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산업계, 자동차 반도체 국산화 추진
車 반도체 해외 기업 독점 시장 구조
국산화해도 자동차 업계 적용 미지수

정부가 글로벌 차량용 반도체 수급 차질에 대응하기 위해 중장기 ‘국산화’ 계획을 내놓았지만 정작 관련 업계는 시큰둥한 반응이다. 반도체 기업으로서는 기존에 생산하고 있지 않은 제품인 만큼 설비 등 자금 투자가 불가피한데 거둬들일 수 있는 수익은 불투명하다. 바닥을 다진 D램 등 메모리 반도체 슈퍼사이클(장기호황)을 대비해 설비 투자에도 집중해야 한다. 자동차 업계도 당장 차량용 반도체 공급에 차질을 빚고 있지만, 국산화가 현실화하더라도 안전성 문제로 실제 제품을 적용할지 미지수다.

9일 산업통상자원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삼성전자(005930), 현대자동차, DB하이텍 등 산업계와 함께 최근 수급 불안정을 겪는 차량용 반도체 국산화를 중장기적으로 추진한다.

세계 차량용 반도체 시장은 5개 기업이 장악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지난 2019년 기준 네덜란드 NXP가 21%, 독일 인피니언이 19%의 점유율을 기록 중이다. 이어 일본 르네사스일렉트로닉스(15%), 미국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14%), 스위스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13%) 등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최근 열린 미래차·반도체 연대·협력 협의체에서 참가 기업 대부분이 (차량용 반도체)사업에 관심을 나타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작 차량용 반도체 국산화에 대해 기업 안팎의 반응은 회의적이다. 현재 국내 반도체 기업들은 마이크로컨트롤러유닛(MCU) 등 차량용 반도체 생산공정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 메모리 반도체와 비교해 제조, 품질관리가 까다롭지만, 수익이 많이 나지 않는 차량용 반도체를 굳이 생산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서다. 일부 기업에서 차량용 반도체를 생산하고는 있지만, 현재 자동차 업계가 원하는 전력·구동 반도체는 생산하지 않는다.

당장 차량용 반도체 생산에 뛰어들더라도 산업 특성상 생산품목을 한 번 교체하면 다시 변경하기까지 최대 한 달 이상이 소요된다. 이 기간 세계 차량용 반도체 공급이 다시 원활해지면 기업으로서는 투자금액을 회수하기 힘들어질 수도 있다.

국내 반도체 업계는 올해 D램 등 메모리 반도체 슈퍼사이클(장기호황) 전망에 관련 설비에 집중할 것으로 관측된다. 키움증권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올해 낸드 월 8만~9만장(8000~9000K, 1K=웨이퍼 1000장), D램 8만장, 파운드리 15만~30만장의 웨이퍼 투입 생산설비 증설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SK하이닉스의 경우 당분간 3D 낸드와 D램 공정 전환에 집중할 것으로 전망된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올해 1분기 서버용 D램 가격이 최대 8%, 2분기에는 15%까지 오를 것으로 보고 있다. 연간 기준으로는 40%대 성장을 예상한다.

이런 이유로 삼성전자가 직접 차량용 반도체 개발에 나서기보다는 중소기업 등에 오랜 기간 쌓아온 반도체 사업 노하우를 전수하는 식으로 진행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일각에선 결국 해외 차량용 반도체 업체와의 인수·합병(M&A)으로 국산화를 꾀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다만 메이드 인 코리아 차량용 반도체가 나오더라도 실제 자동차 업계가 이를 적용할지도 미지수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차량용 반도체의 경우 높은 안전성과 보안성을 요구하는 데 오랜 시간 검증된 제품이 아닌 제품을 자동차 업계가 쉽사리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 역시 "자동차의 경우 안전과 직결하는 만큼 진입장벽이 높다"라며 "후발주자로 시장에 진출하더라도 단기간 내 성과를 얻기는 힘들 것"이라고 했다.

김양팽 산업연구원(KIET) 전문연구원은 "실내에서 주로 쓰이는 메모리 반도체와 달리 차량용 반도체는 온도 변화가 심하다"며 "이런 부문 때문에 신뢰성 있는 기업들이 시장을 지속해서 주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내연기관차의 경우 주행 시 엔진 과열로 100℃ 이상으로 온도가 치솟으며, 겨울철의 경우 반대로 영하로 기온이 뚝 떨어진다. 차량용 반도체의 내구성이 중요한 배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