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른 경제 회복을 목표로 전 세계가 참전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전쟁’에서 한국은 완패했다. 현재까지 한국의 코로나19 백신 접종률은 2.3%로, 이스라엘(61.5%)·영국(47.3%)·미국(35.7%)·유럽연합(EU·15.3%) 등에 크게 못 미친다. 느린 접종 속도 만큼 경제 회복, 일상 복귀의 시점도 경쟁국들보다 늦어질 수밖에 없다. 전 세계적으로 백신 공급이 원활하지 못해, 백신 주권이 없는 한국은 마음대로 접종 속도를 높여 경쟁국을 따라잡을 수도 없는 상황이다. 조선비즈는 백신 전쟁 전까지만 해도 선진적인 ‘K방역’을 자랑하던 한국이 뒤처지게 된 원인을 찾고 전문가 진단을 통해 지금부터라도 필요한 대책을 총 3편에 걸쳐 알아본다. [편집자 주]

지난 6일(한국시간) 열린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텍사스 레인저스의 홈구장 ‘글로브 라이프 필드’에는 홈 개막전을 보기 위한 관중 약 4만명으로 가득찼다. 그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관중의 10%~20%만 받던 것과 달리, 미국 프로스포츠 사상 첫 ‘관중 100% 입장’을 허용한 것이다. 이는 백신 보급이 확대되면서 코로나19의 확산세가 꺾였다는 자신감에서 출발한 것이다. 텍사스주는 이미 코로나 백신을 1000건 이상 접종했고, 지난달 29일부터 백신 접종 자격을 모든 성인으로 확대했다.

지난해 12월부터 접종이 시작된 백신의 위력은 강력했다. 미국의 백신 접종률은 35.65%로 국민 10명 중 3명 이상은 접종을 끝마쳤다. 그 결과, 텍사스 경기가 있던 당일, 미국의 코로나19 확진자수는 5만6601명으로 두 달 전인 2월 6일(25만5999명)에 비해 약 4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일주일 평균 3000명대 수준이던 사망자수는 800명대로 뚝 떨어졌다.

지난 6일 열린 미국 메이저리그 텍사스 레인저스의 홈개막전에는 약 4만명의 관중들로 가득찼다.

지난해 미국은 코로나 대응에 가장 실패한 나라였다. 확진자가 25만명, 사망자 수는 21만명에 이르렀다. 사망자가 갑자기 늘어나면서 묘지가 부족해 장례도 제대로 치르지 못한 채 미국 뉴욕시 브롱크스 북동쪽의 하트섬에 구덩이를 파고 가매장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마스크 쓰기 권장하지 않고, 위스콘신주 상원은 마스크 의무화 폐지 결의안을 제출하면서 미국은 한때 코로나 지옥으로 변했다.

하지만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선 후 백신 접종을 시작하면서 상황은 180도로 변했다. 전 국민이 백신으로 코로나를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면서 코로나 이전의 일상을 빠르게 회복하고 있다. 경제 지표가 이를 반영한다. 스탠다드앤푸어스(S&P) 500지수는 지난 13일 4146까지 거래되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등 경제회복의 확실한 신호를 보내고 있다. 백신 수급에 자신감이 붙은 조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100일까지 약속했던 ‘백신 1억 회분을 접종’을 2배 늘린 2억 회분 접종으로 상향했다.

◇‘백신 접종이 최고의 경제 정책’...백신 우등국 美·英 경제회복 ‘훨훨’

국제통화기금(IMF),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등 세계경제기구는 올해 전 세계의 경제 성장을 이끌 국가로 미국을 지목했다. IMF는 지난 6일 미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6.4%로 지난 1월 전망치(5.1%)보다 1.3%포인트(P) 올려 잡았다. 같은 기간 세계 경제성장률은 6.0%로 0.5%P 증가하는 데 그쳤다. 미국 성장률 전망치가 선진국 평균은 물론 전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까지 웃도는 것은 이례적이다.

빠르게 백신을 보급한 국가들이 일상으로의 복귀에 시동을 걸고 있는 것이다. 영국의 접종률은 47.32%로 세계 2위 수준이다. 작년 말 세계 최초로 백신 접종을 시작한 영국은 지난 12일부터 닫았던 학교와 술집 문을 열었다. 다음달 중순부터는 해외여행을 허용하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 본격적인 경제활동에 나선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경제성장률 전망치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IMF가 전망한 영국의 성장률 전망치는 5.3%로, 이전 전망치(4.5%)보다 0.8%P 상향조정됐다. 선진국 중 미국, 캐나다, 이탈리아에 이어 네 번째로 높은 증가폭이다.

인구 대비 백신 보급속도가 가장 빠른 이스라엘은 접종자에 다양한 혜택을 주며 ‘봉쇄 출구’ 전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스라엘은 백신 보급률은 61.57%로 세계 1위 수준이다. 이스라엘은 다음달 23일부터 백신을 접종받은 외국인 관광객의 입국을 재개할 방침이다. 관광부에 따르면 2019년 약 455만명이던 외국인 관광객은 지난해 83만2000명으로 줄어들어 업계 매출이 53억 달러(약 5조9600억원) 감소했다. 이스라엘은 우선 단체 관광객만 입국을 허용한 뒤, 추후 개인 관광객에게도 국경을 개방할 예정이다.

