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자동차가 2009년 이후 12년만에 다시 법정관리(회생절차)에 들어가는게 유력해졌다. 지난 7일 예병태 사장이 사퇴한 것은 쌍용차와 미국의 자동차 업체 HAAH오토모티브 간 매각 협상이 완전히 결렬됐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당초 쌍용차는 HAAH로부터 투자의향서(LOI)를 받아 지난달 31일까지 법원에 제출할 계획이었으나 결국 내지 못했고, 법원의 판단에 또다시 회사의 생사를 맡기게 됐다.

2015년 초 쌍용차 직원들이 경기도 평택시 쌍용차 공장에서 소형 SUV ‘티볼리’를 출고 전 최종 점검하고 있는 모습.

8일 업계에 따르면 법원은 쌍용차 회생절차 개시 여부에 대해 이르면 이번주, 늦어도 다음주 안에 결정할 방침이다. 서울회생법원은 지난 1일 쌍용차 채권단에 쌍용차의 회생절차 개시 여부를 묻는 의견 조회서를 보냈고, 채권단의 의견을 받으면 이를 검토해 회생절차 개시 여부를 신속히 결정하겠다는 계획이다.

앞서 법원은 쌍용차가 기업 회생과 함께 신청한 자율 구조조정 지원(ARS) 프로그램에 따라 2차례에 걸쳐 회생 개시 결정을 미룬 바 있다. 그러나 법원은 HAAH오토모티브가 쌍용차를 인수할 의지가 없다고 판단하고 회생절차 개시를 위한 수순에 돌입하게 됐다.

그래픽=김란희

예 사장은 사퇴하면서 임직원들에게 "아직도 쌍용차에 대해 다수의 인수 의향자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만큼 절망을 하기엔 이르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신규 투자자 유치가 계획보다 지연되면서 회생절차 개시 결정이 임박해 또 다시 헤쳐나가야 할 많은 혼란과 어려움이 예상된다. 회사가 또 다시 회생절차 개시를 앞두게 된 상황에 대해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했다. 사실상 투자 유치 실패에 대한 책임을 안고 사장직에서 물러난 셈이다.

회생 절차가 개시되면 법원은 쌍용차의 자산·재무 상황을 토대로 쌍용차의 '회생' 가치가 높은지, '청산' 가치가 높은지를 판단하게 된다. 쌍용차를 계속 운영하는 게 낫다고 판단되면 재무구조 개선 등을 통해 쌍용차 정상화 방안을 추진한다. 쌍용차도 구체적인 회생 계획안을 내놓아야 하기 때문에 대규모 구조조정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청산 가치가 더 높다고 판단되면 청산 절차를 밟게 된다. 쌍용차는 현재 15분기 연속 적자를 낸 상황이어서 업계에서는 법원이 청산 결정을 내릴 가능성도 적지 않다고 보고 있다.

경기 평택 쌍용차 도장공장은 2009년 옥쇄파업 사태 당시 경찰과 노조가 마지막으로 대치했던 장소다. 2009년 8월 9일, 파업이 끝난 도장공장을 직원들이 청소하는 모습.

쌍용차는 1954년 설립 이후 66년간 여러 차례 위기가 있었다. 1954년 설립한 하동환자동차가 모태다. 1977년 동아자동차공업으로 이름을 변경했다가 쌍용그룹에 넘기면서 1988년 쌍용자동차로 다시 이름을 바꿨다. 그러나 계속 이어진 적자와 더불어 플래그십 세단 '체어맨'을 개발하는데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면서 3조원이 넘는 빚이 쌓이게 됐다. 결국 쌍용차는 1998년 대우그룹에 매각됐다. 그러나 1년만에 대우그룹이 외환위기로 공중분해되면서 쌍용차도 채권단에 넘어가게 됐다.

쌍용차는 독자적으로 워크아웃에 들어갔는데, 2004년 중국 상하이차에 매각됐다. 상하이차도 쌍용차가 재기하는데 발판이 되지 못했다. 오히려 상하이차는 기술 유출 논란만 일으켰다. 2009년 상하이차 '먹튀' 논란이 대표적이다. 상하이차에 기술 이전을 하려면 이사회의 결의, 연구비 일부를 댄 정부 소관 기관에 보고가 필요했다. 그런데 상하이차가 쌍용차 대주주라는 이유로 절차를 무시하고 정부의 예산까지 투입된 디젤 하이브리드 관련 연구 기밀을 가져갔다.

상하이차는 재투자와 신차 개발 등의 약속도 지키지 않은 채 2010년 한국 시장에서 철수했다. 상하이차 사태 후 쌍용차는 법정관리와 더불어 평택공장 옥쇄파업 등 아픔을 겪어야 했다. 상하이차가 철수하면서 쌍용차는 2646명의 직원을 정리 해고하거나 무급 휴직시키는 자구책을 내놨는데, 노조는 이에 반발해 2009년 5월부터 8월까지 77일간 쌍용차 평택 공장을 점거하고 파업을 벌였다. 당시 64명의 노조원이 구속됐고 쌍용차 직원을 비롯해 희망퇴직자와 가족, 협력업체 직원 30여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마힌드라 직원들이 마힌드라 회사 로고 앞에 서서 투자설명회를 준비하고 있다.

2011년 인도 마힌드라그룹이 쌍용차를 인수하고, 소형 SUV 티볼리가 흥행하면서 쌍용차는 안정을 찾는 듯 했다. 그러나 마힌드라가 쌍용차에 2300억원을 지원하기로 했던 투자 계획을 취소하고, 새 투자자도 찾기 못하면서 결국 또다시 법정관리에 들어갈 위기에 놓였다.

쌍용차에 대한 투자 의향을 가진 국내 업체들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전기버스업체 에디슨모터스, 전기 이륜차업체 케이팝모터스, 중소 사모펀드 현림파트너스의 계열사인 박석전앤컴퍼니 등 3~4곳이다.

그런데 올해 초 마힌드라가 쌍용차의 정상화를 위해 필요하다고 한 자금 규모는 3년간 5000억원에 달한다. 이 때문에 어떤 경우든 쌍용차가 재기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는 우려도 나온다. 자금력 등을 미루어 볼 때 신차 개발은 커녕 쌍용차의 중·장기적인 미래를 보장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쌍용차는 해외시장 개척 등 수출 판로를 확보하는게 오래된 과제여서 이를 뒷받침해줄 수 있는 기업이 쌍용차를 인수해야만 다시 재기할 수 있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쌍용차는 자산재평가를 통해 재무구조를 일부 개선했다. 쌍용차는 지난달 말 경기 평택 본사와 공장 일대 토지를 감정평가법인이 재감정한 결과 지난해 말 기준보다 2788억 원 증가한 6813억7315만 원으로 평가됐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