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축구대표팀 선수들이 월드컵 8강전에서 스위스를 꺾고 4강에 오른 가운데, 이날 그라운드에서 착용한 검은 완장에 대해서도 관심이 모이고 있다. 해당 완장은 아르헨티나 축구의 상징적인 주장 안토니오 우발도 라틴을 추모하기 위한 목적으로 착용됐다.

지난 11일(현지시각) 2026 북중미 월드컵 8강에서 아르헨티나 대표팀 주장 리오넬 메시(39)가 스위스를 3 대 1로 격파한 뒤 두손을 들어 기뻐하고 있다. 메시의 오른팔에는 아르헨티나 축구의 전설 안토니오 라틴을 추모하는 검은 완장이 채워졌다. /AFP 연합뉴스

아르헨티나는 11일(현지시각) 미국 캔자스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스위스와의 8강전에서 연장 승부 끝에 3-1로 승리했다.

대표팀 선수들은 준결승 진출을 확정한 순간까지 팔에 두른 검은 완장을 벗지 않았다. 향년 89세로 세상을 떠난 라틴에게 승리와 함께 마지막 인사를 전한 것이다.

라틴은 1960년대 아르헨티나 축구를 대표한 수비형 미드필더다. 아르헨티나 명문 보카 주니어스에서 선수 생활 전부를 보낸 '원클럽맨'이자 대표팀의 카리스마 넘치는 주장으로 이름을 남겼다.

강한 승부욕과 리더십을 앞세워 보카 주니어스의 리그 우승을 네 차례 이끌었고, 팬들 사이에서는 '보카의 영혼'으로 불렸다. 보카의 홈구장 라봄보네라에는 그의 공로를 기리는 동상도 세워져 있다.

라틴의 이름은 축구 경기에서 사용하는 옐로카드와 레드카드의 역사와도 맞닿아 있다. 그는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개최국 잉글랜드와의 8강전에 아르헨티나 주장으로 출전했다. 경기 도중 판정에 항의하다 독일 출신 주심 루돌프 크라이틀라인으로부터 퇴장 명령을 받았지만, 라틴은 약 10분간 경기장을 떠나지 않았다.

독일어를 사용하는 주심과 스페인어를 쓰는 라틴 사이에 의사소통이 되지 않은 것이 갈등을 키웠다. 라틴은 자신이 왜 퇴장당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통역을 요구했고, 주심의 지시가 명확히 전달되지 않았다고 항의했다.

결국 그라운드를 빠져나가던 라틴은 유니언 잭이 그려진 코너 플래그를 움켜쥐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위해 마련된 VIP석 앞 레드카펫에 앉아 항의를 이어가는 모습도 전 세계에 중계됐다.

이 장면은 아르헨티나 축구사에서 오랫동안 회자됐다. 라틴은 당시 행동을 두고 "여왕을 모욕하려던 게 아니라, 관중석 아래로 내려가기 싫어서 비어 있던 그 자리에 앉아 경기를 보고 싶었을 뿐이었다"고 설명했다.

언어가 다른 선수에게도 심판의 경고와 퇴장 의사를 분명하게 알릴 수단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은 이 사건을 계기로 더욱 커졌다. 이후 국제 축구계에 옐로카드와 레드카드가 도입되는 데 영향을 준 대표적인 사건 가운데 하나로 평가된다.

1937년 태어난 라틴은 1956년 보카 주니어스에서 프로에 데뷔한 뒤 1970년 은퇴할 때까지 다른 팀으로 옮기지 않았다. 보카 소속으로 공식전 382경기에 출전해 28골을 기록했다.

선수 생활을 마친 뒤에는 보카 주니어스와 힘나시아 라플라타 등에서 감독을 맡았다. 축구계를 넘어 정치에도 뛰어들어 2001년부터 2005년까지 아르헨티나 연방 하원 의원으로 활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