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달부터 중소기업·소상공인 대출 만기 연장과 관련한 ‘원리금 상환 컨설팅’이 시작된 가운데, 은행들은 실제 영업 현장에서 적용할 세부 운영방침을 마련해 시행하느라 분주하다. 금융당국이 대표 상환방식 6가지를 만들어 대략적인 가이드라인(지침)을 제시하긴 했지만, 여전히 부족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유예 시한이 끝나는 9월 말이 임박하면 컨설팅 문의가 빗발치고, 차주가 요구하는 상환 방식 사례가 다양해질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만큼 일각에선 더욱 구체적인 지침이 사전에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8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들은 지난 1일부터 중소기업·소상공인 대출 만기 연장과 관련한 대출 상환 컨설팅을 시작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지난해부터 오는 9월까지 총 세 차례 만기 연장 정책이 추진된 데 따른 후속 조치다. 연장된 만기가 도래했을 때 차주의 상환 부담이 한 번에 몰리지 않도록 은행이 차주와 장기분할 상환 방식을 협의하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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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원회가 제시한 상환 방법의 큰 원칙 중 하나는 최종적인 상환 방법·기간 등은 ‘돈을 갚을 사람’이 자율적으로 결정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3월 31일이 지난 후 만기가 도래한 차주들은 6개월 연장 여부를 결정해 각 금융회사에 신청해야 하는데, 이때 창구 직원과의 상담을 거쳐 원리금 상환 방식도 함께 선택해야 한다.

차주는 6개월분을 유예한 뒤 크게 금융위가 제시한 원리금 장기분할 상환 방식 시나리오 6가지 중 하나를 고를 수 있다. ▲6개월 거치(원금 제외한 이자만 납부) 후 유예원금·이자를 12개월 동안 분할상환 ▲만기를 6개월 연장해 기존 상환 금액만큼 분할상환 ▲만기를 연장해 기존 상환 금액의 절반 수준으로 분할상환 ▲유예원금·이자를 6개월·12개월·30개월 동안 분할상환하는 방법 등이다.

차주의 상환 능력을 따졌을 때 이런 6가지 선택지 이외에 다른 상환 방식이 낫다고 판단하면, 상담을 통해 최적의 상환 스케줄을 정할 수 있다.

금융위원회가 ‘차주가 선택 가능한 상환 방법’으로 제시한 구체적 예시.

은행들은 일단 금융위가 내려준 지침을 바탕으로, 자체 세부 운영 지침을 추가로 마련해 대응 중이다.

A 은행은 6가지 상환 방식에 해당하지 않으면, 다른 자체 기업 대출 상품으로 대환을 안내하도록 지침을 정했다. B 은행은 대출 만기 연장과 이자 유예를 한 사람을 대상으로 "만기가 돌아오기 전에 상환과 관련한 컨설팅을 받아야 한다"고 한 달에 한 번 문자로 안내하기로 했다. 자체 세부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최근 창구에 배포하고 직원 교육을 마친 은행도 있다.

아직 컨설팅이 시작된 지 5영업일밖에 지나지 않아, 대출 상환과 관련한 상담 수요는 거의 없거나 미미한 분위기다. 한 은행 관계자는 "만료가 다가오면서 상담을 받은 건들이 간혹 있기는 하나, 실제로 상환 방식이 정해져서 처리가 된 사례는 거의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3차 만기연장·이자상환 유예 시한인 9월 말이 임박하면, 차주가 요구하는 상환 방식 유형이 다양해지면서 적지 않은 혼란이 예상된다는 우려가 나온다. 대표적인 것이 차주가 초장기 상환 기간을 요구할 경우다. 은행 관계자는 "만약 차주가 10년 이상의 초장기 상환 기간을 원하는 등 극단적인 사례가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면서 "이럴 경우 부실 리스크가 커지는 등 은행의 부담이 커진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금융위는 "상환 기간 연장은 원칙적으로 총 3년 이내로 하기로 은행권과 협의했다"면서도 "개별 차주의 상환 능력에 따라 만기연장 수준 등을 결정하도록 마련한 원칙 범위 내에서 특정 방법·기간을 제한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3년을 원칙으로 하지만, 그 이상의 기간을 차주가 요구할 경우 은행과의 협의를 바탕으로 유연하게 결정할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다.

금융위의 모호한 답변에 은행들이 마련한 자체 지침 내용도 제각각이다. ‘유예된 상환 기간을 3년을 초과해 신청할 수 없다’는 방침을 약정서에 명시한 은행들이 있는 반면, 어떤 은행은 3년을 원칙으로 하되 ‘영업점장이 가능하다고 판단한 경우 더 긴 상환 기간을 부여할 수 있다’는 단서를 달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아무런 조건을 명시하지 않은 은행도 있다.

한 은행 관계자는 "8~9월 유예기간 막바지 때 컨설팅 문의가 몰리면 고객이 요구하는 상환 방식 사례가 다양해지면서 혼란이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당국의 구체적인 지침이 추가로 마련될 필요는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금융당국은 "만기연장·상환유예 및 연착륙방안 적용 등 코로나 관련 중소기업·소상공인에 대한 금융사의 적극적인 조치에 대해서는 고의·중과실 등이 없는 한 제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