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침없던 슈퍼루키가 차분해졌다. 야구를 하면서 처음으로 벽에 부딪쳤다는 ‘파이어볼러’ 김서현(19·한화)이 냉정한 자기 객관화 속에 2년차 시즌을 준비하고 있다.

2023년 신인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한화에 입단한 김서현은 슈퍼루키로 큰 관심을 모았다. 1군 데뷔전이었던 지난 4월19일 대전 두산전에서 구원 1이닝 2탈삼진 무실점으로 성공적인 신고식을 치렀다. 트랙맨 기준 최고 160.1km 광속구를 뿌리며 강한 인상을 남겼다. 5월12일 문학 SSG전에선 데뷔 첫 세이브를 거두며 마무리투수 꿈에 한걸음 다가섰다.

그러나 프로 무대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5월 중순부터 제구가 흔들리면서 난조를 보인 김서현은 조정을 위해 6월8일 2군으로 내려갓다. 퓨처스리그에서 선발 수업을 거쳐 8월10일 1군 복귀했지만 2경기 만에 다시 2군행 통보를 받았다. 1군 선발 데뷔전이었던 8월17일 창원 NC전에서 2이닝 3피안타 4볼넷 1탈삼진 3실점으로 조기 강판된 뒤 퓨처스 팀에서 시즌을 마무리했다.

1군 데뷔 첫 해 성적은 20경기(1선발) 1세이브 평균자책점 7.25. 22⅓이닝 동안 삼진 26개를 잡았지만 볼넷 23개, 몸에 맞는 볼 7개로 제구가 말을 듣지 않았다. 아쉬움 가득한 첫 시즌을 뒤로하고 10월 일본 미야자키 교육리그에 참가한 김서현은 11월 마무리캠프까지 두 달 동안 일본에서 담금질했다.

최원호 한화 감독은 “김서현의 제구가 좋아졌다. 스트라이크만 들어오면 치기 쉽지 않은 볼이다. 황준서와 함께 우리가 (잠재력을) 터뜨려야 할 선수”라고 기대했다. 올해 선발과 구원 양쪽 모두 다양하게 경험했는데 내년에는 불펜 추격조로 부담 없는 상황에 시작해 경험을 쌓게 할 계획이다.

박승민 한화 투수코치도 김서현에 대해 “올 시즌 분명 좋은 모습을 보인 시기가 있다. 그때 좋은 모습을 찾기 위해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본인 스스로도 변화하지 않으면 프로에서 쉽지 않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초반에 좋았던 모습이 어떻게 나왔는지 생각하고 변화하는 과정에 있다”고 말했다.

이어 박 코치는 “좋았을 때 모습을 카피하기 위해 선수 본인도 영상을 많이 보고 있다”며 “팔 높이에 대해선 말하지 않는다. 무의식 중에 나오는 대로 가면 된다. 팔 높이보다 공을 던질 때 (팔 동작에서) 원이 너무 커져있는 게 문제였다. 본인 타이밍에 적절하게 맞는 원의 크기를 만들어가려 한다”고 설명했다.

김서현은 “박승민 코치님과 함께 좋았을 때 폼을 많이 봤다. 코치님께선 첫 등판 때 팔 스윙이 되게 좋았다고 하셨다. 그때처럼 던지기 위해 폼을 바꾸고 팔 스윙이나 밸런스도 만들어가고 있다”며 “처음 1군에서 던질 때는 팔이 심하게 빠지지 않았다. 갈수록 팔이 옆으로 빠지면서 제구가 안 좋아졌다. 팔이 빠지지 않게 고정하려 한다”고 말했다.

고교 시절까지 막힘 없이 성장만 거듭해온 김서현이었지만 프로에서 처음 제동이 걸렸다. 그는 “데뷔전 빼고 거의 안 좋았다. 팀에 도움이 되고 싶었는데 딱히 도움이 된 게 없다. 퓨처스에서 선발도 처음 해봤는데 투구수를 늘리고, 다음 등판을 위해 준비하는 기간이 힘들더라”며 “처음에는 고교 때 한 것이 있기 때문에 프로에서도 잘 적응할 수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막상 해보니 쉽지 않았다. 마음대로 몸이 움직여지지 않고, 체중 변화도 갑자기 찾아왔다”고 돌아봤다. 고교 때 88kg였던 체중이 시즌 중 103~104kg까지 늘어나다 보니 몸의 밸런스도 깨졌다. 마무리캠프 기간 체중을 96kg으로 줄여 베스트 상태를 유지했다.

이어 그는 “고교 때는 경기수가 적어 며칠 준비하고 적응할 시간이 있었는데 프로는 매일 경기가 있다. 폼을 고정해야 한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는데 고교 때 폼을 고정했던 투수가 아니라 그런 부분도 어려웠다”며 “야구하면서 처음으로 벽을 크게 느꼈다. 아무리 잘했어도 안 될 때가 있더라. 그러면서 배운 게 많다. 프로는 체력과 컨디션 유지가 가장 중요하다. 선수들마다 자신에게 맞는 루틴이 꼭 있어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수면 패턴을 항상 똑같이 가져가기 위해 노력한다. 잠이 많아서 8시간은 자려 한다”고 말했다.

올해 30이닝을 넘기지 않은 김서현은 내년에 신인상 자격 조건을 유지했다. 2022년 첫 해 1군 28⅔이닝을 던져 신인상 자격을 유지한 뒤 올해 수상에 성공한 1년 선배 문동주처럼 김서현도 2년차 시즌에 대한 기대감을 가질 만하다. 하지만 올 한 해 시련을 겪으면서 김서현은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서두르지 않고 차분하게 내년을 준비한다.

“신인왕을 욕심내면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에 부담감도 생기고, 잘 안 될 것 같다. 초반이었으면 겁없이 까불었겠지만 조용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고 웃으며 말한 김서현은 “서산 방에 장롱이 있는데 거기에 거울이 있다. 거울을 보면서 ‘넌 아직 아니다’라고 혼자 영화를 찍곤 했다. 상보다는 바뀐 모습부터 보여드리고 싶다. 올해 이런 경험들이 내년에 확실히 도움될 것 같다”고 말했다. 냉정한 자기 객관화 속에 칼을 가는 김서현의 2년차 시즌이 궁금하다. /waw@osen.co.kr

[OSEN=이상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