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삼진 2개가 아니었다. 아직 프로 데뷔도 안 한 19세 루키가 직구 회전수에서 메이저리그 명문구단의 파이어볼러 3선발을 압도하며 한국, 미국, 일본 야구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김택연은 지난 18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MLB 월드투어 서울시리즈 2024 LA 다저스와의 스페셜게임에 구원 등판해 ⅔이닝 2탈삼진 무실점 완벽투를 펼치며 서울시리즈 팀 코리아의 최고 히트상품으로 도약했다.

김택연은 2-4로 끌려가던 6회말 오원석에 이어 팀의 4번째 투수로 마운드에 올랐다. 2024년 신인드래프트에서 전체 2순위로 두산에 지명돼 첫 시즌을 준비 중인 특급 루키의 성인 국가대표팀 데뷔전이었다.

전체 2순위로 뽑힌 신인답게 투구는 담대하고 대범했다. 고척돔에 수많은 관중이 운집한 가운데 메이저리그에서도 수준급 타자로 평가받는 테오스카 에르난데스와 제임스 아웃맨을 연달아 삼진으로 돌려보내는 위력투를 선보였다.

김택연은 에르난데스를 만나 직구와 커브로 1B-2S 유리한 카운트를 선점한 뒤 5구째 93.7마일(150km) 포심패스트볼을 한가운데에 뿌려 헛스윙을 유도했다. 야구팬들의 탄성이 절로 나온 삼진이었다.

후속 아웃맨 상대로는 잠시 제구가 흔들리며 볼 3개를 연달아 던진 김택연. 그러나 빠르게 풀카운트를 만든 뒤 6구째 92.5마일(148km) 포심패스트볼을 다시 가운데에 과감히 뿌려 헛스윙 삼진을 기록했다.

김택연의 역할은 여기까지였다. 2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전체 1순위 신인 황준서와 교체됐고, 관중들의 열렬한 환호성과 함께 더그아웃으로 퇴장했다. 새로운 국가대표 유망주의 탄생을 알린 순간이었다.

김택연은 총 11개의 공을 던졌는데 그 가운데 스트라이크가 7개에 달했고, 커브 1개를 제외하고 10개를 모두 포심패스트볼로 던졌다. 아직 데뷔도 안 한 터라 메이저리거들을 상대로 험난한 승부가 예상됐지만 지난해 아마추어 무대, 청소년 대표팀, KBO리그 시범경기에서 그랬듯 씩씩하고 과감하게 자신의 공을 뿌리며 대형 투수의 탄생을 예감케 했다.

주목할 점은 김택연의 이날 RPM(회전수)이었다. 직구 분당 최고 회전수가 무려 2483이 찍혔는데 이는 다저스와 팀 코리아 투수들을 통틀어 가장 높은 수치였다. 다저스 선발로 나선 161km 파이어볼러 바비 밀러보다도 높았다.

김택연은 경기 후 “태극마크를 달고 처음 하는 경기여서 피해 가는 승부를 하기보다 내 공을 던지고 후회 없이 내려오자는 생각을 가졌다. 그런데 그렇게 하고 내려올 수 있어서 만족스럽다”라며 “초구를 던진 뒤 긴장이 풀려서 내 공을 던질 수 있었다. 타자를 보기보다 내 공을 던지려고 했다”라고 호투 비결을 전했다.

메이저리그 타자들을 삼진 처리한 소감도 들을 수 있었다. 김택연은 “‘칠 테면 쳐봐라’라는 생각보다 내 공을 테스트한다는 생각으로 던졌다. 나에 대한 정보고 없어서 유리한 상태로 승부해 헛스윙이 많이 나온 거 같다. 팀 내 형들은 물론이고 메이저리그 선수들과 비교해서도 이날 회전수가 높았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다”라고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이날 김택연은 양 팀 사령탑에게 모두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류중일 대표팀 감독은 “신인 (김)택연이, (황)준서가 오늘 던지는 걸 보니 어린 선수가 그 많은 관중들과 메이저리그 선수 상대로 자기 공을 던지는 게 기특하다. 어떤 선수가 될지 굉장히 궁금하고, 잘했다”라고 칭찬했다.

적장 데이브 로버츠 다저스 감독 또한 인상적이었던 한국 선수를 1명 꼽아달라는 질문에 “우완투수 1명이 있었는데 아웃맨이 말하기를 정말 멋진 피칭을 했다고 하더라. 스트라이크존 상위 부분에서 강속구를 던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팔을 정말 잘 쓰는 선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름은 정확히 기억이 안 난다”라고 김택연을 언급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고척돔으로 취재를 온 MLB네트워크의 존 모로시 기자는 자신의 SNS에 “우완투수 김택연의 이름을 기억하라. 18살인 김택연은 다저스의 에르난데스, 아웃맨을 만나 삼진을 잡아냈다”라며 “위력적인 패스트볼을 뽐낸 김택연은 향후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 몇 년 동안 지켜볼 만한 선발투수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인천고를 나와 2024년 KBO 신인드래프트에서 두산 1라운드 2순위로 지명된 김택연은 최고 150km 초반대의 포심패스트볼을 구사하는 우완 파이어볼러다. 구속과 함께 안정적인 제구력까지 갖췄다는 평가. 지난해 아마추어 무대에서 13경기 64⅓이닝 동안 7승 1패 평균자책점 1.13 97탈삼진 WHIP 0.66의 압도적 투구를 선보였고, U-18 야구 월드컵에서 8일 동안 5연투 247구를 던지는 투혼을 펼치며 한국 청소년대표팀의 동메달을 견인했다.

투혼보다 혹사 논란으로 주목받은 김택연은 두산 구단의 철저한 관리 속 팔꿈치 및 어깨 회복에 집중했다. 다행히 빠르게 상태가 회복됐고, 동기 전다민(외야수, 6라운드 지명)과 함께 호주 시드니 1군 스프링캠프로 향해 데뷔 시즌을 준비했다. 연습경기 위주로 진행된 일본 미야자키 2차 스프링캠프에서 남다른 구위와 배짱을 선보인 그는 2024년 스프링캠프 MVP에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김택연은 신인답지 않은 구위를 앞세워 현재 정철원과 마무리 보직을 두고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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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고척, 이후광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