IMF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경제회복에서 가장 중요한 열쇠를 ‘백신 보급’으로 보고 있다. 백신 공급이 많고 접종률이 높은 선진국들이 경제회복을 주도할 수 있다는 의미다. 반면 재정 여건이 열악하고 접종률이 낮은 개발도상국 등은 오랜 기간 코로나 확산 방지에 나서면서 경제회복이 더뎌질 수 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재정 부양책이 끌어올릴 수 있는 성장률은 한계가 있다. 결국 백신 보급이 가장 중요한 경제정책이 될 수 있다"며 "백신 접종률 속도가 늦어질 경우 경제 회복의 속도는 더뎌질 수 있고, 재정 부양책의 효과도 떨어질 수 있다"고 했다.

지난 4일(현지 시각) 이스라엘 텔아비브에 있는 하비마 국립극장에서 코로나 규제 완화로 공연이 재개되자 배우들이 무대에 오를 준비를 마치고 환호하고 있다. 이날 공연은 코로나 백신을 맞은 관객만 입장이 허용됐다.

◇한국, 접종률 세계 꼴찌 수준…"백신, 전문가 아닌 정치인이 관여"

백신을 확보한 선진국들은 경제회복이 빨라지고 있는 반면, 백신 접종률이 2%대에 머물러 있는 한국은 여전히 정체 상태다. 지난 3일 시작된 국내 프로야구 경기에서는 방역단계에 따라 10~30%의 관중만 받고 있다. 지난 2월부터 사회적 거리두기 방역이 완화됐지만, 수도권에서는 여전히 식당 영업이 밤 10시까지만 허용되고 있다. 코로나19 확잔자수가 500명대로 올라선 이달초부터는 수도권 지역의 유흥업소 영업이 다시 정지됐다. 사람 사이의 접촉을 줄여서 코로나19 확진자 숫자를 최소화하겠다는 ‘봉쇄’ 위주의 방역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까지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지난 3일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2021년 프로야구 KBO리그 개막전 삼성 라이온즈와 키움 히어로즈 경기가 열리고 있다. 고척스카이돔은 코로나19로 인해 수용 관중 10%로 입장이 제한되고 있다.

한국이 여전히 봉쇄 위주의 방역을 지속하고 있는 것은 코로나19 백신 접종의 진행 속도가 원활하지 않은 탓이다. 국제 통계사이트 아워월드인데이터에 따르면 지난 12일 기준 한국의 전체 인구 대비 백신 접종률은 2.33%다. OECD 37개 회원국 중 35위이고, 세계 100위권 밖이다.

백신 보급이 늦어지는 결과는 참담하다. IMF가 선진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대폭 확대할 때, 한국의 성장률은 3.6%에 그칠 것으로 봤다. 지난 1월 발표한 전망치보다 0.5%P 오른 수준이다. 주요 선진국 성장률(5.1%)과 비교하면 낮은 수준이다. 코로나 타격이 큰 유로존(4.4%)과 신흥개도국(6.7%)보다도 낮았다.

내년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IMF는 내년 세계 경제가 4.4% 성장할 거로 내다봤다. 이는 올 1월 전망치(4.2%)보다 0.2%P 올려잡은 것이다. 선진국은 3.6%로 앞선 전망보다 0.5%P 상향 조정했다. 미국은 3.5%, 유로존은 3.8%로 각각 1.0%P, 0.2%P 올렸다. 신흥개도국은 5.0%로, 기존 전망을 유지했다. 반면 한국은 2.8%로 기존 전망치(2.9%)보다 0.1%P 낮춰잡았다.

전문가들은 백신이 제때 도입되지 못할 경우 집단면역 형성뿐 아니라 이후, 경제회복에도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고 전망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경제적 함정에 빠질 대표적인 국가로 한국을 꼽았다. 작년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1.2% 감소했지만 수출이 선방한 것에 따른 것으로, 민간소비 감소폭은 -6.5%로 미국(-3.4%) 보다 코로나 쇼크가 더 컸다는 것이다.

마상혁 대한백신학회 부회장은 "각 국가들이 화이자나 모더나 백신을 확보하려고 할 때 AZ 백신 확보에만 집중하면서 부작용 등 문제가 발생했다"며 "결국 부작용 논란이 끊이지 않으면서 백신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 처음부터 의사 등 전문가들의 조언을 들었더라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백신 수급 문제를 대통령과 총리 등 정치권에서 주도를 하다보니 확보 시점을 놓쳤다. 이미 작년부터 줄을 선 국가들이 있는데, 이제와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거리두기에도 4차 유행 앞둬…백신 2분기 수급도 ‘빨간불’

거리 두기 장기화로 국민들의 피로도는 점차 쌓여가는 상황이다.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발생한 작년 1월20일부터 올해 4월9일까지 거리두기 발표는 총 10번이다. "앞으로 2주가 고비입니다. 국민 여러분의 노력이 절실하다."는 정부의 말에 이제는 믿을 수가 없다는 말까지 나온다. 강도 높은 거리두기와 방역조치에 온 국민이 참여하고 있지만, 지난 3월 300~400명대를 유지하던 확진자수는 이달들어 700명대로 급증하며, 4차 대유행을 앞두게 됐다.

