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의 국내 1호 혁신금융서비스(금융규제 샌드박스)인 KB국민은행 알뜰폰(MVNO) '리브엠(Liiv M)' 사업의 특례 기간(2년)이 만료돼가는 가운데, 사업 기간을 한차례 연장할 수 있도록 하는 심사를 앞두고 노사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10만명에 이르는 리브엠 가입 고객들은 재지정 심사에 통과하지 못하면, 행여나 사용 중이던 서비스가 돌연 중단되는 것은 아닌지 불안해하고 있다. 국민은행은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다른 알뜰폰 사업자에 기존 고객을 넘겨주는 작업을 준비하는 등 대응책을 마련했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현재 리브엠의 혁신금융서비스 재연장 여부를 심사 중이다. 금융위는 2019년 4월 17일 금융·통신 융합을 위한 국민은행의 알뜰폰 사업을 국내 1호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한 바 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알뜰폰 브랜드인 리브엠이다. 알뜰폰 사용자 중 리브엠에 가입한 고객은 KB금융그룹 계열의 금융상품을 많이 쓸수록 휴대전화 요금이 할인되고, 남는 통신 데이터는 금융 포인트로도 전환할 수 있다.

이 사업은 금융위의 규제 샌드박스 제도를 통해 한시적으로 시장에 선보였다. 규제 샌드박스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토대로 서비스를 출시할 때 일정 기간 기존 규제를 면제해주는 제도다. 처음 부여되는 특례 기간인 2년에, 금융당국의 재지정 심사를 통과하면 2년 더 사업을 이어갈 수 있다.

국민은행은 오는 4월 특례 기한이 임박함에 따라 올해 1월 15일 사업 연장 신청을 해둔 상황이다. 국민은행 노조 측은 즉각 이의신청서를 냈다.

2019년 10월 KB국민은행이 리브엠 첫선을 보인 자리에서 참가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손병두 전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왼쪽에서 네 번째)과 윤종규(왼쪽에서 세 번째) KB금융지주 회장, 허인(맨 오른쪽) KB국민은행장의 모습이 보인다.

◇ 노조 "행원들에게 알뜰폰 판매 강요" VS 사측 "업무 영향 없게 장치 마련"

쟁점은 리브엠 사업이 은행 고유 업무에 지장을 초래했는지 여부다. 금융위는 2년 전 리브엠을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하면서 '은행 고유업무 수행에 지장이 없도록 내부 통제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부가조건을 덧붙였다.

노조는 국민은행이 리브엠 사업장을 일반 영업점으로 확대하는 등 행원들에게 사실상 가입자 유치 역할을 강요했다고 주장했다. 또 지역영업그룹 대표 실적 평가(KPI)에 리브엠 관련 실적을 반영해 직원들을 압박했다고 전했다.

반면 국민은행은 여러 대응책을 마련해 행원들이 알뜰폰 관련 영업을 취급하지 않도록 노력해 왔다는 입장이다.

국민은행은 지난해 판매 채널을 오프라인으로 확대하는 대신, 행원이 아닌 리브엠 개통과 상담 서비스를 전담할 파트타이머 직원 130명을 선발해 점포에 배치했다. 지역영업그룹 대표의 KPI 항목에도 '디지털 업무 평가' 등 간접적인 평가 항목은 있어도, 리브엠 실적을 직접적으로 기입하는 항목은 없다는 게 은행 주장이다.

리브엠을 두고 노사 갈등은 수년째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에는 노조가 리브엠 사업을 총괄하는 알뜰폰 사업단 사무실과 양원용 리브모바일플랫폼단장의 자택을 직접 방문해 항의하는 과정에서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양 단장의 고소로 국민은행 노조 간부 5명은 약식 기소돼 벌금형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재지정 심사를 앞두고 이런 노조 갈등은 다시 한번 심화하는 분위기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KB국민은행지부는 전날 'KB국민은행 MVNO 혁신금융 지정 취소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가입자는 크게 늘지 않으면서 행원들을 압박하는 리브엠 사업을 접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금융위의 심사 결과는 다음 달에나 나올 전망이다.

여타 은행권에서도 이번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초저금리 시대가 이어지면서 은행은 과거처럼 예대마진(예·적금 금리와 대출 금리 차이에서 발생하는 이익)에만 의존할 수 없게 됐고, 알뜰폰뿐 아니라 블록체인 등 디지털 신사업에 속속 뛰어들고 있다. 한 은행 관계자는 "은행의 영업 형태를 바꾸는 일은 불가피한데,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국민은행과 비슷한 노사 갈등이 부득이하게 발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KB국민은행 노동조합이 지난 22일 서울 종로 금융위원회 앞에서 '리브엠 사업 혁신금융 지정 취소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 10만 고객, 서비스 중단될까 초조…KB "대안 마련했다"

10만명에 이르는 소비자 사이에서는 리브엠 노사 갈등으로 재지정 심사가 차질을 빚을 경우 서비스가 중단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형성됐다. 직장인 박모(36)씨는 "저렴하고 편리하게 잘 이용하고 있는데, 노조가 무슨 권한으로 반대를 하느냐"며 "소비자 권리를 침해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리브엠 군인 특화 요금제를 사용하는 정모(29)씨는 "리브엠을 잘 쓰고 있는 데 갑자기 없어지는 건 아닌지 불안하다"고 토로했다.

리브엠은 최근 친구 결합 기능 등을 통해 입소문을 타고 있던 터라, 서비스 중단 위기설은 신규 가입자들에게도 날벼락이다. 친구 결합 기능은 최대 3명이 친구를 맺어 결합하면 한명당 통신 요금을 2200원 추가로 할인해주는 기능이다. 이 때문에 재테크 커뮤니티 등에서는 친구를 찾는 글이 최근까지도 활발하게 올라오고 있다. 경찰·공무원·교사를 대상으로 한 다양한 특화 요금제도 올해 신설되면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국민은행은 재지정 심사에 탈락할 가능성을 대비해 서비스가 종료되지 않도록 다양한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사업 연장 허가를 받지 못하면, 엘지유플러스나 유플러스 계열 알뜰폰 사업자인 미디어로그 등으로 가입자 승계가 진행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금융권 일각에서는 노조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리브엠 사업의 재지정 승인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도 나온다. 혁신금융서비스 1호라는 상징성 때문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위에서도 그간 금융 분야 혁신 서비스의 대표 사례로 꼽아온 리브엠을 중도 철회하는 일은 피하고 싶어 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혁신금융심사위원들의 공정한 평가를 통해 재지정 여부를 결정하겠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