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종파 간 화해 모색…이슬람과 대화 강조 수니·시아 갈등은 크고 작은 중동 분쟁의 뿌리
역대 교황 중 최초로 이라크를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슬람 수니파와 시아파 주요 지도자를 모두 만난 첫 교황으로 기록됐다고 뉴욕타임스(NYT)와 워싱턴포스트(WP) 등 주요 외신이 6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교황은 이라크 방문 이틀째인 이날 이슬람 시아파의 성지인 나자프에서 시아파 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알시스타니와 50여 분간 비공개 회동했다. 2000년 역사의 가톨릭교회 수장과 시아파 최고 지도자 가운데 한 명이 역사상 처음으로 얼굴을 마주한 것. 외신은 전 세계 가톨릭·이슬람 교계는 교황이 이맘 알리(시아파 1대 이맘) 영묘 인근에서 차량에서 내린 뒤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알시스타니 자택까지 수 미터를 걷는 장면을 숨죽이며 지켜봤면서 교황이 알시스타니 자택 출입구에 들어설 때 '평화의 상징' 비둘기가 날아오르는 장면은 상징적인 이미지로 남았다고 전했다.
이슬람 수니파와 시아파는 중동지역 최대 '앙숙'인 사우디와 이란의 갈등을 비롯한 중동 지역의 크고 작은 갈등의 근본 원인이다. 이 때문에 교황의 파격적인 이번 행보가 어떤 결실로 이어질지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사우디는 이슬람 교도 중 80% 이상을 차지하는 주류 수니파의 종주국이다. 이란은 200여개가 넘는 이슬람 종파 중 유일하게 수니파에 대적할 수 있는 시아파(20% 미만)의 맹주다.
수니파와 시아파는 이슬람교의 창시자 무함마드의 계승자를 누구로 볼 것이냐에 따라 나뉜다. 수니파는 이슬람 공동체 내에서 능력 있는 자를 칼리프(무함마드 계승자)로 지명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시아파는 무함마드 혈통 중에서 칼리프를 내야 하며, 그중에서도 무함마드의 사촌이자 사위인 알리를 계승자로 여긴다. 알리는 쿠데타세력에게 암살당했고, 그의 두 아들도 사망해 무함마드 혈통은 단절됐다. 그러나 시아파는 알리가 언젠가 다시 돌아올 것이라며 수니파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각 종파는 사우디와 이란을 중심으로 연합군을 형성, 중동 곳곳에서 분쟁을 벌이고 있다. 올해로 10년째에 접어든 시리아 내전이 대표적이다. 시리아 내전은 독재정권 저항 움직임에서 출발했지만, 이란이 이라크·시리아·레바논으로 이어지는 시아파 벨트 건설을 위해 시리아 내전에 개입하면서 종파 갈등으로 심화됐다. 사우디 등 수니파도 가세했다. 시리아에서 주도권을 잡는 쪽이 향후 중동 세력 구도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종교 간 화합은 요한 바오로 2세와 베네딕토 16세를 비롯한 역대 많은 교황이 수없이 강조한 주제이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은 누구보다 이를 진지하게 탐색하고 또한 행동으로 옮긴 인물로 평가받는다.
교황은 즉위 이래 이집트 수니파 최고 종교기관 알아즈하르의 대(大)이맘 셰이크 아흐메드 알타예브를 비롯해 수니파 주요 지도자들과 여러 차례 회동한 바 있다.
2013년 3월 즉위식 당시 유대교·이슬람교·불교·시크교·자이나교 등 여러 종교의 지도자들이 참석해 '화합의 장'을 마련한 것이 그 시작이었다.
1054년 동서 교회 분열 이후 처음으로 터키 정교회 총대주교인 바르톨로메오스가 교황 즉위식에 참석한 것도 이목을 끌었다.
교황은 즉위 하루 뒤 이슬람을 포함한 세계 주요 종교 대표자들과 만나 '우의와 존중'을 강조한 데 이어 그 이틀 뒤에는 교황청 주재 180여 개국 대사들을 초청한 자리에서 다른 종교와의 관계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종교 간 화합이 재위 기간 풀어야 할 과제의 우선순위에 있음을 대외적으로 공식화한 것이다. 당시 교황은 특별히 이슬람과의 대화를 염두에 두고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러한 의중은 바티칸 밖으로의 사목 방문으로 구체화했다. 교황은 이라크를 포함해 즉위 이래 진행한 33차례의 해외 방문 가운데 절반 이상을 비(非)가톨릭권에 할애하고 가는 곳마다 종교 간 화합·공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