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반 롯데 자이언츠는 ‘8888577’이라는 비참한 숫자와 함께했다. 2001년부터 2007년까지, 7년 간의 순위였다. 롯데 역사상 최악의 암흑기 7년이었다. 그런데 ‘888577’의 비밀번호를 찍은 지 16년 만에 롯데는 다시 암흑기 6년의 시간을 맞이했다. 이제 ‘7107887’이라는 새로운 비밀번호가 설정됐다.

롯데는 지난 10일 잠실 LG전에서 0-7로 패했다. 이로써 정규시즌 5경기를 남겨둔 시점에서 66승73패를 마크, 포스트시즌 트래직넘버 1이 소멸됐다. 6년 연속 가을야구 무산이 공식화 됐다. 사실상 가을야구 진출이 힘들었지만 이날 경기를 기점으로 0.1%의 가능성마저 완전히 사라졌다.

2001년부터 2004년까지 4년 연속 꼴찌를 기록하는 등 2007년까지 7년 연속 가을야구 진출에 실패했던 암흑기 시기를 거쳤던 롯데다. 이후 2008년 제리 로이스터 감독의 노피어 야구, 양승호 감독의 양떼불펜으로 2012년까지 5년 연속 가을야구 진출에 성공했다. 2011년에는 정규시즌 2위까지 올랐다. 그러나 2013년부터 2016년까지 4년 연속 가을야구 진출에 실패하며 다시금 암흑의 기운이 도래하는 듯 했다.

그러다 2017년 정규시즌 3위로 준플레이오프에 직행하며 가을야구 연속 실패의 잔혹사를 끊었다. 하지만 2018년부터 롯데는 다시 원래의 자리인냥 하위권으로 찾아갔다. 올해까지 6년 연속 가을야구 진출에 실패했다.

2년의 과오를 딛고 새시대 출발...하지만 4년째, 롯데 프로세스 오류

특히 2019년 정규시즌 도중 감독과 단장이 동시에 경질되는 풍파를 겪은 뒤 새로운 시도로 달라진 미래를 꿈꿨다. 메이저리그 스카우트 출신 성민규 단장을 선임하면서 롯데의 대변혁을 꿈꿨다. 과도기는 불가피했다. 이러한 변혁의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통증도 감내하려고 했다. 성민규 단장의 ‘프로세스’는 롯데의 장밋빛 미래를 꿈꾸게 했다.

결과적으로 4년이 지난 현재, 장밋빛 미래는 없었다. 잿빛에 가까운 현재만 남게 됐다. 성민규 단장 체제가 본격적으로 막을 올린 2020년부터 4년 연속 가을야구에 실패했다. 2020년 7위, 2021년과 2022년은 모두 8위에 머물렀다. 그리고 올해는 7위였다. 막판까지 가을야구 경쟁을 포기하지 않았지만 결과를 뒤집기에는 역부족이었다. 6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 기간 중 앞선 2년은 이전 체제의 과오 속에서 감당해야 했던 결과지만 최근 4년의 실패는 변명할 거리가 없다.

2022년과 2023년의 과정과 결과는 판박이였다. 용두사미의 시즌이었다. 지난해에도 시즌 초반 2위까지 올라서는 등 질주했지만 5월부터 추락했고 결국 8위로 시즌을 마쳤다.

모그룹의 190억 유상증자 투자, FA 영입, 그리고 강훈련...체질개선 성공하는 듯 했지만

올해는 지난해의 실패를 반면교사 삼으려고 했다. 비시즌과 스프링캠프 동안, 롯데는 그 어느 시즌보다 혹독하게 훈련을 받았다. 강도 높은 체력 훈련으로 장기레이스에서 지치지 않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했다.

