높은 고평가 성장주의 경우, 코스피200보다 코스닥150에 편입된 종목들이 더 많이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코스피200 구성 종목 중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이 높은 종목 10개의 평균 주가 등락률은 -1.23%에 그쳤다. 이날 코스피200지수의 등락률은 -0.47%였다. 10개 종목 중 호텔신라(008770)와 현대미포조선, 카카오(035720)는 상승 마감했다.
반면 코스닥150 편입 종목 가운데 밸류에이션이 가장 높은 10개 종목은 에스티팜(237690)을 제외하고 일제히 하락했다. 이들 종목의 평균 주가 등락률은 -3.74%에 달했다.
특히 엘앤에프와 천보(278280)가 6% 넘게 하락했다. 셀트리온헬스케어와 카카오게임즈(293490) 같은 대형주들도 4~5%대 하락률을 기록했다. 카카오게임즈는 전체 거래량 중 공매도 거래량이 19%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정빈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과거 2009년, 2011년 공매도 제한 조치가 해제됐을 때도 성장주가 가치주에 비해 주가 흐름이 부진했었다"며 "이번에도 그간 주가가 많이 올랐던 종목들이 공매도의 타깃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PER이 10배를 넘는 중소형주들의 주가는 20~30%, 대형주들의 주가는 10~20% 하락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 연구원은 "다만 현재 장세에서는 실적 모멘텀(동력)이 워낙 강하게 작용하고 있으며 개인 투자자들의 수요가 탄탄하다"며 "공매도로 인한 증시 하락이 오래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