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가 세계 최초로 1군에 도입한 자동 투구 판정 시스템(Automatic Ball-Strike System·ABS)이 시범경기부터 놀라운‘정확도를 뽐내고 있다. 오랜 기간 이어진 볼 판정 논란도 사라질 듯하다.

지난 10일 개막한 2024시즌 KBO리그 시범경기는 12일까지 총 19경기를 치렀고, ABS 투구 추적 성공률이 99.9%에 달한 것으로 나왔다. 기계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는 수치로 선수들과 팬들이 꿈꿔온 공정하고 정확한 볼 판정이 이뤄지고 있다.

KBO에 따르면 투구 추적이 실패한 사례는 중계 와이어 카메라가 이동 중 추적 범위를 침범해 실패한 경우가 있었다. 시즌 중 급격한 날씨 변화 또는 이물질 난입 등 기타 불가항력적 사유로 100% 트래킹 추적 성공이 어려운 점을 대비해 KBO는 추적 실패시 대응 매뉴얼을 보다 철저히 준비, 경기 진행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KBO가 세계 최초로 도입한 ABS는 1루와 3루, 외야 중앙 쪽에 설치된 3대의 카메라가 위치 정보를 바탕으로 타자별 스트라이크존을 설정한다. 카메라가 투수 공의 궤적을 추적해 실시간으로 위치값을 전송하면 기계가 볼 판정을 하고, 그 결과를 주심이 이어폰으로 전달받은 뒤 수신호와 콜로 알리는 방식이다.

KBO는 2020년 8월부터 퓨처스리그에서 ABS를 운영했고, 지난해까지 4년간 거듭된 테스트를 통해 시스템 고도화를 이뤘다. 도입 초반에만 해도 볼 판정 결과가 심판에게 전달되는 데 시간이 꽤 걸렸지만 이제는 실시간으로 딜레이 없이 이뤄지고 있고, 장비 문제로 인한 기계적 오류도 거의 줄었다.

물론 처음 도입한 제도라 아직은 새롭고 낯설며 선수들도 적응 시간이 필요하다. 예년 같았으면 볼로 판정됐을 높은 공들이 스트라이크가 되면서 타자들이 고개를 갸웃하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기존 심판들이 잘 잡아주지 않던 스트라이크존 꼭짓점에 걸치는 공들이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불만의 목소리도 없지 않다. 데뷔 21년차 베테랑 포수 강민호(삼성)는 “피치 클락은 개인적으로 크게 거부감이 없는데 ABS는 키가 큰 선수들이 확실히 불리한 것 같다. 키가 클수록 높은 쪽 스트라이크존이 더 올라갔다. 키가 크다고 불리하게 작용하는 건 조금 의하하다”며 “선수들의 키에 따라 존이 커졌다 작아지는 게 투수 입장에선 쉽지 않을 것 같다. 포수 입장에서도 혼동이 오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물론 스트라이크존은 타자 키에 따라 바뀌는 게 기본이다. 야구규칙상 타자 어깨 윗부분과 유니폼 바지 벨트선까지의 중간 지점이 상한선이고, 무릎 아랫부분이 하한선으로 타자 신장에 따라 존의 높낮이가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동안 사람 심판의 존은 키에 따라 일률적으로 적용하지 않았다. 사람의 눈과 감으로 오차 없이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고, 타자 스탠스에 따라 전체적인 기준선이 있었다.

그러나 ABS에선 상단 기준은 타자 신장의 56.35%, 하단 기준은 타자 신장의 27.64%로 칼같이 적용된다. 중간면과 끝면 기준을 모두 통과해야 스트라이크로 선언된다. 타자마다 몸을 웅크리거나 서서 치는 등 폼이 다 다른데 일률적으로 키에 맞춰 ABS 존을 적용하다 보니 자세를 낮춰서 치는 키 큰 타자들에게 더 존이 커 보이는 상황이다.

그동안 높은 코스에 불리한 판정을 받은 단신 타자들이 조금 더 유리한 환경이 됨에 따라 키 큰 선수들이 역차별을 받는 듯한 착시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결국 적응 시간이 필요한 부분이다. 또 다른 베테랑 포수 이재원(한화)은 “타자 키에 따라 스트라이크존이 달라진다. 팀마다 다들 키가 다르기 때문에 그런 부분을 빨리 파악하는 게 중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급격한 변화에 따른 준비 부족을 선수들은 가장 우려하고 있다. 3000타석 이상 소화한 타자 중 통산 타율 역대 6위(.320)에 빛나는 박민우(NC)는 “공정하게 하기 위한 것은 찬성한다. 하지만 ABS에 대해 이론만 알고 캠프 때도 경험해보지 못했다. 시범경기 10경기만으로는 부족하다. 선수들에게 주어진 시간이 너무 짧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어 그는 “바깥쪽으로 휘어져 나갔다가 들어오는 변화구가 홈플레이트 끝에 걸치게 될 경우 이걸 스트라이크로 준다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된다. 휘어져 나갔다 들어온 공을 건드리려면 포수 미트를 보고 칠 수밖에 없다. 어떻게 치라는 말인가”라며 백도어성 변화구에 대처하기가 어렵고, ABS 수정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의견을 냈다.

ABS 좌우 존은 홈플레이트 크기(43.18cm)에서 좌우로 2cm 확대 적용한 총 47.18cm로 중간면 통과가 기준이다. 타자로선 바깥쪽 공이 멀게 느껴질 수밖에 없고, 불리한 카운트에서 백도어성 변화구가 중간면에 걸치면 대응이 힘들다. 이런 부분에 적응해야 할 시간이 필요한데 시범경기만으로는 너무 짧다는 게 선수들의 호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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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이상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