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성 이론 설계자' 홍장표, KDI 연구원장 유력
청와대 출신 '소주성 정책라인' 줄줄이 국책硏 원장으로
정권 말 기관장은 '순장조'로 꺼리는데…
낙하산 불법 규정 환경부 블랙리스트 판결, '임기보장' 방패막 활용
한국개발연구원(KDI) 차기 원장으로 문재인 정부의 초대 청와대 경제수석이자 소득주도성장(소주성)특별위원장을 지낸 홍장표 부경대 경제학부 교수가 유력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임기 1년 남은 문재인 정부의 '알박기 낙하산 인사'가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특히 청와대 수석비서관을 역임하면서 '소주성' 정책을 추진한 홍장표 교수가 정부 경제정책 싱크탱크인 KDI 수장을 맡게될 가능성이 커진 것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이 제기된다. 홍 교수는 '최저임금 상승발(發) 고용대란'에 책임을 지고 2018년 6월 청와대 경제수석에서 경질됐다.
관가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가 1년 남은 시점에서 이뤄지는 대대적인 낙하산 인사 배경에 이목이 집중됐다. 보통 정권이 바뀌면 공공기관장도 정권의 코드에 맞춰 대거 교체되면서 정권 말 공공기관장은 '임시직'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하지만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지난 2월 이른바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징역 2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으면서, 차기 정권에서는 기관장들의 임기를 보장할 수 밖에 없다는 분위기가 흐른다. 낙하산 인사를 하지 말라는 판결을 현 정부 낙하산에 대한 '임기 보장 방패막'으로 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올해 새로 뽑아야 하는 공공기관, 공기업 등의 요직을 놓고도 집권 여권 내부에서 치열한 내부 물밑 경쟁까지 벌어지고 있다는 소문까지 나오고 있다.
◇ 소주성 입안 홍장표, KDI 원장 유력說에 경제학계 '발칵'
21일 경제인문사회연구회와 관계부처 등에 따르면 홍 교수는 지난 17일까지 진행된 KDI 원장 공모에 지원했다. 현 최정표 원장의 임기는 이달 23일 끝난다. 경제인문사회연구회는 지원자를 선별해 3배수(3명)의 최종후보를 오는 25일 발표할 예정이다. 그렇지만 문재인 정부 초대 경제수석을 지내며 '소주성' 정책의 토대를 쌓은 홍 교수가 공모에 지원했다는 것만으로도, '최종후보 발표는 볼 것도 없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서울대 경제학과에서 학사부터 석사, 박사학위까지 마친 홍 교수는 분배를 중시하는 학현학파의 일원으로 분류된다. 국제노동기구(ILO)의 '임금주도성장' 이론을 한국식으로 변형시킨 소득주도성장 이론을 만든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소득주도성장은 임금 인상 등을 통해 가계소득을 높이면 내수가 살아나고 경제 성장으로 이어진다는 이론이다. 학현학파는 변형윤 서울대 명예교수 겸 서울사회경제연구소 이사장의 경제 이론을 따르는 진보 성향의 경제학자들을 말한다. 이제민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 주상영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 장지상 산업연구원장, 강신욱 전 통계청장 등이 대표적인 학현학파로 꼽힌다.
경제학계와 관가에서는 노동경제학자인 홍 교수의 KDI 원장행을 적절하지 않은 인선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정부 거시경제정책 입안 과정에 참여하는 특성상 지금까지 KDI원장에는 거시경제학자나 관료 출신들이 선임되는 경우가 많았다. KDI 원장을 역임한 고(故)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 현정택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현오석 전 경제부총리는 관료 출신 원장이었고, 김중수 한림대 총장과 김준경 전 원장은 거시·계량경제학자로 KDI 내부 인사 출신이었다.
이 때문에 홍장표 교수가 원장으로 부임하게 되면 KDI의 거시경제정책 진단, 분석 역량이 후퇴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가뜩이나 재벌개혁론자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공동대표 등 시민단체 활동을 했던 최정표 원장 재임기 동안 KDI의 경기진단, 분석 역량은 상당히 후퇴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최 원장은 취임 직후 단행한 조직개편에서 거시경제연구부를 경제전망실로 축소해 거시경제 분석 역량 쇠퇴를 초래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더구나 홍 교수가 입안한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최저임금 급속 인상으로 인한 고용대란으로 세계경제 호황기인 2018~2019년 한국 경제가 장기침체 국면으로 빠져들게한 책임이 있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경제학계에서는 홍 교수가 소주성 특위 위원장을 맡고 있을 때부터 차기 KDI원장행을 희망한다는 이야기를 자주 한 것으로 전해졌다.
KDI 수석 이코노미스트 출신인 유경준 국민의힘 의원은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듣도 보도 못한' 소주성 정책으로 대한민국 경제를 실험실로 만들었고, 그 결과 자영업자는 파산하고, 청년들은 일자리를 잃었다"며 "이런 소주성 정책에 책임이 있는 홍 교수가 단순히 낙하산 인사, 보은 인사, 내 식구 챙기기라는 미명하에, 지난 50년간 한국경제의 성장을 견인한 대한민국 최고의 싱크탱크인 KDI 수장으로 거론된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이번 인사가 진행된다면 사실상 KDI의 해체, 사망선고가 아닐까 생각된다"고 덧붙였다.