문제는 2분기 백신 수급도 불확실하다는 점이다. 정부는 2분기 얀센(600만명분), 모더나(2000만명분), 노바백스(2000만명분) 백신을 추가로 들여온다는 계획이지만, 현재까지 구체적인 도입 물량이 확정되지 않았다. 특히 얀센에 대한 혈전증 부작용이 나타나면서, 미국 식품의약품안전청(FDA)과 질병관리본부(CDC) 등 보건당국은 얀센 백신에 대한 접종 중단을 권고했다. 급기야 얀센을 만든 존슨앤존슨은 백신의 유럽 출시를 연기했다.

백신 접종이 정부 계획보다 늦어지면서, 코로나19에서 벗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시점도 늦어지고 있다. 정부는 오는 11월말이면 집단면역이 형성될 것이라고 호언장담했지만, 이를 믿는 전문가들은 아무도 없다. "내년 1분기말쯤 집단 면역이 형성되면 다행"이라는 진단도 나온다.

코로나19 탈출시기가 늦어질 수록 취약계층의 경제활동 회복이 지연되고, 이로 인해 K자형 양극화가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코로나로 인한 비대면 경제 활성화, 수출 회복으로 대기업 이익은 증가한 반면, 자영업자 등의 소득은 감소하는 등 양극화가 두드러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실제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국내 기업들이 거둔 성적표는 기업규모별, 업종별로 명암이 갈렸다. 영업이익 증가가 코로나 수혜업종과 일부 기업에 집중되면서 기업 간 K자형 양극화가 뚜렷하게 나타난 것이다.

코로나19 예방접종 대응 추진단장을 맡은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중앙방역대책본부장)이 지난 11일 충북 청주시 질병관리본부에서 열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정례 브리핑에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사용의 잠재적 이득과 위험 비교 등을 설명하고 있다.

◇기업도 가계도 ‘양극화’... "백신확보 지연이 경제 양극화 심화시킬 것"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이 코스피 및 코스닥 비금융 상장 기업 1017개사의 재무제표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상장사 영업이익이 24.9% 증가했음에도 상장사 4개 중 1개는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 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백화점, 명품매장 등 대형 유통 채널을 중심으로 소비심리가 살아나고 있지만, 영업 제한을 받은 자영업자나 여행업, 서비스업들의 폐업위기에 쳐해있다.

양극화는 가계 부문에서도 확대되고 있다. 통계청의 2020년 4분기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소득 분배 수준을 보여주는 ‘분기별 균등화 처분가능소득 5분위 배율(5분위 배율)’은 2019년 4분기 4.64에서 지난해 4분기 4.72으로 0.08P 악화했다. 5분위 배율은 균등화 처분가능소득 기준 소득 상위 20%의 소득을 하위 20% 소득으로 나눈 값으로, 이 배율이 높아질 수록 고소득층과 저소득층 사이의 소득양극화가 커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대기업 직원 등이 많이 포함된 소득 5분위(상위 20%)는 회사에서 지급한 상여금이 증가해 소득이 가파르게 증가한 반면, 코로나 고용쇼크로 직격탄을 맞은 임시·일용직이 많은 소득 1분위(하위 20%)는 정부의 재난지원금 외에는 별다른 소득이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

이 때문에 코로나 백신 확보에 실패한 정부 정책이 코로나 이후 사회 양극화를 심화시킬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정부의 과도한 ‘K방역’ 홍보로 백신 수급의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것이다. 지난해 3∼4월 각국이 백신 개발과 수급에 나섰을 때 우리 정부는 총선을 앞두고 K방역에 홍보에 열을 올렸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터널의 끝" 운운했다. 하지만 현실은 11월 말 집단면역 형성도 불가능하다.

한 경제연구원 고위 관계자는 "백신 보급 속도나 수급 방안, 연말 접종률 목표치 등을 관련 부처에 요구했을때 제대로 된 답변을 듣기 어렵다"며 "백신을 무기로한 선진국들이 경제회복 속도는 점차 빨라지고 있는데, 우리나라만 아직도 'K방역에 선방했다'는 말에 취해있다"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제학과 교수는 “작년 성장률이 -1.0%라고 선방했다는 정부의 발언을 보면가 기가막혔다. 수출이 선방한 것은 맞지만, 고용과 소비는 심각했고, 나머지 부분을 돈을 풀어서 맞춘 것”이라며 “자꾸 K방역을 말할 게 아니라, 고용이나 소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여러 백신 확보가 강력한 한방이 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