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운용사들이 최근 ESG(환경·사회·기업구조) 전담 부서를 신설하거나 자체적인 평가 지표를 만드는 작업에 착수하는 등 ‘ESG 운용사’로 거듭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ESG 관련 투자를 맡을 운용사를 찾는 기관 투자자들이 늘어나는 수요에 발맞춰 운용사가 ‘새 먹거리’를 찾아 나섰다.

그래픽=최혜연

◇ 올해 기관 투자자 위탁운용 모집 공고 중 30%가 ESG

2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올해 기관 투자자가 올린 위탁운용사 모집 공고 13개 중 30%인 4개가 사회책임투자(SRI)형 펀드를 맡을 운용사를 찾는 공고였다. 사회책임투자펀드란 투자 대상 기업을 선정할 때 기업의 재무적 지표와 함께 사회적 책임, 환경, 사회 등을 고려한 펀드를 뜻한다. 일반적으로 국내에서 ESG 펀드와 섞어 쓰는 개념이다.

우정사업본부는 지난 2월 사회책임형 국내주식 위탁운용사를 모집했으며, 지난달에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사회책임투자형 채권형펀드 위탁운용사를 모집했다. 이달에만 한국교직원공제회과 우정사업본부가 각각 사회책임투자형 국내주식 위탁운용사와 사회책임투자형 국내채권 위탁운용사를 모집했다.

사회책임형 펀드를 운용하지 않는데도 운용사를 평가하는 지표로 ESG 전략을 고려하는 기관 투자자도 있었다. 공무원연금공단·노란우산공제회·건설근로자공제회·농협생명은 운용사에 ESG 투자 플랫폼, ESG 투자 정책·실적, 책임투자원칙(PRI) 등급 등을 기재하도록 요구했다.

한 자산운용사 본부장은 "지난해부터 ESG 투자 성과가 우월하게 나오기 시작했다"라며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연기금 이외에도 공제회까지 ESG 투자를 확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에 따라 자산운용업계에서도 ESG 부서를 정립하는 추세"라고 덧붙였다.

익명을 요구한 한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말부터 ESG가 화두가 되자 각 운용사에서 ESG 관련해서 ‘드라이브’를 걸었다고는 들었지만 이달 들어 더 집중하는 모습"이라며 "각 운용사에서 ESG 관련 업무를 적극 홍보하는 건 그만큼 ESG 경쟁이 치열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전했다.

◇ ESG 전담 부서 만들랴 평가 지표 만들랴 분주한 운용사

운용업계에서는 너도나도 ESG 전담 부서를 만드는 분위기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현재 스튜어드십본부와 경영혁신본부로 이원화된 ESG 부서를 연내 하나의 부서로 통합한다는 계획이다. 마스턴투자운용은 홍보팀과 미래전략팀이 ESG 실무 태스크포스팀(TF)을 만들고 EGS 정책을 만들고 있다. KB자산운용은 조직 내에 ESG 위원회를 비롯해 ESG 전담 부서인 ESG&PI실을 신설했다. 이지스자산운용도 연내 ESG 전담 부서를 신설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한화자산운용은 자산운용사 중 처음으로 이사회 내에 ESG 위원회를 신설했다. 지난 15일 임시주주총회를 열어 ESG 위원회 설치를 위한 정관 변경을 완료하고, 이사 3인으로 위원회를 구성했다. 정관 변경을 통해 ESG 위원회에 법인의 권한을 부여한 것으로, 위원회를 해체하려면 다시 주총을 실시해야 한다. 내부 조직에서 전담 부서를 만드는 것보다 ESG 관련해서 한 단계 더 높은 의지를 피력한 셈이다.

이 밖에 한화운용은 지난해 4월부터 ESG 관련된 지속가능전략TF를 대표이사 직속 ‘실’로 승격해 운영하고 있다. 한국투자신탁자산운용은 주식·채권운용본부 내 ESG 관련 전담 조직을 별도 운영하고 있다. 2019년 스튜어드십코드 내부 상설 위원회를 꾸린 이후 ESG 투자에 대한 의견을 의결권 행사에 반영하고 있다.

우태희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이 지난 8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한상의회관에서 열린 '제1차 대한상의 ESG경영 포럼'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투자처를 평가할 ESG 지표도 개발이 한창이다. 미래에셋운용은 외부 컨설팅까지 동원해 투자 기업에 대한 ESG 평가 시스템을 구성하고 있다. 키움투자자산운용은 상장사 평가에 이어 올해 1분기에는 비상장사에 대한 ESG 평가 시스템을 구축했다. 외부기관이 평가하지 않은 비상장사까지 상시 평가하면서 ESG 기업인 것처럼 속이는 이른바 ‘그린 워싱’을 방지하겠다는 계획이다. 한화운용도 ESG 평가체계 등의 투자기반을 마련하고 있다.

NH-아문디자산운용은 2018년부터 아문디 ESG 벤치마크 지수를 만든 것에 이어 올해는 ESG 채권형 사모펀드를 출시했다. 신한자산운용은 ESG 펀드와 같은 특별한 전략이 아닌 일반 공모 주식형 펀드에도 ESG등급 기준을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신한운용은 외부 자문사 및 내부 리서치를 활용해 ESG 스코어링 시스템을 운영해왔다.

국내 독립계 자산운용사 트러스톤자산운용은 지난 1월 이미 자체적으로 만든 ESG 스코어링을 ESG평가 지표로 활용하고 있다. ESG 외부평가 등급이 우수한 종목의 투자 비중은 줄이고 성장 가능성이 높은 등급에 50% 이상을 투자하는 식으로, 향후 ESG 평가가 개선될 기업에 투자 중점을 두고 있다.

다만 업계에서는 ESG 열풍을 곱게 보고만 있지는 않다. ESG 평가 지표는 물론, ESG 투자 자체가 아직 모호한 수준이라 정립 기간이 필요하다는 시각이다.

익명을 요청한 한 자산운용사 과장은 "너도나도 ESG를 추구하고 있는데 사실 이전에 했던 지속 가능 경영과 다를 바가 없다"면서 "시장에서 여러 ESG 지수가 혼용되고 있어서 명확한 방향성이 필요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다른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도 "일단 새 먹거리 차원으로 ESG를 강조하고는 있는데, 이게 ‘반짝’ 유행일지 정말 지속 가능한 투자 전략인지는 시간이 지나봐야 알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