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온라인 중심으로 재편되는 유통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절치부심 중인 롯데쇼핑(023530)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채권을 통해 자본 조달에 나섰다.

2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롯데쇼핑은 이달 중으로 사회적책임(SRI)채권을 발행할 예정이다. 발행액수는 확정되지 않았지만, 다른 계열사들과 크게 차이 나지 않는 1000억원 안팎 수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롯데지주(004990)와 롯데렌탈 등이 ESG채권을 발행했다.

롯데쇼핑 관계자는 "정확한 발행 규모와 발행일 등은 내부적으로 준비 중"이라면서 "협력사에 거래대금을 조기지급하는 등 (중소기업) 상생 관련 사업에 필요한 자금으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SG 채권은 모집 방식이나 상환우선순위 등은 일반 회사채처럼 정하지만, 조달한 자금을 관련 사업에 사용하기로 약속한 특수목적 채권이다. 친환경사업을 위한 녹색채권, 상생 경영 등을 위한 사회적책임채권, 지속가능채권으로 나뉜다.

롯데그룹은 국내 유통 3사 중에서 ESG 채권 발행에 가장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올 초 사장단 회의에서 "기업 가치와 직결되는 ESG 경영에 대한 전략적 집중이 필요한 시기"라면서 "ESG 요소는 비전과 전략을 수립할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고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ESG 채권은 지난해 9월 롯데지주가 국내 지주사 중에서는 처음으로 10년물 500억원어치를 공모 발행했다. 올해 1월에도 600억원 규모로 ESG채권을 추가 발행했는데, 민간 채권평가회사가 평가한 평균 발행금리(민평금리·2.61%)보다 36bp(1bp=0.01%포인트) 낮게 금리가 결정됐다. 낮아진 발행금리만큼 자금조달 비용이 줄어든 셈이다.

롯데지주를 비롯해 택배회사인 롯데글로벌로지스, 종합렌탈업체인 롯데렌탈 등도 ESG채권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했다. 롯데렌탈은 오는 2030년까지 보유한 렌터카 100%를 전기차와 수소차 등 친환경 차량으로 교체하기 위한 자금 등으로 활용하기 위해 녹색채권을 1900억원어치 발행했다. 롯데글로벌로지스도 500억원 규모로 ESG채권을 발행했다.

이같은 롯데그룹의 행보에 악화된 자금 조달 여건을 피해가려는 계산도 깔려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시중 유동성 자체가 풍부해 회사채시장 자체가 호황인 상황인데다, ESG 채권 자체가 자본시장에서 완전히 자리잡지 않은 새로운 상품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롯데쇼핑의 매출은 2019년보다 10% 가까이 감소했고, 순손실 규모도 6866억원에 달한다. 국내 3대 신용평가사들은 지난해 하반기 들어 신용등급 AA인 롯데쇼핑의 등급전망을 모두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했다.

세계 3대 신평사 중 하나인 무디스가 롯데쇼핑의 신용등급 전망을 강등했다가 철회하는 사건도 있었다. 무디스는 투기등급 직전인 ‘Baa3’ 롯데쇼핑의 등급 전망을 지난 2월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했다. 재무구조나 수익성 개선 등이 없다면 신용등급을 추가로 강등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롯데쇼핑의 요청에 따라 등급 전망 평가를 지난달 철회한다고 밝혔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채권시장이 호황인 상황에서 신용등급 등 기업의 회사채 발행 조건이 좋고 현금성 자산이 충분하다면 제조업도 아닌 유통기업이 굳이 ESG 채권을 발행할 유인이 크지 않다"고 말했다.

이 가운데 롯데쇼핑은 중고제품을 거래하는 온라인카페인 ‘중고나라’에 300억원을 투자하며 지분을 확보했고, 인수합병(M&A)시장에 매물로 나온 이베이코리아 인수에도 뛰어들었다. 롯데그룹의 통합 온라인 쇼핑몰인 롯데온의 새 수장에 나영호 이베이코리아 전략기획본부장을 영입하는 등 외부 전문가도 충원 중이다.

김상만 하나금융투자 채권 담당 애널리스트는 "친환경 생산시설이나 탄소저감장치 등 대규모 설비 투자가 필요한 화학·철강 등 업종과 달리 일반적인 유통기업이 ESG 채권을 발행할 정도로 관련 투자 규모가 크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다만 낮은 금리 등 발행 조건도 유리한 편이고, 회사와 경영진이 ESG 경영을 위해 노력한다는 긍정적인 신호를 줘 기업 이미지를 개선하는 차원에서 ESG 채권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