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5년 12월 10일 17시 26분 조선비즈 머니무브(MM) 사이트에 표출됐습니다.

이지스자산운용 매각 우선협상대상자(우협)로 중국계 힐하우스인베스트먼트가 선정된 가운데, 힐하우스와 경쟁했던 흥국생명이 공정성을 문제삼으며 법적 대응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힐하우스와 매각 주간사 모두 입찰 과정을 공정하게 진행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양측의 대립 구도가 심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관건은 매각 주간사들이 흥국생명의 주장대로 프로그레시브 딜(경쟁입찰)을 했느냐다. 흥국생명은 주간사들이 당초 약속과 달리 프로그레시브 딜로 전환해 힐하우스가 인수가를 상향 조정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상황이다. 업계 일각에서는 뚜렷한 이유 없이 우선협상대상자 선정까지 한달 가까이 걸린 점을 봤을 때, 흥국생명의 주장처럼 프로그레시브 딜이 전개되지 않았겠느냐는 관측이 조심스레 나오고 있다.

이지스자산운용

10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흥국생명은 이지스자산운용 매각 주간사인 모건스탠리·골드만삭스, 매각 주체인 손화자씨 등을 상대로 법적 대응을 준비 중이다. 우선 입찰 절차의 불공정성과 비밀유지 의무 위반을 이유로 계약협상 금지 가처분을 신청해 급한 불부터 끌 가능성이 큰데, 이런 경우에 가처분을 인용한 판례가 별로 없었던 만큼 민·형사 고소까지 함께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흥국생명은 모건스탠리와 골드만삭스가 자사를 기만하고 힐하우스에 유리한 판을 깔아줬다고 주장한다.

앞서 지난 8월 이지스자산운용 매각 예비입찰에서 흥국생명은 8000억원대 후반, 한화생명과 힐하우스는 9000억~1조원을 적어낸 것으로 알려졌다. 정확한 가격을 제시한 게 아니라 범위로 제시했다고 한다.

이후 11월 본입찰에서는 흥국생명이 가장 높은 가격을 제시했다는 게 흥국생명 측 주장이다. 흥국생명은 애초에 1조500억원의 인수가를 적어냈다. 이는 '프로그레시브 딜로 전환하지 않겠다'는 모건스탠리와 골드만삭스의 말을 믿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프로그레시브 딜로 전환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처음부터 높은 가격을 적어내지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한화생명과 힐하우스는 본입찰에서도 예비입찰 때처럼 9000억원대의 가격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시장에서는 최고가를 제시한 흥국생명이 우협 자격을 따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매각 주간사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27일이 경과되도록 우협을 선정하지 않고 미뤘으며, 그 사이에 힐하우스의 입찰가가 1조1000억원으로 올라갔다는 게 흥국생명의 주장이다. 즉, 주간사가 매각가를 500억원 높이기 위해 말을 바꿔 뒤늦게 프로그레시브 딜로 전환했다는 것이다.

IB 업계 관계자는 "주간사가 프로그레시브 딜을 하지 않았다면, 우협을 선정하는데 한 달이나 질질 끌 이유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이번 딜에 정통한 또 다른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주간사는 힐하우스뿐 아니라 흥국생명과 한화생명 쪽에도 가격을 더 올리지 않겠냐는 제안을 해왔다고 한다. 이 말이 맞는다면, 주간사는 한 달 동안 세 후보 사이를 오가며 인수가 상향 조정을 유도한 셈이다.

흥국생명은 그 외에도 이지스자산운용의 매도자 측이 애초에 힐하우스를 우협으로 내정해 놓고 다른 후보들을 들러리 세웠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주주 손화자씨의 딸인 김애미 투썸플레이스 사외이사가 직접 힐하우스를 후보로 데려왔다는 것이다. 김 사외이사는 미국 와튼스쿨에서 MBA를 취득하고 2001년부터 맥킨지앤컴퍼니에서 근무하다 올해 초 퇴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힐하우스가 사모펀드라는 점에서 이지스자산운용 2대주주인 조갑주 단장과 이해 관계가 맞았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IB 업계 관계자는 "힐하우스는 인수한 회사의 경영에 크게 관여하지 않고 기존 인력에게 맡기는 스타일"이라며 "조 단장은 이번 매각 과정에서 자회사 3곳을 팔지 않고 가져가려 하는 등 경영에 미련을 가지는 모습을 보였는데, 이런 조 단장의 성향 상 힐하우스가 '기존 인력이 그대로 경영하라'고 했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매각 주간사인 모건스탠리와 골드만삭스는 "프로그레시브 딜로 전환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힐하우스가 뒤늦게 인수가를 높여 쓴 게 아니라 애초에 1조1000억원을 제시했다는 주장이다.

힐하우스도 입장문을 내고 이 같은 의혹에 대해 간접적으로 부인했다. 힐하우스 측은 "모든 절차에서 매각 주간사의 기준과 규정을 철저히 준수했다"며 "향후 규제당국과의 협력을 통해 투명하고 책임있는 방식으로 거래를 진행할 방침"이라고 했다. 다만 힐하우스는 흥국생명이 주장하는 프로그레시브 딜 여부나 입찰가 유출 의혹 등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입장을 내지 않았다.

한편 흥국생명의 법적 대응과 별개로 딜이 난항을 겪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지스자산운용은 금융회사다 보니 금융위원회로부터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받아야 한다. 중국계인 힐하우스로서는 대주주 심사 통과를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국민연금이 최근 이지스자산운용의 펀드 보고서가 힐하우스를 비롯한 인수 후보자 측에 제공된 데 대해 강력하게 항의했다는 점도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관련 기사☞[단독] 국민연금, 이지스운용 출자금 뺄 가능성 거론... 매각 제동 걸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