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집권 5년차 부동산 정책 주도권이 기획재정부와 국세청 관료 출신들에게 넘어갔지만, 전문성 부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차기 국토부 장관에 기재부 출신 노형욱 전 국무조정실장,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에 김현준 전 국세청장을 선임했지만, 이들이 부동산 정책을 직접 다룬 경험이 없다는 점이 약점으로 손 꼽힌다.
청와대는 2·4 공급대책의 안정적인 추진, LH개혁 등을 추진하기 위한 외부수혈이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정치인이 아니라 관료 출신을 중용했음에도, 부동산 정책 경험이 없는 비전문가들에게 남은 1년 남짓 부동산 정책을 맡기는 것에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계가 명확하다는 반응도 나온다.
이에 정부 안팎에서는 부처 중심의 정책 추진보다는 청와대와 여당 위주의 정책 기획에 실행 기능만 하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오랜기간 공공주택 공급을 준비해왔던 변창흠 전 장관과 달리, 노형욱 후보자의 경우 지난 25번 부동산 대책에 대한 업무파악이 필요한 만큼 자신의 철학을 담은 정책 추진이 어려울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갈 길은 먼데… 시간은 1년, 경험도 없는 국토부 장관
26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차기 국토부 장관에 내정된 노 후보자는 지난 19일부터 정부과천청사 서울지방국토관리청에 마련된 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한 이후 부동산 정책 현안 등에 대한 업무 보고를 차례로 받고 있다.
노 후보자는 기획재정부의 예산·재정, 공공정책 분야에서 경력을 쌓은 정통 '예산통'이다. 그는 행정고시 30회로 공직에 입문해 기획예산처 중기재정계획과장, 재정총괄과장, 기획재정부 행정예산심의관, 사회예산심의관, 재정업무관리관(차관보급) 등을 역임했다. 이후 국무조정실로 옮겨 차관급 국무2차장, 장관급 국무조정실장 등을 지냈다.
국토부 입장에서는 강호인 전 장관(2015~2017년) 이후 4년만에 기재부 출신 장관을 만나게 됐지만, 부동산 정책 전문성에서는 차이가 있다는 반응이다. 강 전 장관은 기재부 내에서 부동산 정책을 다루는 직위를 다수 거쳤다. 경제정책국 조정2과장 시절에는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관련 법령을 만들었다. 이후 부동산 정책 조율 실무를 맡는 차관보를 역임했다.
그러나 노 후보자의 경우 서기관 시절 건설교통예산과에 잠시 근무한 것 외에는 부동산 정책 관련 경험이 없다. 기재부의 경우 부동산 정책 조율은 경제정채국에서, 부동산 관련 세제는 세제실에서 담당한다. 기재부 관계자는 "노 후보자는 업무조율과 소통이 뛰어난 인물이지만, 부동산 정책에 관련된 엄무를 경험한 이력은 없는 편"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부동산 전문가는 "평소라면 국토부 시스템으로 정책이 움직일 수 있지만, 현재는 지켜보는 사람이 워낙 많고 부동산 정책이 꼬일대로 꼬인 상태라서 사전 이해도가 부족한 상태에서 중심을 갖고 정책을 만들어 나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며 "구원 투수보다는 정권 말 대선용 정책을 마련하기 위한 순장조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주택공급 실행자 역할 LH… 수장은 조사통
문제는 국토부기 기획한 주택공급 대책을 실행하는 LH 사장 자리에도 부동산 정책은 물론이고 건설사업에 문외한인 김현준 전 국세청장이 임명됐다는 점이다. LH 사장 자리에 국세청장 출신이 임명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 사장은 1993년 행정고시 35회로 공직에 입문해 국세청 징세법무국장, 국세청 기획조정관, 국세청 조사국장, 서울지방국세청장 등 주요 요직을 두루 거쳤다.국세청 내부에서는 대기업의 탈세 등 '조사통'으로 유명하다. 청와대 공직비서관실과 민정수석실에 파견돼 공직자 사정(司正)을 담당했었다.
김 사장의 강점은 약 2만명 규모의 거대 조직인 국세청을 무리없이 운영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김 시장에게 부여된 임무는 직원 땅 투기 사건으로 곤욕을 치른 LH 내부 통제 강화 등 조직쇄신과 LH 기능조정 등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토지매입 등 공공주택 사업과 관련해서는 정부와 국토부의 입장에 따라갈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 관계자는 "문제가 있는 조직에 감사관이나 재무담당임원(CFO)을 사장으로 보낸 상황과 비슷하다"며 "LH 본연의 주택공급, 택지 개발 사업보다는 조직쇄신이라는 임무를 띤 인사로 해석된다"고 했다.
이러한 복잡한 배경 탓에 시장에서는 비전문가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에 대해 우려가 나오고 있다. 노 장관 후보자의 경우 다음달 4일 인사청문회가 진행되고, 청문회를 통과하더라도 현안파악과 정책 추진을 동시해 해야하고, 이에 따른 성과도 필요한 상황이다.
◇현안 산적한데… "새로운 틀 짜기엔, 물리적 시간 부족"
일각에서는 비전문가인 노형욱 후보자와 김현준 사장을 기용하는 의도를 부동산 정책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청와대의 의지에서 찾고 있다. 한 경제연구원 고위 관계자는 "부동산 정책 기조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면 전문가를 발탁에 시장에서 부작용이 없는 수준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하게 했었을 것"이라며 "국토부 장관이나 LH 사장 모두 새로운 정책 추진보다는 기존 정책 추진과 기재부, 국토부, LH라는 주택정책 라인의 협력을 강조한 인사로 풀이된다"고 했다.
신임 부동산 정책 투톱이 해결해야 할 과제는 산적하다. 우선 변창흠 전임 장관이 마무리 짓지 못한 2·4 공급대책을 완수하는 것이 시급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LH직원 땅 투기 의혹 사태도 수습하면서 신뢰성도 확보해야 한다. 하지만 LH 사태 영향으로 불신이 높아지면서, 공공주택 공급 사업의 동력은 떨어진 상태다.
3기 신도시에 대한 토지보상 작업도 지지부진한 상태다. 현재 인천 계양과 하남 교산의 토지보상은 절반 수준만 완료됐다. 고양 창릉, 남양주 왕숙, 부천 대장은 올해 말쯤이나 보상 협의를 시작한다. 광명·시흥은 보상에 앞서 지구 지정도 완료되지 않았다.
2.4대책과 관련한 입법도 사실상 멈춰있는 상태다. 당정은 신속한 공급을 위해 2·4대책 발표 20여 일 만에 사업 추진 근거인 '공공주택특별법'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도시재생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등의 개정안을 서둘러 발의했지만, 아직까지 국회 통과 기미는 보이질 않는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지금 선택지에서 바꿀 수 있는 게 없다. 결국 기존 대책을 승계하는 방법밖에 없다"며 "올해 정당들의 대선 후보들이 나오면 11월 이후 부터는 대선 후보들의 공약 사업이 추진된다. 결국 부동산 정책을 추진하는 기간은 6~7개월 밖에 없다. 새로운 틀을 짜기에는 물리적인 시간이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