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정다운

수사기관에 제보하기 위해 마약류를 구매했다가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한인 교포에게 2심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했다.

12일 법원에 따르면 서울고등법원 형사5부(부장판사 윤강열 박재영 김상철)는 11일 향정신성의약품(마약)을 구매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한인 교포 A씨에게 징역 2년 6개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

A씨는 카자흐스탄 국적의 한인 교포로 한국어를 거의 못 한다. 그는 2018년 10월경 통역인을 통해 경찰에 주거지 인근 외국인들의 마약 거래와 관련된 제보를 했다. 경찰은 "제보만으로 명확하게 조사할 수 없으니 가능하면 사진과 같은 증거자료를 확보해달라"고 요청했고, 통역인은 이를 A씨에게 전달했다.

A씨는 다시 통역인에게 "증거자료로 약물을 가져다드리면 되는 건가요? 오늘 그쪽에 잠입해서 가능하다면 그 약물을 구입해보도록 하겠습니다"라는 내용의 메시지를 경찰에 전송했다.

A씨는 당일 밤 11시경, 현금 5만원을 주고 마약을 매수했다. 이후 A씨는 마약을 휴대전화로 촬영한 뒤 통역인을 통해 마약의 사진을 담당 경찰관에게 전송했다. A씨는 마약을 사용하지 않고 화장실 변기에 넣어 폐기했다.

A씨는 며칠 뒤 경찰에 출석해 외국인들의 마약 매매 관련 실태를 구체적으로 진술했고, A씨의 제보 및 수사협조를 토대로 8명의 마약사범이 구속됐다.

그러나 A씨는 마약류관리에관한법률위반(향정)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 재판부는 A씨에게 징역 2년 6개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타인의 범행에 관한 증거 수집 목적으로 마약을 매매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수사기관의 지시나 위임을 받지 않고 그 매매행위에 나아간 이상 마약류 매매 범행의 범의가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A씨는 고의성이 없었다며 항소했고, 2심 재판부는 A씨의 손을 들어줬다.

2심 재판부는 "피고인은 통역인을 통해 담당 경찰관의 요청을 전달받고 외국인들의 마약 매매 범행에 관한 증거를 확보해 수사기관에 제출하기 위한 목적으로 소량의 마약을 매수하고 사진촬영한 다음 이를 바로 폐기했으므로 마약류 매매에 관한 고의가 인정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또 "피고인의 소변과 모발에 마약을 이용한 성분이 검출되지도 않았다"며 "만약 피고인이 자신이 투약하는 등 개인적인 목적으로 마약을 매수한 것이라면 매수 직전에 매수 예정사실을 통역인에게 보고하거나 매수 직후 사진을 촬영한 다음 경찰관에게 전송할 아무런 합리적 이유가 없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