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갑 사장 연임 불발…한전 차기 사장 누가되나
한전공대·탈원전 보은…박원주 前 특허청장 등 전남·광주 출신 유력
에너지 공기업으로 확대되는 '낙하산' 인사 논란

자산 규모만 200조원이 넘는 국내 최대 공기업인 한국전력 차기 사장 인선에 김종갑 현 사장의 연임이 무산되면서, 인선 향방에 관가와 에너지업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인한 발전단가 상승에도 불구하고 3년만에 흑자 전환을 달성하고, 연료비 연동제 등 전기요금 체계 개편을 큰 잡음없이 이뤄낸 김 사장이 다음달 13일부로 자리에서 내려오게 된 배경에 이목이 쏠리고 있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한국개발연구원(KDI) 차기 원장에 홍장표 전 청와대 경제수석 등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밀어붙인 인사들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는 정부가 각급 에너지 공기업에는 ‘탈원전 정책’ 낙하산들을 무더기로 내려보려고 하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임기를 불과 1년 남짓 남겨놓은 문재인 정부가 인사권 행사를 통해 탈원전 정책을 알박기 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현재 차기 한전 사장 하마평에 오른 인물들이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무비판적으로 이행한 관료출신이거나, 대선 캠프 등에 참여한 정치인 출신이기 때문에 이런 지적이 나온다.

더구나 현재 한전 산하 발전 자회사 차기 사장에는 에너지 분야 전문성이 전혀 없는 인물들도 물망에 오르고 있다. 한전 산하 5개 발전사 노조는 성명을 내고 "이미 내정돼 있다고 알려진 낙하산 인사 선임 계획을 당장 철회하고 비전문가에게 국가 발전산업의 미래를 맡기려는 터무니없는 도박을 멈출 것을 강력하게 촉구한다"고 밝혔다.

한국전력 나주본부.

◇김종갑 사장 연임 불발…배경은 文정권 ‘알박기’ 코드인사?

22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한전은 지난 19일부터 차기 사장 선출을 위한 모집 공모 절차에 들어갔다. 정부는 그동안 김종갑 사장의 연임 여부를 놓고 종합적인 검토를 해왔지만 연임하지 않는 쪽으로 최종 결론을 내렸다. 김 사장의 임기는 오는 4월 13일까지다. 차기 사장 후보로는 산업부 차관을 지낸 에너지분야 전문 전·현직 관료들이 거론되고 있다.

관가에서는 김종갑 사장에 대한 연임 불가 결정을 정재훈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의 연임 결정과 비교해 뜻 밖이라는 시각이 많다. 3년만에 한전 흑자 전환을 달성한 김 사장이 신규 석탄발전 중단과 2050 탄소중립 등 임기 1년 남은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 정책을 보조할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가 남은 1년 동안 인사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겠다는 취지에서 김 사장에게 연임 불가 결정이 내려진 것으로 보고 있다. 마지막 코드 인사를 할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라는 시각이다. 특히 현재 월성1호기 조기폐쇄 결정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국장·서기관급 간부가 구속 수감 중인 산업부의 사기 증진 차원에서 ‘탈원전 보은 인사’를 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탈원전 정책 이행에 기여한 산업부 관료 출신을 차기 사장에 ‘낙하산 인사’로 투입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더구나 차기 한전 사장은 문재인 정부의 정치적 본거지인 광주·전남지역의 지역 숙원인 한전 공대 설립에 속도를 내야할 책임이 있다. 이 때문에 경제부처 안팎에서는 산업부 차관 또는 차관급 인사들 중 광주·전남 출신 배경의 인사들이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현재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는 인물은 박원주 전 특허청장(행시 31회)이다. 박 전 청장은 전남 영암 출신으로 정세균 국무총리가 노무현 정부에서 산업자원부 장관을 맡고 있던 시절 장관 비서실장으로 일한 인연이 있다. 정세균 총리의 신임이 두터운 박 전 청장은 꾸준히 장관급인 국무조정실장 발탁설이나 성윤모 장관의 후임설이 꾸준히 제기됐다.

더욱이 박 전 청장은 감사원 감사로 논란이 됐던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결정이 이뤄졌을 당시 에너지정책을 총괄하는 에너지자원실장을 맡고 있었다. 박 전 청장은 2017년 9월 에너지자원실장으로 부임한 이후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최전선에서 수행해 온 인물이다. 차기 한전 사장에 탈원전에 앞장선 관료를 발탁하는 모양새가 만들어지는 셈이다.

이밖에 때 맞춰 임기를 마치는 한진현 한국무역협회 상근부회장(전남·행시 25회) , 강성천 중소벤처기업부 차관(광주·행시 32회)도 하마평에 올랐다. 모두 전남·광주 출신 인물로, 한전공대 설립을 전폭 지원할 수 있다는 평이다. 정승일 전 차관(대구·행시 33회) 등도 하마평에 올랐으나 후보군 중에서는 가능성이 가장 낮다는 평이다.

차기 한전 사장으로 유력한 박원주 전 특허청장(왼쪽), 한국동서발전 사장 후보로 거론되 ‘낙하산’ 논란이 이는 김영문 더불어민주당 울산·울주군 지역위원장(오른쪽)

◇발전5개사 등 에너지 공기업으로 번진 ‘낙하산’ 인사 논란

한국전력 산하의 남동·중부·서부·남부·동서·서부 발전사 5곳도 사장 공모 절차를 진행해 면접 등을 마친 상태다. 이들 5개 자회사에도 발전정책에 대한 전문성이 없는 '친정부 성향' 비전문가를 발탁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면서 노조와 갈등을 빚고 있다.

남부발전의 차기 사장에는 정부의 친환경 정책을 여과없이 추진한 인사로 평가받는 이승우 전 국가기술표준원장이 유력한 후보로 떠올랐고, 울산에 본사를 둔 동서발전을 둘러싸고는 김영문 더불어민주당 울산·울주군 지역위원장이 차기 사장 후보로 거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서부발전 사장에는 박형덕 한전 전 부사장 선임이 유력하고, 남동발전 역시 한전에서 관리본부장과 기획처장을 역임한 김회천 전 한전 부사장이 물망에 올라있다.

이를 두고 발전사 노조는 비전문가 낙하산 임명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다. 한국노총 전국공공노조연맹 산하인 이들 발전5사 대표노조는 지난 3일 발표한 성명서에서 "정부 스스로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 정책의 진정성을 훼손하고 공정해야 할 공기업의 사장 선임절차를 무력화시키는 일련의 행위를 도저히 좌시할 수 없다"며 "사장 선임을 둘러싼 정부의 오만하고 무책임한 행태를 당장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면서 "이미 내정돼 있다고 알려진 낙하산 인사 선임 계획을 당장 철회하고 비전문가에게 국가 발전산업의 미래를 맡기려는 터무니없는 도박을 멈출 것을 강력하게 촉구한다"며 "만약 정부가 우리의 정당한 요구를 묵살하고 낙하산 사장 선임을 강행한다면 8000명의 발전노동자들은 대국민 여론전을 통해 화력발전공기업이 처한 부당한 현실을 알리고 상급단체와 함께 할 수 있는 모든 물리적 투쟁과 법적 대응을 전개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