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기업공개(IPO)를 추진 중인 기업들의 몸값이 수십조원에 육박한다는 소식이 잇달아 전해지며, 이를 둘러싼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일부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들은 이들 비상장사의 기업가치가 지나치게 부풀려졌다는 회의론을 내놓고 있다.

비상장사 몸값 상승의 이면에는 복합적인 원인이 있다. 벤처 투자가 급증한 상황에서 기업의 기대치는 점점 높아지고 있으며, 상장 주관사는 비상장사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더 높은 기업가치를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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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카오페이 16조, 야놀자 20조… 고평가 논란

최근 ‘몸값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기업은 카카오(035720)의 금융 자회사 카카오페이다. 카카오페이는 26일 한국거래소 유가증권시장에 상장 예비심사를 청구했는데, 이 과정에서 희망 공모가 범위(밴드)가 실수로 공개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이날 한국거래소 공시채널(KIND)에 공개된 공모 개요에 따르면, 카카오페이의 희망 공모가는 7만3700~9만6300원이었다. 여기에 상장 예정 주식 수인 1억3336만7125주를 곱하면 시가총액은 9조8292억~12조8433억원이 된다. 다만 공모가가 대개 기업가치보다 20~40% 할인된 가격으로 산정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카카오페이와 상장주관사인 삼성증권이 생각하는 기업가치는 최소 16조원에 달한다고 볼 수 있다.

카카오페이의 시가총액이 16조원으로 산정된 데 대해, 증권 업계에서는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반응이 나온다. 현재 주요 증권사들이 추정하는 카카오페이의 상장 후 시가총액은 10조원 정도다. 다만 이베스트투자증권은 올해 거래액 예상치인 100조원에 멀티플(밸류에이션 배수) 0.18배를 적용해 기업가치를 네이버페이(13조3000억원)와 카카오뱅크(14조원)보다도 훨씬 높은 18조원으로 추산했지만, 이는 이례적인 전망치다.

카카오페이의 기업가치를 8조원대로 산정한 증권사도 있다. NH투자증권은 경쟁사인 네이버페이, 토스의 자산총액과 기업가치를 참고해 카카오페이의 시가총액을 8조7000억원으로 전망했다.

기업가치의 고평가 논쟁이 있는 회사는 카카오페이 뿐이 아니다. 올해 2분기 중 IPO 절차에 착수할 숙박 플랫폼 업체 야놀자는 상장 후 시가총액이 13조~14조원에 달할 것으로 기대 중이다. 국내 증시가 아닌 미국에 상장한다면 기업가치는 그보다 높은 20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희망찬 예측도 나온다. 다만, 회사 측은 이 같은 전망치가 “시장의 예측”이라며 분명히 선을 그었다.

야놀자 측에서 설명하는 기업가치 산정 기준은 미국 숙박 공유 업체 에어비앤비의 매출액과 시가총액이다. 에어비앤비가 지난해 매출액 3조원을 기록했으며 기업가치가 130조~140조원 수준이기 때문에, 연 매출이 3000억원인 야놀자에 같은 주가매출비율(PSR)을 적용하면 시가총액이 13조~14조원에 육박한다는 것이다.

한 벤처캐피털(VC) 임원은 이 같은 기업가치 산정 방식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그는 “야놀자가 지난해 영업이익 161억원을 달성하며 흑자 전환했다고는 하지만, 이는 연결 기준 영업이익이 아니라 자회사들을 제외한 모회사만의 별도 실적”이라며 “적자 기업들을 자회사로 두고 있는 만큼, 자회사들의 실적도 꼼꼼히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온라인 게임 ‘배틀그라운드’로 유명한 크래프톤의 경우 기업가치를 30조원으로 보는 시각도 있으나, 금융투자 업계에서 바라보는 시가총액은 최대 20조원 수준이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지난해 크래프톤의 영업이익이 7000억원, 순이익이 5500억원을 기록한 것을 토대로 멀티플을 20~30배 적용해, 기업가치를 17조~20조원으로 전망했다.

이 애널리스트는 “크래프톤의 시가총액이 30조원이 되려면 영업이익에 멀티플 50배를 적용해야 하는데, 엔씨소프트(036570)펄어비스(263750)의 멀티플이 20배에 불과하며 중국 텐센트도 40배에 못 미치는 수준”이라며 “멀티플을 50배나 적용 받을 수 있는 회사는 ‘세계인의 민속놀이' 수준으로 인기 있는 리그오브레전드(LOL•롤) 개발사 라이엇게임즈 뿐”이라고 말했다. 즉, 크래프톤의 기업가치가 30조원이 된다는 것은 비현실적인 일이라는 얘기다.

