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에 묻혔지만, 역대급 고병원성AI 바이러스 대유행
프랑스 남서부 '푸아그라' 농가는 오리 살처분에 치명타
韓, 빠른 진단과 살처분 범위 확대로 최악 피해 막아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HPAI) 발생이 새로 보고된 국내 가금 농장 숫자는 지난해 12월 42건, 올해 1월 41건으로 정점을 기록한 뒤 2월 19건, 3월 5건으로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조류 독감'이라는 별명답게 겨울이 지나자 잦아드는 모양새다.

그러나 올 겨울(2020~2021년) HPAI는 전세계적으로 가금 농가에 '역대급' 피해를 입혔다. 특히 프랑스는 지난 대유행기였던 2016~2017년 겨울에 비견될 만큼 피해가 컸다. 거위와 오리의 간으로 고급 식재료로 쓰이는 '푸아그라(foie gras)'를 생산하는 농가가 모인 지역에 HPAI 피해가 집중되면서, 이 일대 거위와 오리가 '멸종' 수준으로 살처분 당했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은 HPAI 예방 살처분이 산란계에 집중돼 계란값이 크게 올랐지만, 빠른 진단 기술과 예방적 살처분 범위 확대 등이 맞물리면서 수평전파를 차단해 2016~2017년 수준의 최악의 피해는 면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HPAI, 프랑스는 'IAHP'로 표기)의 프랑스 발생 현황. 가금 농장 발생을 표시한 빨간색 동그라미가 프랑스 남서부 지역에 집중된 모습이 보인다.

프랑스 방역 당국 등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20일부터 올해 3월 22일까지 HPAI가 발견된 가금 농장은 488건에 달했다. 2018~2020년 겨울을 두차례 나는 동안은 HPAI 발생이 거의 없었다. 이에 프랑스 농업부는 올해 예방적 살처분 규정을 발생지 중심 '3㎞ 이내'에서 '5㎞ 이내'로 변경했다. 이에 따라 현재까지 프랑스에서는 500만마리에 육박하는 가금류가 살처분된 것으로 추산된다. 이같은 살처분 규모는 2016~2017년 겨울과 비슷하다. 2016년 10월 26일~2017년 3월 26일 사이에 가금 농장에서 HPAI 발생 건수는 1062건이었다.

오리 및 거위 푸아그라 농장이 밀집한 프랑스 남서부에 HPAI 발생이 집중된 탓에 당분간 푸아그라는 찾아보기 힘든 상태가 됐다. 이 일대는 HPAI 매개로 꼽히는 철새들이 유럽에서 아프리카로 이동하는 경로로 람사르 등록 습지 등이 산재해 있어 야생 조류가 많다. 여기 더해 오리 등의 입을 벌려 관을 넣고 강제 급식하는 푸아그라 생산방식도 바이러스 확산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급식관이 호흡기에 바로 닿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푸아그라

일본 농림수산성에 따르면, 일본도 올해 HPAI를 막기 위해 지금까지 약 990만마리의 가금류를 살처분했다. 이는 2016~2017년 당시의 170만마리를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다. 2016~2017년 12건에 그쳤던 가금 농장 발생 건수가 52건으로 늘어난데 따른 결과다. 발생건수로는 2010~2011년 24건도 뛰어넘었다.

한국도 이번 겨울 예방적 살처분 조치로 산란계 약 1670만마리가 사라지면서 계란값이 급등했다. 특란 30개의 소비자가는 지난해 3월 평균 5270원 수준에서 지난 25일 기준 7590원 수준으로 뛰어올랐다.

HPAI는 철새라는 매개가 사라지지 않는한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매년 새롭게 등장하는 바이러스의 전염성과 치명성, 각국 정부의 방역조치에 따라 연도별·국가별 피해 규모는 달라질 수 있다. 야생조류의 사체나 배설물에서 발견되는 HPAI의 항원이 많아질수록, 그해 각국에서 발생하는 가금농장 피해가 늘어나는 경향을 보이는 등 철새 감염 상황과 HPAI 유행 규모는 밀접한 관련성을 보이고 있다.

국제수역기구(OIE)는 웹사이트에서 올해 HPAI 상황에 대해서도 "철새가 새로운 나라나 농장에 바이러스를 전파했을 가능성이 크다"면서 야생조류의 발생상황도 2016~2017년도와 비슷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HPAI, 프랑스는 'IAHP'로 표기)의 유럽 및 프랑스 발생 현황. 지난해 10월 20일부터 올해 3월 21일까지 발생한 상황을 지도에 표시했다. 가금 농장 발생을 표시한 빨간색 동그라미가 프랑스 남서부 지역에 집중된 모습이 보인다. 중북부 유럽에 밀집된 파란색 세모 표시는 야생 조류 사체에서 HPAI가 발견된 곳을 표시한 것이다.

그동안 국내 HPAI 발생이 만성화됐다는 점, 2020~2021년 겨울 HPAI 유행이 역대급이었다는 점, 코로나19 등의 방역으로 가용할 수 있는 자원이 제한적이었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올해 한국의 방역은 부분적으로 성공을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

2016년 10월 1일부터 2017년 3월 24일까지 철새도래지 등의 야생조류에서 발견된 HPAI 항원이 65건이었는데 가금 농장의 발생은 377건에 달했다. 사람·차량 등을 통한 2차 전파(수평전파)가 이뤄진 결과였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1일부터 올해 3월 24일까지 야생조류에서 발견된 HPAI는 229건으로 치솟았으나 가금 농장 발생은 108건에 그쳤다. 방역을 강화해 농장간 수평전파를 막은 결과다.

수평전파는 왜 줄었을까. 2017년까지 500m였던 예방적 살처분 범위를 2018년 이후 3km로 확대해 적용한 것이 주효했다. 가금 농장에 대한 진단 검사 주기를 월 1회에서 격주 1회로 줄이고, 가금류 개체 외 농장 시설 및 토양 등 환경에 대한 검사를 추가로 실시하는 등의 방식으로 검사량을 늘린 점도 효과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나라들과 달리 철새 도래지 주변에서 야생조류 사체는 물론이고 분변까지 검사하는 '저인망식' 방역도 일정 부분 성과가 있었다.

유럽·일본 등에서는 3~7일 정도 소요되는 HPAI 진단 결과를 3~4시간 만에 알 수 있는 진단 기술을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도입한 점도 빠른 확산 차단에 기여했다는 평가다. 2016~2018년 두 겨울 동안의 HPAI 발생 및 방역 상황을 백서로 정리했던 허덕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명예선임연구위원은 "한국의 HPAI 진단 능력은 굉장히 우수해 세계 최고 수준"이라며 "방역 조치도 매뉴얼이 짜여 잘 진행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방역 최전선인 시군구 담당자들이 자주 바뀌는 점은 취약점으로 남아 있다. 워낙 격무가 이어지는 탓에 방역 조치 매뉴얼을 숙지할 만하면 담당자가 바뀌게 된다는 것이다. 허 연구위원은 "현장 담당자들을 위한 매뉴얼을 만드는 등, 그들이 맡을 방역 조치를 숙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야생조류 및 가금농장의 HPAI 발생상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