무엇보다 이전과 달리 투자가 기반이 된 올해였다. 야구단은 지난해부터 롯데 그룹의 지대한 관심 속에서 전폭적인 투자를 받았다. 모기업인 롯데 지주는 지난해 10월, 롯데 자이언츠 야구단에 190억 원의 유상증자를 진행했다. 육성과 리툴링 기조 속에서 치렀던 지난 3년과 달리 올해는 무조건 더 높은 순위로 올라가야만 했다.

그룹이 안겨준 190억 원의 투자금으로 롯데는 토종 에이스 박세웅과 5년 최대 90억 원의 비FA 다년계약을 체결했고 FA 시장에서 포수 유강남(4년 80억 원), 내야수 노진혁(4년 50억 원), 투수 한현희(3+1년 최대 40억 원)을 영입하면서 전력 강화에 박차를 가했다. 또한 안권수 김상수 신정락 윤명준 이정훈 등 방출 선수들까지 대거 품으며 선수단 전체를 탈바꿈 시켰다. 새로운 선수들과 함께 비상하겠다는 의지였다.

체질개선은 성공하는 듯 했다. FA 투자 효과도 톡톡히 봤다. 베테랑 유강남이 버티는 안방은 이전의 시행착오만 반복했던 포수진과는 차원이 달랐고 노진혁은 특유의 클러치 능력으로 팀을 고비마다 승리로 이끌었다. 한현희도 선발진에서 역할을 해주면서 팀이 무너지는 것을 지탱했다.

4월 말부터 5월 초까지 9연승을 달리며 기세를 드높였다. 4월 18승6패로 1위에 오르는 등 기세는 하늘을 찔렀다. 6월 초까지도 3강 체제 속에서 뒤쳐지지 않으면서 올 시즌은 정말 다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코칭스태프 불화, 부상자 관리 실패, 그리고 감독 경질...또 가을야구 실패

하지만 6월 중순부터 구단과 현장의 판단 착오로 경기 운영이 원활하지 않았고 부상 선수들까지 연달아 나왔다. 또한 부상자 관리에도 실패했다. 무엇보다 6월 말, 코칭스태프 간의 언쟁으로 불화설이 외부에 드러나는 등 내홍을 겪었다. 악재들이 연거푸 터지면서 롯데는 버틸 힘을 점점 잃어갔다. 찰리 반즈와 댄 스트레일리, 잭 렉스까지 기존 외국인 선수들이 부진했고 또 부상을 당하면서 버틸 힘이 없었다.

올스타 브레이크 전후로 5할 승률까지 붕괴되면서 롯데는 심리적 마지노선이 무너졌다. 후반기를 앞두고 롯데는 스트레일리를 애런 윌커슨으로, 렉스를 니코 구드럼으로 교체하면서 반등을 꾀했다. 실제로 몇 차례 반등 기회가 있었지만 롯데는 올라설 힘을 스스로 갖추지 못했고 반등하지 못했다.

체질개선은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바꾼 외국인 타자 구드럼은 수비 실책과 부상 등으로 중요한 시기에 힘이 되어주지 못했고 필승조 구승민과 김상수도 시즌 초중반 무리한 등판의 영향으로 시즌 막판 부상으로 전열을 이탈했다. 이 과정에서 래리 서튼 감독이 건강 상의 이유로 중도 사퇴하는 등 다시 한 번 현장의 수장이 교체되기도 했다.

2020~2021년 초 허문회 전 감독이 성민규 단장과의 불협화음으로 경질됐고 올해 또 다시 현장의 수장이 교체됐다. 구단과 비교적 코드가 통한다고 했던 서튼 감독이라도 파국을 피하지 못했다.

롯데의 프로세스는 오류를 거듭했다. 오류를 개선하기 위해 올해는 만반의 준비를 했다. 투자도 했고 선수단도 여러모로 개편했다. 수장도 바꿨다. 그러나 결과는 올해도 달라지지 않았고 또 다시 가을야구에 실패했다. 여러 변화를 거치면서 달라지지 않은 것은 롯데 프런트 뿐이었다. /jhrae@osen.co.kr

[OSEN=조형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