◇ 역대급 ‘돈 잔치'에 투자금 넘쳐나… 쏠림 현상 심화

비상장사들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솟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첫번째 원인은 유동성 확대에서 찾을 수 있다. 저금리 기조로 인해 벤처 투자 시장에 자금이 대거 풀리자, 기업들의 가치가 대폭 상승한 것이다.

27일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국내 벤처기업 및 스타트업이 유치한 투자금은 총 1조2455억원에 달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1.1% 늘어난 금액이다. 벤처 펀드의 조성액 역시 큰 폭으로 늘었다. 전년 동기 대비 186.7% 증가한 1조4561억원을 기록했다.

벤처펀드 결성액은 지난해 초부터 큰 폭으로 증가해왔다. 1분기와 2분기에 각각 5077억원과 6778억원을, 3분기에는 1조6875억원을 기록했다. 4분기에는 3조6946억원을 돌파했다. 지난 한 해 동안 결성된 펀드 총액은 6조5676억원으로, 전년도보다 54.8%나 증가했다.

[1분기 벤처투자와 펀드결성 모두 1兆 넘어, ‘역대 최대’]

이처럼 벤처 투자 시장에 워낙 많은 자금이 풀리다보니 펀드의 규모도 커졌다. VC 심사역들은 “과거에는 조성액이 1000억원을 넘는 펀드가 별로 없었는데, 이제는 3000억원 정도는 돼야 ‘큰 펀드'라고 칭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는 4669억원의 펀드를, LB인베스트먼트는 3106억원의 펀드를 조성했다. 한 달 간 조성된 벤처 펀드 중 결성액이 1000억원을 넘는 펀드가 총 8개에 달했다.

펀드의 규모가 확대되다 보면 각 벤처기업에 투입되는 자금의 액수도 커질 수밖에 없다. 투자 심사 인력이 한정돼 있는 상황에서 피투자사의 수를 한없이 늘리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VC 관계자는 “너무 많은 기업에 투자를 하다보면 각 건에 대한 관리가 제대로 안 되기 때문에, 투자 대상 기업을 늘리기보다는 하나의 기업에 투입하는 자금을 늘리는 편이 낫다”고 말했다. 그는 “1000억원 규모의 펀드에서 투자를 집행할 경우, 1개 벤처기업 당 적어도 30억원 이상은 투자하게 된다”고 말했다.

VC들이 이러한 방식으로 투자를 하다보면, 일부 벤처·스타트업의 몸집이 지나치게 커지는 결과를 낳기 쉽다. 한 VC 대표는 “요즘은 특정 시장에서 확고하게 1위를 하는 업체에만 투자금이 과도하게 쏠리는 경향이 있다”며 “투자가 1위 기업들에 편중되고, 해당 기업들의 몸값은 점점 더 높아지는 현상이 심화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벤처와 스타트업이 지나치게 높은 기업가치를 희망해도 VC 입장에서는 투자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성공적인 엑시트(투자금 회수) 사례가 잇달아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쿠팡은 지난달 시가총액 100조원에 미 증시에 입성했고, 영상 채팅 애플리케이션 ‘아자르'를 만든 하이퍼커넥트는 2조원의 몸값을 인정받고 ‘틴더’ 개발사 매치그룹에 인수됐다. 의류 상거래 플랫폼 지그재그는 이달 초 1조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으며 카카오(035720)에 인수됐다. 벤처 투자 업계에 따르면, 영업손실이 200억원에 달하는 이 회사는 카카오로부터 집요하고 끈질긴 인수 제의를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범석 쿠팡 이사회 의장이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 앞에서 상장을 앞두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조선DB

◇ “비상장사 눈 너무 높아”... 회사 눈치 탓에 몸값 높게 책정

벤처와 스타트업의 기업가치 급등에는 증권사들의 상장 주관 계약 경쟁도 한몫했다.

한 증권사 기업공개(IPO) 담당 임원은 “비상장사들이 지나치게 높은 몸값을 기대하고 있기 때문에, 웬만큼 높은 공모가를 제시하지 않으면 상장 주관 계약을 따내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증권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해 말 증권사들이 야놀자 측에 제시했던 기업가치 중 가장 낮은 금액이 5조원이었다. 당시 금융투자업계에서 추산했던 야놀자의 시가총액은 1조~2조원대에 불과했다.

투자 업계에서는 일부 비상장사들의 몸값에 ‘PDR’이 적용됐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D는 ‘Dream’에서 따온 앞 글자다. ‘주가수익비율(PER)’이 아닌 그들의 ‘꿈’을 반영해 계산한, 터무니 없이 높은 가격이라는 얘기다.

한 사모펀드(PEF) 대표는 “기업 입장에서는 당연히 더 높은 몸값을 인정받고 싶겠지만, 기업 가치가 높은 것이 꼭 좋은 것은 아니다”라며 “지나치게 높은 가격을 제시할 경우 공모 시장에서 투자자들에게 외면 받거나 상장 후 주가가 크게 하락할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