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이요? 그런 얘기가 있어요?"

지난 30일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홍연시장에서 만난 한 주민은 공공 재개발 후보지 선정에 대한 의견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이같이 되물었다. 홍연시장 일대는 지난 29일 국토교통부가 2차 공공 재개발 후보지 16곳 가운데 1094가구 규모의 ‘연희동 721-6’ 구역으로 지정된 곳이다.

2차 공공 재개발 후보지로 선정된 연희동 721-6 구역

이날 오전 홍연시장 입구에서는 삼삼오오 모여 전날 발표한 공공 재개발에 대해 이야기하는 주민들이 눈에 띄었다. 시장에서 만난 한 주민은 "홍연시장쪽 홍연아파트(191가구)는 재개발 자체는 찬성하지만 공공 주도 방식에 반대하고, 더 낙후된 달동네 쪽은 공공 재개발에 찬성한다"고 귀띔했지만, 가파른 경사를 올라 마주한 달동네 주민들은 "몰랐다"는 반응을 보이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 "어차피 그림의 떡인데"…관심 없는 주민들, 갈피 못 잡은 구청

언덕의 중턱 자택에서 나오던 한 주민은 "공공 재개발이 뭐냐"고 물으며 "재개발을 하게 되면 나가 살아야 할 집도 마련해야 하고 추가분담금도 내야 할 수 있는데, 그런 게 번거로워서 재개발 투표에 나선 적이 없다"고 말했다. 조합원이 직접 추가 분담금을 내야 하는 민간 재개발과 달리 공공 재개발은 공공이 부족분을 대납해주지만, 주민들에게 충분한 정보 전달이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지난해 열렸던 공공 재개발 사업 설명회 개최 플래카드가 집 바로 앞에 걸린 것이 무색했다.

주민들은 재개발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 이유가 ‘재개발 기간 중 거처를 마련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달동네의 끝자락 텃밭에서 만난 한 60대 여성은 재개발에 대한 찬반을 묻는 말에 "재개발이라고 해봤자 그림의 떡"이라고 답했다. "이주비래 봤자 1평(3.3㎡)에 1000만원도 채 나오지 않는데, 이곳은 넓어야 15평, 좁으면 9평"이라며 "많이 받아야 1억5000만원인데 그 돈으로 적어도 10년간 서울 어디 가서 살 수 있겠나. 은행 융자를 받아도 이 나이에 갚을 방법이 없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 공공 재개발 얘기가 처음 나왔을 당시 공모 투표에서는 서울 아파트값 급등세를 보고 일단 찬성표를 던졌는데, 이후 계산기를 두드려보고 재개발에 대한 관심을 끄게 됐다"고 말했다. 텃밭에 있던 다른 주민도 "젊은 사람들은 재개발에 찬성하고 나이 든 사람들은 아예 무관심한 경향이 있는데, 나이 든 사람이 80%는 된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공공 재개발 소식이 금시초문인 것은 주민들만이 아니었다. 현금청산 여부를 확인하러 공인중개사무소에 들렀다는 한 70대 남성은 "공인중개사무소 대표가 오늘 서울시와 서대문구청에 물어보니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몰랐다고 한다"면서 "지난해의 5·6대책이 적용되는지, 올해의 2·4대책이 적용되는지에 따라 현금청산 적용 여부가 달라지는데 관청에서도 갈피를 못 잡는 눈치였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공공 직접시행 정비사업’ 또는 ‘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과 달리 공공재개발은 현금청산의 대상이 아니지만, 관할 관청도 급작스러운 국토부의 발표에 이를 숙지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연희동 721-6 구역에 지난해 열린 공공 재개발 사업 설명회 플래카드가 걸려있다

◇ "속도전이 중요" "재산권 온전히 보호돼야" 엇갈리는 목소리도

공공 재개발에 대한 찬반의 목소리도 갈렸다. 홍연시장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한 자영업자는 "달동네 높은 곳은 경사가 급하고 길이 좁아 차도 못 올라간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나이 든 사람들만 남고 젊은 사람들은 떠나, 서울 한복판인데도 시골이 됐다"며 "꼭 민간 주도가 아니더라도 재개발을 통해 동네에 활력을 불어넣을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다른 남성 주민은 "재개발의 필요성은 있다"면서도 "하지만 재개발에서 가장 중요한 건 재산권인데, 공공 재개발은 공공이라는 이름으로 재산권에 대해 자꾸 제약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9월 공공 재개발 공모 투표 당시 찬성 비율은 60%를 넘었다고 아는데, 이번에는 주민들이 구체적으로 와닿기 시작하면서 반응이 또 다르지 않겠나"라고 했다.

그는 그러면서 "다음달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박영선 후보라면 지금의 정책을 그대로 밀어붙이겠지만, 오세훈 후보라면 그래도 주민의 목소리를 더 듣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어서 선거 결과를 지켜보려 한다"고도 말했다.

같은 서대문구에 259가구 규모로 계획된 충정로 1구역도 찬반의 목소리가 갈렸다. 충정로 1구역 관계자는 "주민들 대부분이 재개발이 시급히 이뤄져야 한다는 데 찬성하고 있다"며 "오히려 민간에서 주도할 경우 요구 동의율이 75%로 공공 재개발 66%보다 더 높아 불합리한 부분도 있다"고 했다. 충정로 1구역과 바로 맞닿은 한국 최초의 아파트 ‘충정 아파트’의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도 "인프라 상태가 워낙 열악하다 보니 충정로 1구역부터 재개발이 먼저 풀리길 바라고 있다"며 "주체가 공공인지 민간인지는 후순위의 문제"라고 했다.

충정로 1구역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한 자영업자는 "상가 세입자 입장에선 솔직히 부담스러운 이슈"라며 "상가 주인도 10~15년간 세를 놓지 못하고 기다려야 한다는 점에서 (찬성하기는) 쉽지 않은 결정일 것"이라고 말했다. 충정로 1구역 관계자도 "상가는 (찬반 비율이) 반반 정도"라고 전했다.

충정로 1구역 세입자라고 밝힌 한 주민은 "마지막 남은 황금부지라는 입소문이 돌면서 이미 외지인들이 상당히 많이 투자해놓은 상황"이라며 "이들로서는 공공이 주도한다고 하면 반대할 가능성이 크다"라고 말했다. 인근의 공인중개업 관계자 역시 "입주권을 제대로 받을 수 있느냐, 입주권 때문에 다주택자로 인정되느냐 등이 외지인들에게는 큰 변수"라며 "또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 이후 공공 주도 정비사업에 대한 잡음 우려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했다.

2차 공공 재개발 후보지로 선정된 충정로 1구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