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가 FA컵 정상에 서자, 전설적인 감독인 알렉스 퍼거슨(83) 경의 이름이 회자되고 있다.

에릭 텐 하흐 감독이 이끄는 맨유는 25일(한국시간) 영국 런던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맨체스터 시티(맨시티)와 2023-2024시즌 잉글랜드 FA컵 결승전에서 2-1로 승리,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이로써 시즌을 망쳤던 맨유는 FA컵 우승팀이 가질 수 있는 유럽축구연맹(UEFA) 유로파리그 출전권까지 거머쥐게 됐다. 경질 루머에 시달리고 있는 에릭 텐 하흐 감독에는 더없이 귀중한 타이틀이었다.

맨유는 이번 시즌을 8위로 마감했다. 프리미어리그 출범 이후 구단 사상 최악의 성적이었다. 부상이 겹치면서 수비 조직이 무너져 꾸준한 경기력을 이어가지 못했다. 텐 하흐 감독의 용병술과 선수단 장악력에 대한 문제점도 함께 불거졌다.

이 때문에 텐 하흐 감독 경질 루머는 끊이지 않았다. 토마스 프랑크 브렌트포드 감독, 토마스 투헬 바이에른 뮌헨 감독,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첼시 감독, 가레스 사우스게이트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 로베르토 데 제르비 브라이튼 감독, 키어런 맥케나 입스위치 타운 감독 등이 맨유가 접촉한 감독 후보들이었다.

텐 하흐 감독은 이번 FA컵 우승으로 지난 시즌 카라바오컵(EFL컵) 우승에 이어 맨유서 두 번째 트로피를 품었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 체제 이후 2년 연속 타이틀을 거머쥔 것은 텐 하흐 감독이 처음.

퍼거슨 시대를 재건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맨유다. 이번 FA컵 우승은 그 신호탄을 올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할 수 있다. 어쩌면 텐 하흐 감독은 시즌 마지막 도박에 성공한 셈이 될 수 있다.

최근까지 텐 하흐 감독의 경질을 점쳤던 현지 언론들도 구단주인 랫클리프 경과 이네오스 스포츠 디렉터 데이브 브레일스포드 경 등이 포함된 고위 인사들이 다음 주 회의를 갖고 텐 하흐 감독의 운명을 결정할 예정이라고 한 발 물러났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것은 퍼거슨 경 역시 맨유 시절 FA컵 우승을 통해 경질 위기를 모면했기 때문이다. 퍼거슨 경은 1986년 11월 맨유 지휘봉을 잡았다.

퍼거슨 경은 애버딘(스코틀랜드)에서 3차례 리그 우승, 4차례 컵 대회 우승, 1차례 리그컵 우승, 유러피언컵 우승, 유로피언 슈퍼컵 우승까지 휩쓸었다.

45세 나이로 맨유를 맡은 퍼거슨 경은 맨유의 리빌딩 중책을 맡았다. 22개 팀 중 21위로 바닥까지 떨어졌던 팀을 일단 11위로 끌어올렸다. 다음 시즌 맨유를 리그 2위까지 이끄는 등 지도력을 인정받은 퍼거슨 경이었다.

하지만 퍼거슨 경은 타이틀이 없었다. 맨유 수뇌부의 압박이 가해져 1990년 FA컵 결승 때 극에 달했다. 크리스탈 팰리스와 결승전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경질 가능성이 높았던 퍼거슨 경이었다.

결국 퍼거슨 경의 맨유는 크리스탈 팰리스와 3-3으로 비긴 뒤 가진 재경기에서 1-0으로 승리했다. 맨유 풀타임 3번째 시즌 만에 거둔 첫 타이틀이었다. 맷 버스비 시절의 영광을 되찾기를 원한 첫걸음을 뗀 퍼거슨 경이었다.

이후 퍼거슨 경은 승승장구했다. 맨유에서 21번의 프리미어리그 시즌을 보내며 13차례나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2번의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에, FA컵 타이틀도 5개를 따냈다.

이날 경기장에는 퍼거슨 경도 모습을 드러내 맨유의 우승을 뿌듯하게 지켜봤다. 텐 하흐 감독과 비슷한 처지에서 치른 FA컵이 겹쳐 보였을 수도 있다.

마친 퍼거슨 경이 경기 직후 믹스트존 앞에서 선수단을 기다리던 기자들 앞을 지나갔다. 영국 '데일리 메일'에 따르면 기자들이 퍼거슨 경을 향해 맨유의 FA컵 우승 관련 질문을 던진 모양이다.

그러자 퍼거슨 경은 "나는 은퇴했다. 그걸 몰랐던 건가?"라고 되물으며 가던 길을 재촉했다. 평소 말이 많은 퍼거슨 경이지만 우승의 스포트라이트를 자신이 받지 않기 위함이었다. 또 텐 하흐 감독과 관련된 곤란한 질문에서 벗어나기 위함이기도 했다.

한편 맨유는 이번 우승으로 FA컵 통산 13번째 정상을 차지했다. 루이 반 할 감독 시절이던 지난 2015-2016시즌 이후 8년 만에 가진 FA컵이었다.

FA컵 최다 우승컵은 통산 14개를 품은 라이벌 아스날이 보유하고 있다. 마침 아스날은 맨유 우승 직후 공식 소셜 미디어(SNS)에 "우리는 FA컵에서 14번이나 우승 트로피를 쟁취해 그 어떤 팀과도 비교할 수 없는 유산을 보유했다"고 자랑하기도 했다.

퍼거슨 경도 FA컵 우승컵에서만큼은 라이벌 아르연 벵거(75) 감독보다 못했다. 벵거 감독의 아스날은 7차례나 FA컵 정상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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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강필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