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김수진씨의 부업은 식물 재배다. 그는 호접란 같은 식물을 키운 후 이를 나눠 다른 화분에 심고 당근마켓과 같은 중고거래 플랫폼에 내다 판다. 그가 버는 수입은 한달에 30만원. 큰 돈은 아니지만 세 아이를 키우는 그에게는 꽤 쏠쏠하다. 물건을 사고싶다는 거래자가 나타나면 배송은 남편 몫이다. 김씨는 “판매가격(4만원)의 20% 정도를 남편에게 용돈으로 주면 군말 없이 배송하곤 한다”고 했다.

"혹시, 당근이세요?" 요즘 전철역 출구나 주택가에서 비닐봉투를 들고 어슬렁 거리는 사람들이 한눈에 서로를 알아보면서 건네는 첫 인사다.

동네에서 제품을 사고자 하는 사람과 팔고자 하는 사람을 연결해 주는 플랫폼 당근마켓이 생필품을 거래하는 거대한 쇼핑 채널로 급부상 하고 있다. 작게는 의류나 세탁 세제부터 SUV를 이용한 대형 가구 거래도 이뤄진다. 1900만원을 호가하는 명품백도 거래 대상이다.

당근마켓은 단순 중고거래 쇼핑몰을 넘어 경제 주체로서 가계 역할에도 혁명적 변화를 가져올 조짐이다. 전통적으로 가계는 기업에서 소득을 얻고, 이를 소비해 생필품을 구매해 사용하는 존재였다. 그러나 당근마켓이 유통 플랫폼으로 자리 잡으면서 가계는 저렴한 가격에 생필품을 내놓는 '공급자'요, 구청 스티커를 붙여 버려야 할 물건을 돈 주고 매입하는 '수요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는 새로운 거래 관계를 형성한다. 생필품 시장은 B2C(기업-소비자)가 거래하는 '신제품 시장'과 C2C(소비자-소비자)가 거래하는 '중고품 시장'으로 이분화 되고 있다.

가계가 신제품 소비의 주체가 돼 줘야 '유효수요' 창출이 가능하지만, 기업 입장에선 이익 얻기가 더욱 힘들어 지는 셈이다. 대신 가계는 통계청이 발표하는 '소비자물가지수'보다 훨씬 낮은 물가를 체감하면서 편익을 얻게 된다.

이런 가계 경제의 새로운 편익은 휴게 시간을 희생한 가족의 노동에서 발생한다. 당근마켓 세상에선 상품거래 의사결정, 주문·결제 등 '경영자' 역할은 아내·딸 등 여성이, 떨어진 주문에 반응해 실제 상품 배송은 남편·아버지 등 남성이 주로 담당한다. 낯선 사람을 만나 직거래를 해야 하거나, 주거지가 노출되다 보니 남성이 주로 '배송 일선'에 나서게 되는 것이다.

가족 구성원들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자가용을 끌고 물건을 받으러 다니는 '배송기사'가 된다. 아내와 딸은 늦은 밤에도 불쑥불쑥 저렴하게 올라오는 물건을 재빨리 예약하기 위해 스마트폰만 쳐다보게 된다. 이들이 물건을 거래하기로 약속한 시간에 아빠와 아들은 불쑥불쑥 배송을 다녀오는 식이다.

공유 플랫폼 경제는 가계가 소비하고 마는 '사적 영역'을 '시장'에 내놓아 편익 추구에 동원하는 형태로 발전시킨다. 사적 공간은 에어비앤비에 의해, 사적 이동수단은 우버에 의해, 사적 물건은 당근마켓에 의해 시장에 나와서 '상품'이 된다.

이를 통해 가계가 누리는 경제적 편익은 분명히 증가한다. 그러나 이를 위해 평일 저녁과 주말 등 사적인 휴식 시간들이 나도 모르는 사이 사라진다. 플랫폼을 통한 중고거래에서 얻는 편익은 이 휴식시간을 플랫폼 노동으로 맞바꾼 대가이기 때문이다.

카를 마르크스는 에서 단순한 화폐가 자본이 되어 순환하는 공식을 ‘M(화폐)-C(상품)-M+m(화폐+이윤)’으로 정리한다. 화폐가 상품을 구매해 소비하고 끝날 경우, 이때 쓰인 화폐는 자본이라 부르지 않는다.

그러나 이윤을 얻을 목적으로 상품을 구매하는 데 쓰이는 화폐는 자본이 된다. 중고거래에선 감가상각이 모두 끝났거나, 효용 가치가 0이 된 상품을 팔 때 소정의 이윤이 생긴다. 가정의 모든 생필품이 소비되고 마는 게 아니라 자본의 순환 운동 속으로 흡수된다.

공유경제가 공적인 일터와 사적 시공간의 경계를 허물면서 가계에는 추가적인 소득원이 되곤 한다. 그러나 가계 구성원 모두가 쉴새 없이 이윤을 추구하는 ‘시장경제 수레바퀴’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부모와 자녀가 대화하고 여행을 했던 그 시간들이 ‘당근질’로 빼곡이 채워지고 있는 건 아닌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