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고급차 브랜드 벤틀리모터스(벤틀리)는 지난달 26일, 영국 본사가 있는 크루공장에서 스포츠유틸리티차(SUV) ‘벤테이가 하이브리드’와 현존하는 벤틀리 모델 중 가장 오래된 ‘EXP2’를 함께 전시하는 이색 이벤트를 기획했다. 1919년 설립 이후 글로벌 누적 생산량이 처음 20만대를 돌파하자 20만번째로 생산된 벤테이가를 선보이며 이를 기념한 것이다. 최근 크루공장에서는 하루 85대의 차가 생산되고 있는데, 이는 20년 전 한 달 동안 생산한 대수와 같은 규모다.

애드리안 홀마크 벤틀리 회장은 "20만번째 차량 생산은 창립 100여년의 벤틀리가 거쳐온 놀라운 여정 중 가장 최신의 이정표에 불과하다"며 "2003년 이후 빠르게 성장한 벤틀리는 ‘비욘드(Beyond) 100’ 전략을 바탕으로 다음 100년의 전환기로 접어들고 있다"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생산된 20만대의 벤틀리 모델 중 75%는 지난 18년 동안 생산됐다. 벤틀리는 지난해 11월, 2030년까지 크루공장의 생산 과정부터 판매 모델 라인업까지 모든 부문에서 완전 탄소 중립 제조사로의 변화를 목표로 하는 비욘드 100 전략을 발표했다.

현존하는 벤틀리의 가장 오래된 모델 ‘EXP2’(왼쪽)와 20만번째로 생산된 ‘벤테이가 하이브리드’.

차 한 대 가격이 최고 수십억원에 이르는 고급차의 대명사 벤틀리·롤스로이스·람보르기니가 코로나 사태에서 사상 최대 실적을 거두고 있다. 세계 각국 정부가 코로나 쇼크를 벗어나기 위해 막대한 현금을 풀면서 주식 등 자산 가격이 올랐고, 부의 효과로 고급차 수요가 늘어난 덕분이다. 벤틀리·람보르기니·부가티 등 고급차를 판매하는 미국 딜러사 맨하탄모터스의 브라이언 밀러 사장은 "40년 동안 고급차를 판매해 왔지만, 이런 호황은 처음"이라고 했다.

토스텐 뮐러 오트보쉬 롤스로이스 CEO는 이달 "올해 1분기 롤스로이스가 116년 역사상 가장 높은 기록을 세웠다"라고 발표했다. 지난 1~3월 전 세계에서 1380대를 판매하면서 1분기 기준 최고 판매량을 기록한 것이다. 전년 동기 대비로 62%가 늘었는데, 특히 중국과 미국, 아시아·태평양 지역 판매가 크게 늘었다.

지난해 출시한 ‘뉴 고스트’와 슈퍼 럭셔리 SUV ‘컬리넌’은 사전 주문량이 많아 올해 하반기까지 일감이 밀려있고, 롤스로이스의 고객맞춤 서비스인 ‘비스포크 프로그램’ 역시 폭발적인 주문량을 기록하고 있다. ‘코아 팬텀’, ‘이리더센트 오퓰런스 팬텀’ 등 다수의 비스포크 주문 제작 모델들은 이미 판매가 완료됐고, 20대 한정 판매되는 ‘팬텀 템퍼스 컬렉션’은 모델이 공개되기도 전에 고객 배정이 마무리됐다.

영국 굿우드에 있는 롤스로이스 생산 공장에서 기술자들이 자동차를 검사하고 있다.

람보르기니와 부가티 등 수퍼카 판매도 호조를 보이고 있다. 슈테판 빙켈만 람보르기니 CEO는 "지난해 마지막 분기 실적은 역사상 최고 수준이었고, 올해 하반기까지 주문이 모두 찬 상태"라고 말했다.

고급차에 대한 수요가 늘어난 것은 국내 시장도 마찬가지다. 불황일수록 명품이 더 잘 팔리듯, 자동차 시장에서도 억대의 고가 수입차 판매가 크게 늘어난 것이다. 올해 1분기에만 국내 시장에서 벤틀리는 55대, 롤스로이스 53대, 람보르기니는 81대가 판매됐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고소득자의 경우 코로나 사태에 큰 영향을 받지 않았고, 주가가 오르면서 금융자산이 늘어나 고급차 수요가 늘었다"며 "주택 다음으로 비싼 자산인 자동차 시장에 막대한 유동성이 몰린 결과"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