◇소주성계 親정부 학자, 줄줄이 국책硏 원장으로 투하
홍장표 교수 뿐만 아니라 문재인 정부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 등 여권에서 소주성을 정책·이론적으로 뒷받침했던 학자들의 국책연구원장행이 속출하고 있다. 경제인문사회연구회는 지난 1월 28일 황덕순 전 청와대 일자리수석비서관을 제13대 한국노동연원장으로 선임했다. 황 원장 또한 서울대 경제학과에서 학사에서 박사학위를 마친 학현학파로 분류된다. 노동경제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노동연구원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황 원장은 문재인 정부의 세번째 일자리수석으로서, 소주성 맞춤형 일자리 정책을 입안했다. 세금을 투입해 노인 일자리 등 단기 일자리를 정부가 직접 만드는 정책, 전국민 고용보험제 확대 등을 추진했다. 그는 인천국제공사 비정규직 보안검색원의 정규직 전환으로 인한 청년층 반발(이른바 인국공 사태)에 대해 "취업준비생 분들께서 여러 가지 취업 사정이 어렵기 때문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이라고 말해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이달 말 임기가 끝나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새 원장에는 국정기획자문위원회 기획분과위원회에서 활동한 이태수 꽃동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가 선임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연세대 경제학과에서 학사, 석사, 박사학위를 받은 이 교수는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장,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 등으로 활동했고, 지난 2016년 20대 총선에서는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하기도 했다.
지난 4일 임명된 정해구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도 현 정부의 정권 인수위원회 역할을 한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 참여한 이후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장까지 역임하며 소주성 정책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했다.
민간 연구원이지만 정부 금융정책 싱크탱크 역할을 하는 금융연구원은 박종규 전 청와대 재정기획관이 지난 16일 원장으로 취임했다. 서울대 경제학과 출신인 박종규 원장은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아 서울대 박사 주축인 학현학파들과는 결이 다르지만, 분배를 중요시한다는 점에서 '소주성 계열'로 평가된다. 지난 2013년 금융연구원 연구위원 재직시 '임금 없는 성장과 기업 저축의 역설'이라는 논문에서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후 경제는 성장하는 데 근로자 실질 임금은 오르지 않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해 4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 인선 때도 소주성 계열의 몫으로 하마평에 오르기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제학과 교수는 "정권이 뜻과 마음이 맞는 사람과 함께 일하려는 것은 충분히 공감을 하지만,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국책연구원에 '소주성 계열' 등 특정 성향 학자들이 우르르 몰려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정부 정책이 경제현실에 맞지 않은 방향으로 편향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낙하산 방지 재판이 알박기 방어막으로… 연구원·에너지 기관 줄줄이 공석
관가에서는 이들 소주성 계열 학자들이 문재인 정부 임기가 불과 1년 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국책연구원장으로 내려가는 배경을 주목하고 있다. 잔여 임기가 1년 남짓인 상황에서는 임기가 3년 가량 새로 시작하는 기관장을 임명하지 않는 과거 정부의 관례를 따르지 않고, 정권말까지 정부 낙하산을 산하 기관장으로 투입하는 무리수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 안팎에서는 임기가 남아있는 산하 기관 임원에게 사표를 제출받은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은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의 '블랙리스트' 사건 판결이 정권 말 낙하산 인사를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 판결로 현 정부가 임기말에 임명한 낙하산 기관장들이 다음 정부에서도 임기를 마칠 수 있게 됐다는 시각이다. 낙하산 인사에 경종을 울리기 위한 사법부의 판결이 오히려 현 정부의 정권말 알박기용 낙하산 인사의 방패막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런 배경으로 인해 정권말 낙하산 인사가 여기저기서 속출하고 있다. 한국조폐공사 사장으로는 반장식 전 청와대 일자리수석이 투입됐다. 지난 7일 한국폴리텍대학 신임 이사장에는 작년 말부터 내정설이 돌던 조재희 전 청와대 국정과제비서관이 취임했다. 인천국제공항의 유지 보수를 담당하는 인천공항 시설관리 사장에 황열헌 전 문화일보 편집국장이 취임했다. 황 신임 사장은 정세균 국무총리가 국회의장이던 당시 비서실장을 역임한 바 있다.
일부 기관에서는 낙하산 인사에 대해 강하게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폴리텍대 총동문회는 지난해 12월 31일 청와대 국민청원에 '한국폴리텍대학 이사장 공모에 관한 지명 낙하산 중지'라는 제목의 글을 게시하기도 했다. 총동문회는 "한국폴리텍대학 이사장 임명 공모인가? 낙하산인가?"라며 "이사장 공채에 응모한 13명의 후보들은 허수아비로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이런 가운데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산업연구원장도 오는 4월 말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다. 한국전력(4월 21일)과 한국수력원자력(4월 4일)을 비롯해 중부·동서·남동 발전과 서부·남부 발전, 석유공사 기관장이 줄줄이 상반기에 임기를 마친다. 에너지 관련 공공기관의 경우 정부의 탈원전 정책과 맞물려, 친여 인사가 선임될 가능성이 더욱 크다.
정치권 관계자는 "그간 정권 말 인사는 정권의 몰락을 함께 한다며, 순장(殉葬)조라는 말이 있었다. 이에 많은 개국공신들이 가기 싫어 하는 자리였다"며 "다만 최근에는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의 실형 판결로 지금 임명돼도 3년의 임기를 보장받을 수 있다는 인식이 강해졌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챙겨줄 수 있는 사람에 대한 인사를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말도 나온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