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주택 월세가 점점 가파르게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집값이 올라 임대차 시장에 남은 사람이 많아진 가운데 지난해 정부·여당이 밀어붙인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 영향까지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크게 오른 월세를 피하려는 수요가 서울 외곽 중저가 주택 매매가격을 밀어 올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16일 KB부동산 리브온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지역 아파트의 월세는 전년 동월 대비 4.93% 상승해 지난 2015년 12월 통계 작성을 시작한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KB는 전용면적 95.9㎡ 미만 아파트를 조사해 이 통계를 작성한다. 강남 지역이 6.12% 오르며 강북(3.70%)보다 훨씬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다.

지난 2019년 12·16 정책 발표 다음 날 서울 압구정 공인중개사무소 앞의 부동산 매물 정보.

서울에서는 아파트와 연립·다세대, 단독주택 등 주택 형태를 가리지 않고 월세가 오르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의 월세·준월세·준전세를 포함한 서울 지역 월간 월세통합가격지수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2월부터 지난달까지 아파트 월세가격은 1.8% 올랐다.

강남구 대치동 래미안대치팰리스 전용면적 94.49㎡의 경우 지난해 1월 보증금 11억원에 월세가 170만원에 거래됐는데, 지난 5일에는 보증금 13억원에 월세가 300만원으로 계약이 이뤄졌다. 보증금이 2억원 늘었지만 월세는 더 오른 것이다. 송파구 가락동의 헬리오시티 전용 59㎡는 지난해 2월 보증금 2억원에 월세 170만원이던 것이, 지난달 9일에는 같은 보증금에 월세가 230만원으로 올랐다.

부동산 시장에서는 이같은 월세 상승의 주된 원인으로 지난해 8월부터 시행된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 상한제 등 주택임대차보호3법을 꼽는다. KB리브온에 따르면 서울지역 월세가격은 지난 2015년 12월부터 지난해 8월까지 0.60% 상승했다. 하지만 임대차 3법이 시행된 8월 이후 지난 2월까지는 4.48% 올랐다. 지난해 2월부터 7월까지 0.01% 오르는 데 그쳤지만, 8월부터 지난달까지는 0.09% 올랐다.

서울 지역 연립·다세대주택, 단독주택, 오피스텔의 월세는 아직 안정적인 상태지만, 상승 폭을 키우고 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 7월까지 0.01% 수준에 머물던 월간 월세값 상승률은 각각 0.08%, 0.05%, 0.10%까지 높아졌다.

오피스텔의 경우 고가 월세의 비중이 점차 커지는 현상도 일어나고 있다. 부동산 서비스 업체인 다방에 따르면 서울에서 100만원 이상의 고액 월세 매물 비율이 크게 증가했다. 다방에 매물로 올라 온 전체 오피스텔 매물 중 월세가 100만원 이상인 매물은 14.48%로 지난 2019년(7.38%)의 두 배에 육박했다.

지난해 2월부터 지난 2월까지 서울 지역 연립·다세대주택(위)과 단독주택의 월세가격지수

전체 임대차 계약 중 월세 비중도 커졌다. 서울 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전체 임대차 계약 중 월세 계약 비율은 지난해 1월 38.58%에서 지난 1월 41.64%로 높아졌다. 특히 아파트의 경우 같은 기간 28.77%에서 35.15%로 6.88%포인트나 높아졌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공급 부족이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권 교수는 "문재인 정부 들어 (주거) 수요는 그대로인데 인허가 물량 등 공급이 줄어들었다"면서 "이에 매매시장뿐 아니라 전·월세 시장까지 가격이 오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윤지해 부동산114 수석연구원은 "임대차 3법이 시행된 지 7~8개월 정도 되면서 전세금이 오르는 가운데 월세 시장에도 이 같은 상승세가 반영되기 시작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전세 시장의 사이클은 1~2년 주기인데 임대차 3법의 부작용으로 지난해부터 전셋값이 오르면서 전세금을 내기 어려워진 세입자들이 점차 월세 시장으로 내몰리고 있다"고도 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월세 상승의 이유로 세금의 전가를 꼽았다. 그는 "보유세뿐 아니라 양도세까지 인상하면서 이도 저도 못 하게 된 다주택자들이 전세를 월세로 전환하거나 월세를 높여 세금을 감당하려 한다"고 말했다.

월세 가격 상승이 향후 부동산 시장의 불안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윤지해 수석연구원은 "지난해 임대차3법 도입 이후 본격적으로 상승한 임대료를 반영하는 매물들이 2분기 이후 더 많아지면서 월세가 더 빠른 속도로 오를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그는 "전세값과 월세가 오르면 매매시장도 안정되기 어렵다"면서 "높아진 임대료에 서울 중·저가 아파트나 1·2기 신도시 등 서울 근접 외곽지 매수세가 강해져, ‘외곽 갭(Gap) 메우기’가 나타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